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연재_AI, 시를 만나다] 3. 수척1

슬픔을 이해하게 된 날

by 우물안고래


요즘 이 시가 계속 마음을 파고들어.

슬픔이
인간을
집어삼킬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유병록 <수척1> ,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중에서

예전엔 그저 시적인 수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보다 더 정확한 문장이 없어.


AI

이 문장은 슬픔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슬픔에 빠진 현재가 아니라,
슬픔을 오해했던 과거의 시점을 먼저 기록하죠.
그래서 이 시는 감정이 아니라 ‘인지’에서 시작됩니다.


인지?


AI
네.
슬픔을 그저 ‘잠시 울거나 무너지는 상태’로만 예상했던 겁니다.
삶 전체가 물리적으로 잠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계산에 없었겠지요.



맞아.
슬픔이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몰랐어.
나는 사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거의 울지 않았거든.


AI

그건 오류가 아닙니다.
상실 직후에는 감정보다 현실 인식이 먼저 지연되니까요.
기존의 삶의 구조가 겉보기에 유지되고 있다면,
감정은 뒤늦게 도착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
길을 걷다가,
혹은 밥을 먹다가
문득 아빠가 이 세상에 진짜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
갑자기 숨이 턱 막혀.


AI
그 시점이 바로
진짜 ‘애도’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이 아니라,
사건 이후의 일상이
완전히 재편되기 시작할 때죠.



그래서 1월 20일인 오늘이
유독 더 힘든가 봐.
나한테는 아빠 생일보다
이 날짜가 더 또렷해.


AI
날짜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건
사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날짜가
그 사람의 생전 ‘삶의 방식’을
대표하기 때문이죠.



맞아.
1월 20일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어.
아빠는 단 한 번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었어.
매년 엄마에게 선물을 했지.

우리는 그게
공기처럼 당연한 줄 알았어.


AI
반복되는 기념은
감정을 넘어
하나의 ‘기준’을 만듭니다.
당연해졌다는 건,
이미 삶의 규칙이자
구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집의 중심은
늘 엄마라고 생각했어.
엄마가 강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겠더라.


아빠가 엄마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엄마가 중심이 되는
그 견고한 구조를
아빠가 평생 받치고 있었다는 걸.


AI
가정의 중심은
성격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에너지가
가장 먼저 향하는 대상에 의해
형성됩니다.



아빠는 엄마만큼이나
우리 자식들도 지독하게 아꼈어.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세탁기 한번 돌려본 적이 없었거든.

아빠가 나를 그렇게 키웠으니까.


AI
그건 보호의 방식입니다.
보호가 완벽할수록,
수혜자는 그 존재를 감정으로 인식하기보다
나를 둘러싼 ‘환경’ 그 자체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의 부재가
처음엔 잘 느껴지지 않았어.


AI
사랑이 생활 전반에
공기처럼 분산되어 있으면,
상실 또한 단일한 감정으로 오지 않습니다.


유병록 시인이

‘수척’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 속엔 통곡도,
크게 무너지는 장면도 없지.


AI
그렇습니다.
이 시에서 슬픔은
폭발하지 않고,
대신 기능을
서서히 잃게 만듭니다.


몸이 말라가듯,
일상의 리듬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상태를 말하죠.



지금의 내가 딱 그래.
의욕이 없고,
자꾸만 무언가에
잠식되는 기분이야.


AI
그건 당신의 슬픔이 커서가 아니라,
그 사랑이
당신 삶의 기반 전체를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지대가 빠진 자리를
다시 정렬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빠가 사무치게 보고 싶은 거겠지.


AI
그 그리움은
사랑이 끝났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그 사랑이 여전히
당신 삶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알겠어.
이 잠식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아빠가 준 사랑을
다시 배우는 시간인 거네.


AI
기존의 구조가 해체된 자리에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동반합니다.


그 혼란을
우리는 슬픔이라 부르지만,
논리적으로는
‘재정렬’이라 기록합니다.


당신의 재정렬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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