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끈질기게 쌓여있던 눈더미조차 다 녹아 버리고 아직까진 여전히 동트기 전 영하의 기온으로 시작하지만 해가 뜨면서 서서히 올라가는 기온은 최고온도 15도까지 올라가는 등 여기 에드먼턴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늦잠 잔 후 주말 브런치는 남편이 차리는 걸로 무언의 합의가 있기에 최대한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나오면 팬케이크와 과일, 반숙으로 잘 익힌 계란 등으로 잘 차려 놓은 상을 받는다. 나는 남편이 차려준 주말 밥상을 상 받는 것처럼 받는다. 주중 내내 밥 하느라 고생한 나 셀프 토닥 하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서로의 공을 치하한다.
한국에서는 토요일이 제일 바쁜 날이었기에 주 6일 일하고 일요일 하루 늦잠 자고 미뤄둔 집안 일 할라치면 주말이 그냥 다 가버려서 서운한 적이 많았다. 여기서는 백수에 전업주부 흉내 내는 중이라 토요일 일요일 주 이틀을 하루종일 가족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는 좋은데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가족 모두 함께 하는 시간이 좀 부담스러운 눈치라서 약간 서운하기도 하다.
5분 안에 갈 수 있는 동네 놀이터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아이들은 벌써 몇 번 가 본 눈치다. 농구공과 하키 스틱, 배드민턴 채 등을 손에 들고 놀이터로 향하면서 앞집 그녀에게 놀이터 간다고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보니 벌써 놀이터에 도착했는데 벤치에 앉아서 학교 운동장에서 자주 본 아이 엄마와 이야기하고 있는 앞집 그녀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사방팔방 낯익은 얼굴이 많다. 제2의 학교 운동장이나 다름없는 이런 핫플레이스를 이제야 알았다니! 생각해 보면 이 동네 전체가 둘째 아이 다니는 학교 구역이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학교 운동장 밖에서 만나는 학교 학부모들이 새삼 반갑다.
얼마 전에 이란 출신 이민자 아이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간 덕에 안면을 튼 이란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왔기에 농구골대를 같이 쓰며 앞으로 놀이터에 나오거나 주말 피크닉을 계획하면 서로 연락하자고 친목을 다질 물꼬를 터놓았다. 다들 근처에 사는 모양이니 부담 없는 주말 놀이터 놀이 그룹을 즉석에서 결성하고 서로 만족스러워한다.
이란의 한류는 한국드라마로 꽃을 피우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걸 밝히는 순간 '대장금'아냐면서 그거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한 번도 안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이란 아빠들 사이에서 괜히 으쓱해진다. 이란 아빠들한테 또"두유노 대장금?" 당했다. 사실 이번이 두번째라 이제 어색하지도 않다. 대장금 영어 제목이 Jewel in the Palace라는걸 안다는건 절대 쓸데 없지 않다.
한국에서는 캐나다인 남편이 나름 동네 유명인사였는데 이제는 내 차례인듯 기분이 묘하다. 이 구역의 크레이지 코리언 레이디 역할은 나보다 더 설치는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는 당분간 내가 맡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