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어렸을 때 엄마가 생일을 제대로 챙겨줬던 기억이 없다. 시골에서 자라 농사일로 바쁘셔서 그랬을까? 생일을 챙기는 문화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가족들은 더 챙겨주고 나를 챙겨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섭섭함도 없었다.
보통 생일 하면 떠올리는 미역국도 나에겐 큰 의미가 없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성대한 생일파티는 아니었지만, 친구들을 불러서 과자 파티를 했다. 다른 친구들의 생일파티도 다르지 않았다. 선물로 학용품을 주고받았고 고등학생쯤 되어서야 친구들과 돈을 모아 원하는 선물을 주고받았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생일보다 친구들과 함께 즐겼던 생일의 기억이 더 많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생일이 당연했다. 20대에는 한 달 내내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해서 “넌 생일을 한 달 내내 하냐?!”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언제 그렇게 생일을 자주 챙겼는지 모를 정도로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생일 기념일에 대해 제법 초연해졌지만 그래도 생일을 챙겨주지 않으면 섭섭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현재 남편이자 구남친이다. 남편과 7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늘 축하를 받아 왔지만, 나이가 들어 서로 생계가 바빠 축하가 뜸한 시기에도 괜찮았다. 그런데 남자 친구가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 것은 무척 섭섭하고 화가 났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말이 되냐고!
연애를 시작할 무렵, 시부모님이 분식집을 개업해서 일손이 부족할 때였다. 남자 친구는 부모님의 일을 돕느라 바빴고 내 생일날에도 생일 축하한다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내 입으로 생일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남자 친구에게 최고의 대접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느낌을 받아 서운했다. 친구들과 함께 생일을 보내면서도 내 생일을 기억해 주지 않는 남자 친구가 미웠다.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내 생일을 축하해 주러 왔다. 남자 친구 딴에는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열심히 이벤트를 준비했다. 시청 어느 식당 공터에 길을 따라 하트 모양의 초를 만들고 꽃과 목걸이를 선물했다. 이벤트만 보면 너무 감동적이지만 섭섭함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벤트는 창피하기까지 했다.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이 중요했고 예고 없는 이벤트보다 생일날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귀띔해 주는 것이 좋았다. 부모님을 챙기는 마음을 미워하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사정이 있을 때는 마음을 먼저 표현하면 된다. 서프라이즈를 해 준다고 생일을 모른척하며 약을 올릴 대로 올려놓고 ‘짠!’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드라마나 로맨스 책에 가능하겠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날 이후로 남편도 어떤 이벤트도 하지 않는다. 나의 반응이 너무 뜨뜻미지근해서 실망이 컸다고 했다. 사실 기념일에 이벤트를 챙기기 귀찮아 대는 핑계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남자 친구에서 남편이 되기까지 보낸 시간이 꽤 길다. 함께 지내보니 남편은 ‘다른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인듯하다.
내가 가끔 꽃을 받고 싶어 할 때도 ‘꽃은 금방 시들잖아.’라며 꽃 선물 주기를 거부했다. 매일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꽃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말이다. 7년간의 연애와 10년 차 결혼 생활 중 남편에게 꽃을 받은 일은 열 손가락 안에 든다. 반강요로 받은 꽃이 있는데 이것은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절대 시들지 않는 드라이플라워다. 남편 딴에는 생각해서 선물한 꽃인데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이리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사람 참 한결같네.’
“나는 시들어도 생화가 좋아. 그래도 고마워” 하고 뒤끝 있는 한 마디를 내뱉고 남편한테 꽃 선물 받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남편은 생일 때마다 생일을 미리 챙겨주는 법이 없고 생일 당일 늦은 시간이나 다음날 챙겨주기를 반복했고 나도 마음을 내려놓았다. 무덤덤하게 ‘나도 똑같지 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꾸니 편안해졌다.
‘솔직히 내가 더 잘하긴 하지.’
어김없이 다가오는 나의 생일, 올해에는 더더욱 기대하지 않았다. 서로가 힘든 해이기도 하고 축하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오히려 매년 잘 챙겨주던 언니가 나의 생일을 잊어서 ‘어쭈구리’ 하며 넘겼다. 올해도 역시 남편의 아는 형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내 생일을 챙기지 못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지만, 화가 났을 일인데도 그냥 괜찮았다.
혼자라도 생일 기분을 내보려고 아이들과 외식을 했다. 모임에서 생일 축하금도 보내왔고 지인들에게 선물도 받았다. 기대가 없으니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없어서 좋았다.
‘나의 생일을 스스로 즐겨보는 거야.’
온종일 즐거웠던 것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하루였다.
아이들을 재우려고 할 때쯤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평소 도움이 필요한 순간 없고 혼자 있고 싶을 때 나타나는 남편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참았다. 남편이 밖으로 나와보라고 한다.
‘뭔가 준비한 거 같긴 같군. 별거 아니겠지.’
기대감 없이 나갔는데 남편은 생각보다 더 신경을 많이 섰다. “짜잔!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여보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해.”
제때 챙겨주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있어 자신 있게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모습이 짠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와 팔찌를 나에게 건넨다. 내가 좋아하는 꽃과 딸이랑 놀면서 ‘엄마도 이런 팔찌 갖고 싶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준비한 선물이라고 한다.
“이번 생일에는 케이크도 없네.”
괜히 볼멘소리를 해봤다. 그런데 냉동실에 케이크도 있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 화학 약품 처리를 하여 오랫동안 생화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 꽃)
“이번에 준비 많이 했는데 장례식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원래 아이들이랑 계획해서 엄마한테 커피도 타 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계획이 있었어. 이해하지?”
“응, 어쩔 수 없지. 고마워.”
아이들을 돌보느라 피곤한 나는 오늘도 남편이 기대하는 격한 감동을 표현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연애 시절 남자 친구가 불러 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인데 요즘 노래를 잘 부르지 않아 노래 실력이 죽었다며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도 남편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상황이 허락되지 않아 마음을 비웠더니 의외로 많은 축하가 있었다. 이번엔 축하의 선물도 마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즐겼다. 작년에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 문자를 받고 고마웠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오래 보지 못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요리장이 차려주는 정성스러운 음식도 먹고 와인을 마시며 대화의 꽃을 피웠다. 5개월 만에 나를 위해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두피 마시지도 받았다.
육아, 일, 살림으로 나를 희생만 하는 것 같아 잠시 슬퍼했던 나의 삶에 나를 위한 일들로 채워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기다리기보다 나 스스로 나를 대접해주고 챙겨서 즐겨보련다.
“생일 축하해. 그동안 수고 많았어. 우리 행복하자”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