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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Oct 18. 2024

경찰버스에도 MZ세대는 있고, 나는 꼰대 팀장이다

‘나는 꼰대인가?’


며칠 전 경찰관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진작가인 동생의 생일이라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 동생의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경찰관이 된 후 첫 승진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동네 독서실을 다닐 때 그 동생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나 지금까지 25년 동안을 보고 있습니다.


그 동생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시위가 엄청 심했습니다. 그 시절 명동성당 바로 앞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왔던 동생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에 식사 장소에는 경찰 후배 한 명도 같이 갔습니다. 사진작가인 동생과 경찰 후배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습니다. 경찰관은 1년에 두 번 이상 권총 사격을 해야 합니다. 근무 성적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합니다. 오전에 경찰 후배와 사격하고 약속 장소로 같이 갔습니다.


성수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셋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저는 경찰 후배에게 한마디를 꺼냈습니다.


“강산아, 물 좀 따라봐”


“넵, 알겠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진작가인 동생이 한마디 합니다.


“형, 요즘 누가 후배들한테 물을 따르라고 해요. 자기 물은 자기가 따라 마시든가 아니면 먼저 선배가 따라 줘야지”


“에이, 이 정도는 기본 예의지. 아니 어디든 식당에 가서 앉으면 막내가 수저 놓고 컵에 물정도 따르는 건 말할 수 있는 거 아냐”


어색해진 경찰 후배가 한마디 거듭니다.


“맞습니다. 팀장님. 제가 제일 어리고 또 처음 뵙는 분도 계신 데 제가 물을 따르는 건 당연합니다. 저는 이런 일로 팀장님이 권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거 봐. 후배도 아니라잖아”


“아니, 앞에서 어느 누가 상사한테 아니라고 말합니까”


“예~~예~~, 제가 잘못했네요.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다, 형님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형님이 먼저 아랫사람들 물 따라주고, 또 따르려고 하면 하지 말라고 말해보세요. 형님의 격이 더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사실 맞습니다. 저도 진심은 아니더라도 예의적으로 후배들에게 격식을 차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자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말과 다르게 행동은 그러지 못할 때가 자주 있는 듯합니다. 그런 걸 보면 저는 꼰대가 맞습니다.




‘사실 나는 쿨하지 못한 꼰대였다.’


경찰관 기동대에서는 외부 식당에서 밥을 먹는 때가 많습니다. 사실 집에서 먹는 밥보다 밖에서 먹는 밥이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식당을 찾아 맛있는 밥을 먹는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이 그날그날 먹고 싶은 음식이나 추천 식당을 단체방에 올리면 공감을 많이 받은 식당을 갑니다.

 

팀장인 저는 사실 의견을 못 냅니다. 내고 싶을 때도 있고,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도 있지만 잘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팀장인 제가 말하면 팀원들의 처지에서는 먹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 여의도에 출동을 갔다가 KBS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만나 한식당 한곳을 추천받았습니다. 몇 번이나 맛있다고 소개를 해줘서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이 있는 전체 톡방에 글을 썼습니다.


“점심 간만에 추천 한 번 올려봅니다”


짧은 글과 함께 식당 정보가 있는 웹사이트 링크도 게재했습니다. 솔직히 다들 좋아할 줄 알았습니다. 제 기억에 식당을 추천한 게 두 달은 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따로 돈가스 먹으러 가도 될까요?? 너무 먹고싶습니다..ㅋㅋ”


작성자인 후배의 동의를 얻고 문자 내용을 게재합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가장 막내격인 후배 경찰관이 올린 문자였습니다.


경찰관 기동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갑자기 근무에 투입되기도 하고 이동도 잦아 개인행동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식사 또한 될 수 있으면 함께합니다.


‘뭐지 이 상황은….’


결국 다른 직원 한 명과 같이 둘이 돈가스를 먹고 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서운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가 추천했던 게 아니라면 아마도 함께 그냥 가자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추천했기 때문에 따로 가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별것도 아니고 오히려 팀장인 저를 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 후배에게 ‘물 한 잔 따라봐’라고 했던 제 행동은 잘못되었다는 결론입니다. 차선의 방법은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나은 방법은 제가 직접 물을 따라주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어떤 분은 제 의견에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세대 간에 기본적인 ‘예의’ 자체를 강요하는 시대 아니라는 말에는 모두 공감할 듯합니다.


또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 행동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찰버스에 오릅니다. 그렇게 지금 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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