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마지막 온라인 시험을 쳤다. 수학시험에 또100점 맞았다고 자랑한다. 이런 자랑을 학교에서 나이 한 참 어린 한 반 동급생들에게 할 수는 없으니 나한테 자랑하고 싶은 만큼 다 하고 뿌듯해한다. 저번에 소수점 3자리까지 적어야 하는 답에 소수점 4자리까지 적어서 '좀 더 정확한 답'을 써내는 바람에 1개 틀려 평균 100점의 점수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하는 그 앞에서 내가 더 오두방정을 떨어준다.
아이고 아까워서 어째... 한국어로도 해주고 영어로도 해준다. 한참을 부둥부둥 잘했어요 궁디팡팡 해주고 나니 하루 종일 기분 좋아하며 방과 후 애들 공부도 봐주고 시키지 않은 설거지도 해놓고 빨래도 돌리고 하길래 나는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만화책도 보고 소설책도 보고 혼자 실컷 놀았다.
오늘 밥 한거 말곤 딱히 한 거 없이 모든 필수 집안일이 끝났다.
정서적 공감과 긍정적 리액션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딱히 내가 남편을 하루종일 아쉬운 소리, 싫은 소리 하나 안 하고 집안일하게 했다고 자랑하는 소리 만은 아니다. 솔직히 남들 말할 때 경청하고 잘 반응해 주는 건 참 훌륭한 능력인데 나한테 참 부족한 점이기도 하다.
논리 정연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좋은 강의를 듣거나 말을 맛깔나게 재밌게 하는 이의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상대방이 두서없이, 요점 없이하는 지리멸렬한 이야기나 한탄과 호소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는 건 정말 에너지가 많이 드는 노동이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들은 금전적 보상이라도 받지 않는가. 입금되면 일해야지. 일이니까 돈 받는 만큼 잘해야 하는 '노동'인 것이다.
한 줌 정서적 공감과 금전적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한탄과 호소의 기회를 위해 을의 위치에서 감당하던 관계에서 오는 피로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 위해 끊어냈던 인간관계를 되돌아본다. 내가 일부러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더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로 주변이 가득 채워질 거라고 믿어 보며 앞 뒤 논리 정연하고 맞춤법과 철자 확실하고 문법 정확하고 유머까지 있는 글로 가득한 책을 펼친다.
그만 듣고 싶으면 예의 차릴 것 없이 그냥 덮어버리면 되고 거슬린다 싶으면 그만 읽으면 된다.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이미 죽고 없는 저자들이 대부분이다. 생존해 있는 작가더라도 내가 그만 읽겠다는데 상처받을 일은 없을 테니 내 맘대로 해도 돼서 너무 좋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라이브로 쌍방향 소통과 리액션이 가능하다는 건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운 경험이다. 오늘도 구인광고한 줄 내야겠다. 친구모집! 내 썰렁한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들로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그 좋은 사람들에 걸맞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험한 말 안 하기, 개똥 같은 생각 안 하기, 친절한 말 건네기, 솔직하기를 실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