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승일 Oct 11. 2024

“경찰관이 그것도 몰라?, 증말!”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네? 잘못 들었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의정부지 역사 유적지요”


“의정부요?”


“아니, 의정부지!”


“의.정.부. 다음 뭐라고 하셨죠? 관광지요?”


“아니 경찰관이 그것도 몰라. 증말. 됐어요.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요”


지난달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60대로 보인 여성 두 분이 제 쪽으로 다가오셔서 위치를 물어보셨고 저는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당시 근무지 주변에서 있던 행사를 제가 충분히 알지 못해 제대로 된 지리 교시를 못했던 겁니다. 그분들이 발걸음을 서둘러 자리를 떠난 뒤에도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의정부를 왜 여기서 찾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휴대전화를 꺼내 포털사이트 검색해 봤습니다. 키워드는 ‘광화문. 의정부’였습니다. 그랬더니 광화문 광장 옆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서울 종로구 종로1길 45)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분이 말한 ‘의정부’는 경기도 북부 ‘의정부시’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 행정기관인 ‘의정부’였던 겁니다.


조선왕조 500여 년 역사 중 정사를 총괄했던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는 임진왜란 때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에 재건되었습니다. 1998년부터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으로 사용됐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 서울시는 발굴 작업을 해 온 끝에 실제 건물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2일 ‘의정부지 역사 유적광장’을 조성해 새롭게 문을 열었던 겁니다.


그런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경찰 후배를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그때도 조금은 황당했던 에피소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기동대 경찰관들은 처음 가는 장소도 많은데 주변에 뭐가 있고 어떤 행사들이 있는지를 다 알아야 하냐고? 경찰관이면 뭐든 다 아는 만물박사야? 물어보면 잘 듣고 인터넷 검색해 볼 시간은 줄 수 있는 거 아냐?”


“형님. 제 생각에 그분은 형님을 질책하려는 게 아닐 겁니다. 경찰관이라면 뭐든 다 잘 안다고 믿었는데 알아듣지도 못해 서운했을 겁니다. ‘그걸 왜 몰라!’가 아니라 ‘이건 모르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니, 그게 왜 서운해?”


“사실 일반 시민들은 잘 몰라요. 경찰관들이 낯선 곳에 온 건지. 지방에서 온 경찰관인지. 그냥 경찰 제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보면 뭐든 다 알 것 같다는 생각할걸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경찰관은 ‘히어로’가 아니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지리 교시’까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찰관 기동대에 근무한 올해는 일선 현장에서 근무할 때보다 법령을 더 자주 찾아봅니다. 집회, 시위 현장을 가장 많이 출동하기 때문에 당연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가장 많이 봅니다. 물론 법 조항만 봐야 하는 게 아닙니다. 최신 판례를 더 많이 찾아보기도 하고 전체 공지도 자주 됩니다.


외국대사관 근무를 할 때는 우선하여 ‘비엔나 협약’을 봐야 합니다. 다소 생소하지만 ’비엔나 협약‘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비엔나)이 과거부터 외교의 중심지였던 만큼 오늘날 다양한 국제 협약을 ’비엔나 협약‘이라는 약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협약은 외교사절단과 외교관의 면제 특권의 근거가 됩니다. 직무 수행의 효율성과 치외법권에 대한 부분이라 경찰관들이 근무하면서 매우 신중한 자로 근무합니다.


그날그날 업무의 성격에 따라서 ’도로교통법‘이나 ’도로법‘도 꼼꼼하게 챙겨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업무의 성격에 맞는 법령과 근무 요령이 전체 공지됩니다. 그 이후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됩니다. 제가 근무하는 기동대 외에도 대부분 비슷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알아서는 경찰관 기동대에서 제대로 근무할 수 없습니다.


먼저 근무지 주변 ’개방 화장실’을 반드시 알아둬야 합니다. 근무하는 장소 주변에는 유동 인구가 많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화장실을 물어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주변에 버스 정류장과 노선에 대한 정보도 알아야 합니다. 특히나 어르신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는 광역버스와 마을버스까지 알고 있으면 유용합니다.


그럼, 주말에는 특히 어떤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할까요?


바로, 결혼식장 정보입니다. 주변에 호텔은 어디에 있는지를 무조건 알아야 합니다. 결혼식장에 가는 하객은 그곳이 초행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역 주변에서는 특히나 결혼식장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경찰관 기동대 근무하면서 습관이 한가지 생겼습니다.


아무리 낯선 곳으로 근무를 나가더라도 주변에 직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한 화장실이 있거나 흡연장이 있으면 바로 팀원들에게 단체 문자를 통해 공유하는 겁니다. 사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직원도 있어 불편할지 모릅니다.


저는 만능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최소한 실망은 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오늘도 그 마음으로 경찰 버스에 오릅니다.


덧붙이는 말 : 최근 경찰관 동료들경험담에 대해 건너 듣곤 합니다.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쪽지나 개인 연락처로 의견을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