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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Nov 08. 2024

경찰버스서 바라본, 광화문광장 사람들





노부부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걸어가세요. 왜 이렇게 빨리 걸어가시려고 하세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걸음이 느려요”


“그러니까 더욱이나 같이 걸어가시면 멋질 것 같은데요”


(할머니께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바라본다.)


그리고 할머니를 뒤따라오시던 할아버지도 할머니 옆으로 다가와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할아버지께 저는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할아버지 광화문 나들이 나오셨나 봐요? 오늘 가을 날씨로는 최고죠? 이런 날 맞춰서 나오기도 쉽지 않은데 잘하셨네요. 두 분이 같이 걷는 것도 너무 멋지세요”


“그러게요. 날씨가 참 좋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할아버지께서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순간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짚지 않은 쪽으로 가서 팔짱을 낍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게 들려온 한마디.


“저 경찰 양반 손자 나이쯤 되어 보이지 않아요?” 할아버지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는 두 분의 모습을 뒤에서 한참 동안 지켜봤습니다. 제가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낍니다.


지난 11월 3일.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광화문광장의 모습입니다. 그날은 역대 11월 날씨 중 손가락에 뽑을 만큼 따뜻한 날씨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광화문광장에 하루 종일 있었는데 가을 날씨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근무 자체가 더 힘들지 않았습니다.


1년 365일 광화문 주변에는 경찰버스가 서너 대씩 항상 있습니다. 광화문광장 주변으로 워낙 유동 인구도 많고 다양한 집회와 1인 시위, 그리고 서울시 주최 행사가 하루 10여 건은 족히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관 기동대도 24시간 고정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누군가와 함께 나와 보세요. 생각보다 많은일들이 있을겁니다.




유모차에 탄 아이


(손을 흔들어 주며) 충성”, 저는 아이를 바라보며 인사합니다.


유모차에 탄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저를 쑥스럽게 쳐다봅니다. 유모차를 끌던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재민아 경찰 아저씨가 인사하네. 너도 해줘야지”이라며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이가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돌립니다. 아이의 엄마는 대신해서 제게 이야기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지구대에 근무할 때도 종종 아이들을 보면 손을 흔들어 주거나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경찰관 기동대에 와서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더 자주 가다 보니 아이들을 더 많이 봅니다. 되도록 아이들에게는 인사를 해주려고 합니다.


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좋아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말을 건네는 아이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도 더 반갑게 인사해 줍니다.




중학생 손자


광화문광장 앞쪽에 있는 이순신 동상 옆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시골에서 서울 나들이를 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손자가 두 분 사이에서 걷고 있습니다. 두 어르신의 얼굴은 너무도 밝은 반면에 중학생 손자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와, 멋지네.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산책 나온 거예요? 오늘 제대로 관광 가이드 해 드리겠는데요”


“네,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를 건넵니다. 이 친구는 현재 중2병을 앓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굳은 표정과 함께 짧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딱 그렇습니다. 옆에 있던 할머니께서도 한마디 거듭니다.


“얘네 부모는 장사를 해서 손자랑 한번 왔어요”


“네, 진짜 잘하셨네요. 손자가 왜 이렇게 잘생겼어요. 요즘 학생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어디 다니려고 안 하는데 정말 착한 손자를 두셨네요”


“그러게요. 우리 손자가 착합니다”


그제야 중학생 손자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마주합니다. 어떨 때는 부럽기도 합니다. ‘나는 휴일에 일하는데 가족이나 연인끼리 나들이 하는 게 너무 부럽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주말에 더 바쁘다는 게 경찰관 기동대의 큰 단점 중의 한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주변에서 시위도 없어 확성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만난 모든 사람과 저에게 하루하루가 오늘만 같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분명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런 날 뒤에 찾아오는 삶의 불청객인 힘듦과 역경은 또 극복하고 이겨내면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 다시 찾아올 달콤한 행복과 여유를 느끼며 살아갈 겁니다. 그렇게 살면 잘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저는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참으로 감사합니다. 다시 경찰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광화문광장에서 만났던 분들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창문 넘어 광화문광장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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