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망설임을 지워준 시대에,
판단은 어디에 남을까

by 우물안고래
“강사님, AI를 쓰니까
망설임이 없어진 것 같아요.
진짜 AI는 참 좋은 도구네요.”

수업이 끝날 무렵,

밝게 웃는 수강생의

얼굴을 보며 나도 함께 웃었다.


틀린말이 아니었다.

AI를 잘 쓰고 있다는 뜻이었고,

망설임이 줄어들었다는 말도

효율이라는 관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극찬이었다.


그런데 그 밝은 미소 뒤로

묘하게 마음 한쪽이 서늘했다.

칭찬이 불쾌해서가 아니었다.


'망설임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게 될지,

나 역시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망설임이 없어진 상태를

마냥 좋은 일로 받아들이게 된걸까.


아무것도 모를 때는

오히려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임은 모름이 아니라,

앎에서 시작된다.


선택지가 보이고,

각각의 결과가 어렴풋이 그려질 때

사람은 비로소 주춤한다.


그래서 망설임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미 꽉 찬 상태다.


어른이 될수록

망설임이 잦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게 된 것이 많아질수록,

놓칠 것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망설임이 없어 보이는

어른들을 만난다.


내가 아는 한 분도

그런 사람 처럼 보였다.

그는 어떤 선택 앞에서도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어느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일단 선택은 빠르게 하고,

고민은 그다음에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그는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망설임의 자리를

옮겨둔 사람이었다.


선택지 위에서

‘이게 나을지 저게 나을지’

고민하는 대신,

선택한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지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망설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미래로 이동해 있었다.


AI는 비교를 대신하고,

가능성을 빠르게 정리해 준다.


그래서 당장의 망설임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AI가 생각하고 결정해 주니까요.”

그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질문이 남는다.


망설임이 줄어든 세계에서

나는 무엇으로 현명해질 수 있을까.


망설임은 결정을 미루는 시간이 아니라,

선택 이후를 감당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여백이었다.


AI는 그 여백을 빠르게 채워준다.

그게 장점이라는 것도 안다.


다만,

AI는 확률을 계산할뿐,

이후 그 결과에 따르는

선택까지 대신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망설임이 줄어든 시대에

어른의 자리는

선택의 직전이 아니라

선택의 직후에 남는다.


판단의 무게는

가벼워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겼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망설임을 줄이는 기술을 앞세워 말하기보다,

선택을 한 이후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더 오래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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