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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Oct 25. 2024

시위 참가자가 건넨 생수 한 병




지난 8월 말 서울시청 광장 주변에서 시위가 끝나고 해산 과정 이었습니다.


“드실 겨”, 무심하게 제 쪽으로 툭 하고 손을 내밉니다.


“네? 저요?”, 저는 고개만 살짝 돌려 말을 건넨 시위 참가자 쪽을 바라봤습니다.


“경찰관들도 오늘 고생 많았어요. 경찰관은 경찰 일 하고, 우린 우리 일 한 거니까. 다 잘 끝났으니까 각자 잘한거 아닙니까. 진짜 고생했어요”


“별말씀을요. 오늘 그래도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데 잘 마무리 되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물은 안 받아요?”


“아, 아닙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무심하게 건넨 생수 한 병. 안에는 얼음이 반쯤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처음에는 꽁꽁 얼린 생수였을 터. 경찰버스로 500밀리미터 생수 한 병을 들고 왔습니다. 겉은 얼음이 녹으면서 생긴 물기가 촉촉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그 플라스틱 생수병을 들고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뚜껑을 따고 단숨에 벌컥벌컥 물을 마셨습니다. 너무도 시원했습니다.


경찰버스에는 당연히 냉장고가 없습니다. 물론 얼음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수기가 있어 올 여름에도 시원한 물을 경찰버스에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음물만은 못했습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기동대에서 처음 근무한 제게는 더욱이나 그랬습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한 시간씩 서 있다 보면 지열로 인한 더위는 정말 끔찍합니다.


그래도 이번 여름은 서울광장 집회 현장에서 받았던 생수 한 병 덕분에 잘 이겨낸 듯싶습니다. 그때 받았던 생수에 대한 기억은 그 뒤로 꽤 오래 기억됐기 때문입니다. 덥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의 기억도 자연스레 소환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올해도 광화문 주변과 여의도에서는 집회, 시위가 많았습니다. 더위때문에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서울의 중심부를 비롯해 동서남북으로 권역을 나눠 경찰관 기동대 사무실이 있습니다. 갑자기 생기는 집회, 시위나 주요 이슈가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관 기동대에서 출동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관할에 관계없이 근무가 이루어 집니다.


친한 후배가 강서 쪽에 위치한 경찰관 기동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몇 달 전 퇴근하면서 길에서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던 후배입니다. 그 후배가 너무 자랑스러워 소개도 했었습니다.


[지난 글] “시민 생명 구한 후배를 자랑합니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거리 행진을 합니다. 운전자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행진으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위에 참여한 사람과 교통체증으로 화가 난 운전자 간에 사소한 말다툼도 가끔 있습니다.


집회, 시위에 대한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입니다. 또한, 경찰은 집회, 시위를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도 있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이 행진하게 되면 시위대 바깥쪽으로 경찰관들도 일렬로 서서 함께 행진합니다. 첫째는 시위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주행 중인 차량의 운전자와 불필요한 마찰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가끔은 시위대에서 신고된 행진 코스 차선을 넘어 추가로 행진하려고 하는 때도 있습니다. 사실 요즘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법에 정해진 코스대로 행진합니다. 무리하게 차도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했던 시위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듯합니다.


후배도 시위대열 옆으로 행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시위에 참한 후배의 또래쯤으로 보이던 참석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


후배는 처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근무를 하다 보면 시위대 쪽에서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경찰관들은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위험하지 않게 저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후배는 매우 기계적으로 아주 짧게 대답했습니다.


“경찰관분들도 시위가 많아서 힘드시겠어요. 사실 시위가 없으면 근무가 좀 나으실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후배는 고개를 돌려 말을 건넨 시위 참가자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정해진 행진이 끝이 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때문에 퇴근도 못하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경찰 생활 잘하시고 퇴직하실 때까지 늘 건강하세요”


그렇게 시위 참가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후배는 그때 만난 시위 참가자가 가끔 생각난다며 그때 이야기를 제게 해줬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후배 경찰관에게 말을 건네는 시위 참가자에게 조금더 따뜻하게 말하게 된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받은 몇백 원 하는 생수 한 병이나 후배가 짧게 나눈 너무도 평범한 대화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소소한 일에 감동받고 오랜 추억으로 기억기도 합니다. 저는 유난히 그런듯합니다.

   

상처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대단한 일로 상대에게 상처받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작은 오해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인간관계가 단절곤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제게 지금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만큼은 저도 작은 것부터 주변을 챙겨보려고 합니다. 오늘 그 마음으로 경찰버스에 오릅니다. 지금 그렇게 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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