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그녀의 남편, 앞집 그녀 친구의 남편, 그리고 나의 남편 그렇게 세 명의 낯가림 많은 내향인 남편들의 첫 모임은 존윅 4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걸로 했다. 다들 같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이자 40대 중반의 중년으로 최근 10년간의 극장 나들이는 죄다 아동을 겨냥한 디즈니 영화일 수밖에 없었기에 모처럼만에 총알이 날아다니고 액션이 가득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떴다.
저녁식사 후 영화 관람이라는 데이트의 정석인 코스를 아저씨 두 명이서 했으면 좀 더 어색했으려나 어쨌든 아직은 친해지지 않은 조용한 아저씨 세 명이서 밤마실 나가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남편이 냉동실에 꿍쳐 놓은 비상 술안주용 치킨윙을 다 먹어 버리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하기로 한다.
냉동 치킨윙 조리는 큰 아이에게 맡기고 작은 아이는 볶음밥에 들어갈 채소를 잘게 자르는 임무를 주었다. 자투리 채소를 꺼내고 플라스틱 칼이 아닌 진짜 부엌칼을 쥐어 주고 균등한 크기로 자르는 게 재미있어 보이는지 큰 아이도 끼고 싶어 하기에 갑자기 Tom Sawyer 된 기분이다.
올리브유에 마늘 기름을 만들어 채소를 볶고 굴소스로 간을 맞추면 웬만하면 풍미가 있고 맛도 그럴듯하다. 알록달록 냉장고 채소를 이것저것 색깔 맞춰 잘라 놓으니 보기에도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데다가 아이들끼리 자르고 다듬고 볶고 했다는 뿌듯함에 아빠 없는 저녁 식탁이지만 서로 개의치 않는다.
그 여세를 몰아 책도 큰소리로 같이 읽고 몇 년 전에 극장에서 다 같이 봤던 '모아나' 만화 영화를 싱어롱 버전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보니 어느덧 애들 잘 시간이다. 영화 마지막 10분을 볼모로 잡고 양치질과 손발 씻기 잠옷으로 갈아입기 등 잘 준비를 시키니 군말 없이 후다닥 해치운다. 오래간만에 엄마 노릇 착실히 한 듯해서 뿌듯하다.
자정이 다 돼서야 상기된 얼굴로 돌아온 남편은 존윅 1,2,3편을 하나도 안 보고 4편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었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또한 앞집 그녀 친구의 남편과 같은 시기에 같은 중학교를 다녔음을 알게 돼 졸업앨범을 뒤져 사진을 찾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 주기도 했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졸업앨범 속 남편의 앳되고 어색한 얼굴 표정과 너무 신경 써서 더 웃긴 포즈, 또 얼마 전 한 달여 숙식을 같이 했던 남편 친구의 머리숱 가득한 모습도 졸업 사진으로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인상적인 성씨가 눈에 들어왔다. 성이 Carpenter라니! 안 그래도 남편과 목수 과정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성이 Carpenter인 학생이 있다는데 그 학생이 졸업해서 목수가 되면 목수 목수씨가 되는 셈이다.
히히히 난 이런게 왜 이리 웃긴걸까. Carpenter. Mr.Carpenter 만난적 없지만 마음속으로 그의 미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