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대규모 시위가 이번 달에는 많습니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대규모 시위 현장에 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에도 어김없이 출동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만 해도 대규모 시위가 아니라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다소 격렬했습니다. 그러다 함께 근무하는 경찰관 후배가 다쳤습니다.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얼굴 입술 주변에 찰과상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 팀원은 아닙니다. 바로 옆 팀 후배인데 평소 신경을 많이 써주던 후배 경찰관이었습니다. 제가 올해 2월 기동대로 발령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후배를 오해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알고 보니 그 후배가 모르고 한 행동이었습니다. 제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뒤에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10개월여를 함께 지내면서 이제는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널 보면 우물가에 내놓은 애 같아. 너한테 자꾸 신경 쓰다 보니 이제는 정이 많이 들었나 봐”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경찰관은 지난달에 동료 경찰관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행주대교를 지나다 한강으로 뛰어내리려던 여중생의 생명을 구해 언론에 보도까지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더욱이나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치게 되어 매우 속상했습니다.
그 후배는 경찰관이 되기 전에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경찰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경찰관이 된 뒤에는 지구대에서 몇 개월 하지 않고 바로 기동대로 발령 났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여중생의 생명을 구하고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다친 겁니다.
[관련 기사] "행주대교 난간에 사람이... 투신하려던 여중생 구한 교사 출신 경찰관"
세상일이 참 그렇습니다.
뭔가 잘하고, 잘된다 싶을 때 꼭 찬물을 껴안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지금 그 후배 경찰관이 그렇습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는 모습이 대견스럽습니다. 앞으로 분명 그 후배는 남을 돕는 일에 항상 앞장설 것이 분명합니다.
시위 현장에서 가끔 경찰관들에 대한 언급을 확성기로 듣곤 합니다.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폭력 경찰’이라는 단어입니다. 솔직히 억울한 것도 사실입니다. 경찰관이 합법적인 시위 현장에서 위법한 행동을 하면 형사적인 처벌은 물론이고 민사 배상까지 뒤따른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집회, 시위 참가자들도 경찰관이 위법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할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과잉’이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문제에 대해 언급할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단지 불법을 동반한 폭력 시위는 안 됩니다. 그게 꼭 시위 현장에서만은 아닐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과 위법은 안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 동료가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욕하지 마세요
“팀장님 시위대랑 싸우지 좀 마세요. 아니 왜 자꾸 말대답을 해서 싸우세요”
“아니 그게 무슨 싸우는 거야. 시위대 일부 사람들이 경찰관들한테 욕하니까 욕하지 말고 좋게 말하라고 하는 건데….”
“그게 싸우시는 거죠. 빨리 끝날 일이 팀장님 때문에 더 늦게 끝나잖아요. 그냥 싫은 얘기 들어주고 빨리 끝나는 게 나아요”
“난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나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힘들다면 자중해야지. 앞으로는 명심할게”
“앞으로 제가 지켜보겠습니다”라며 동료 경찰관이 웃습니다.
저와 옆 부서 동료가 나눈 대화입니다. 그 경찰관은 작년에 저와 같은 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하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욕설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유독 술을 마시면 입이 거칠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다시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만큼 싫어합니다. 그런데 시위 현장에서도 가끔 거칠게 욕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걸 참지 못합니다.
“경찰관들에게 욕하지 마세요. 아무리 시위 현장이라도 그렇게 함부로 욕하시면 안 됩니다. 하지 마세요”
제가 시위 현장에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저뿐만이 아니고 동료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할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지합니다. 동료들을 위해서 그런 건만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욕설하는 사람을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오죽하면 저럴까’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요. 힘든 거 경찰관들에게라도 풀고 가세요’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자꾸 제가 나서는 듯합니다.
그 문제는 위법한 문제를 떠나 ‘정답이 없는 숙제’ 같습니다.
사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상에서도 이런 정답이 없는 일들은 꽤 많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정답 없는 숙제를 하기 위해 경찰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그럴듯합니다.
“힘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