P.E.I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빨간 머리 앤의 배경이 된 동네에 살고 있는 돌아가신 남편의 셋째 형의 아내가 부활절 연휴를 맞아 에드먼턴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러 왔다. 남편과 가장 닮은 셋째 형과 캐나다 원주민의 피가 1/4쯤 섞여 있어 약간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가 낳은 아이는 사촌 간 아니랄까 봐 우리 집 첫째 아이와 굉장히 닮았다.
친척들을 일일이 따로따로 방문해서 만나는 대신 볼링장을 예약한 그녀 센스만점이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어색할 수도 있는 자리였으나 볼링공을 굴리며 실수연발에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서로 보이다 보니 금방 하하 호호하며 자리가 화기애애해졌다.
레인 상태도 안 좋고 공도 손가락에 맞지 않고 예전 한참 볼링 칠 때 보다 살도 많이 쪘기에 영 실력발휘를 못하며 내 뒤에서왔다 갔다 하던 걸음마 하는 조카를 미처 못 보고 뒷걸음치다가 아기를 보호하려 뛰쳐나온 남편 등에 부딪쳐 모든 친척들 앞에 꼴사납게 쿠당탕 넘어지기도 하고 거터로 공이 빠지기도 하는 등 우당탕탕 대환장 파티 속 신나게 게임을 말아먹고 있었다.
첫 번째 게임은 몸풀기였다면서 두 번째가 진짜라고 다들 큰소리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볼링장에 간 지가 20년은 족히 지났건만 왕년에 볼링장 알바로 다져진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까다로운 한쪽 끝에 한 두 개 남은 스페어 처리도 하고 스트라이크도 나오고 안정감 있는 포즈로 급기야 성인이 된 조카 한 명의 강습 요청까지 받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렇다. 나는 왕년에 초보인척 하면서 한 명 모자란 팀 경기에 가끔 끼어서 쪽수를 맞춰 주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하던 볼링장 단골들만 알고 있던 비밀병기, 일명 숨겨진 볼링장 '타짜'였던 것이다.
이제 겨우 감 잡았는데 예약한 2시간이 끝났다고 점수판에 불이 꺼져 버렸다. 엥? 게임당 지불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당 레인 대여라는 걸 몰랐다. 추가 시간을 더 넣고 서둘러 겨우 경기를 끝냈다. 마지막에 급한 마음에 스페어를 놓치고 나니 점수가 딱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강습까지 요청한 조카의 존경 어린 시선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며 다음에 또 볼링 치러 오자는 약속과 함께 조카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걸로 훗날을 도모하기로 한다.
한국에서 온,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고모가 된 걸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하루였다. 그나저나 고모까지는 괜찮은데 성인이 된 조카가 결혼하고 아이들까지 낳아 내가 졸지에 고모할머니까지 된 것은 아직 적응이 안 된다. 내가 할머니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