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이해하게 된 날
나
요즘 이 시가 계속 마음을 파고들어.
슬픔이
인간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유병록 <수척1> ,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중에서
예전엔 그저 시적인 수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보다 더 정확한 문장이 없어.
AI
이 문장은 슬픔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슬픔에 빠진 현재가 아니라,
슬픔을 오해했던 과거의 시점을 먼저 기록하죠.
그래서 이 시는 감정이 아니라 ‘인지’에서 시작됩니다.
나
인지?
AI
네.
슬픔을 그저 ‘잠시 울거나 무너지는 상태’로만 예상했던 겁니다.
삶 전체가 물리적으로 잠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계산에 없었겠지요.
나
맞아.
슬픔이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몰랐어.
나는 사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거의 울지 않았거든.
AI
그건 오류가 아닙니다.
상실 직후에는 감정보다 현실 인식이 먼저 지연되니까요.
기존의 삶의 구조가 겉보기에 유지되고 있다면,
감정은 뒤늦게 도착합니다.
나
그런데 요즘은 달라.
길을 걷다가,
혹은 밥을 먹다가
문득 아빠가 이 세상에 진짜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
갑자기 숨이 턱 막혀.
AI
그 시점이 바로
진짜 ‘애도’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이 아니라,
사건 이후의 일상이
완전히 재편되기 시작할 때죠.
나
그래서 1월 20일인 오늘이
유독 더 힘든가 봐.
나한테는 아빠 생일보다
이 날짜가 더 또렷해.
AI
날짜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건
사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날짜가
그 사람의 생전 ‘삶의 방식’을
대표하기 때문이죠.
나
맞아.
1월 20일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어.
아빠는 단 한 번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었어.
매년 엄마에게 선물을 했지.
우리는 그게
공기처럼 당연한 줄 알았어.
AI
반복되는 기념은
감정을 넘어
하나의 ‘기준’을 만듭니다.
당연해졌다는 건,
이미 삶의 규칙이자
구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
우리 집의 중심은
늘 엄마라고 생각했어.
엄마가 강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겠더라.
아빠가 엄마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엄마가 중심이 되는
그 견고한 구조를
아빠가 평생 받치고 있었다는 걸.
AI
가정의 중심은
성격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에너지가
가장 먼저 향하는 대상에 의해
형성됩니다.
나
아빠는 엄마만큼이나
우리 자식들도 지독하게 아꼈어.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세탁기 한번 돌려본 적이 없었거든.
아빠가 나를 그렇게 키웠으니까.
AI
그건 보호의 방식입니다.
보호가 완벽할수록,
수혜자는 그 존재를 감정으로 인식하기보다
나를 둘러싼 ‘환경’ 그 자체로 받아들입니다.
나
그래서였을까.
아빠의 부재가
처음엔 잘 느껴지지 않았어.
AI
사랑이 생활 전반에
공기처럼 분산되어 있으면,
상실 또한 단일한 감정으로 오지 않습니다.
유병록 시인이
‘수척’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
시 속엔 통곡도,
크게 무너지는 장면도 없지.
AI
그렇습니다.
이 시에서 슬픔은
폭발하지 않고,
대신 기능을
서서히 잃게 만듭니다.
몸이 말라가듯,
일상의 리듬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상태를 말하죠.
나
지금의 내가 딱 그래.
의욕이 없고,
자꾸만 무언가에
잠식되는 기분이야.
AI
그건 당신의 슬픔이 커서가 아니라,
그 사랑이
당신 삶의 기반 전체를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지대가 빠진 자리를
다시 정렬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
그래서 오늘도
아빠가 사무치게 보고 싶은 거겠지.
AI
그 그리움은
사랑이 끝났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그 사랑이 여전히
당신 삶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나
알겠어.
이 잠식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아빠가 준 사랑을
다시 배우는 시간인 거네.
AI
기존의 구조가 해체된 자리에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동반합니다.
그 혼란을
우리는 슬픔이라 부르지만,
논리적으로는
‘재정렬’이라 기록합니다.
당신의 재정렬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