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잘될 듯”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팀장님께 배운 부분 잘 소화해서 남은 경찰 생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랑 정반대로 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남을 험담하진 말고 남은 기간 ○○이랑 선의 경쟁해라. 응원할게”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새겨두고 ○○이랑 선의의 경쟁 잘해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다 받아들일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래, 더 잘될 거야”
며칠 전 함께 근무하는 후배 경찰관과 나눈 대화입니다. 제가 있는 팀원은 아닙니다. 옆 부서 팀원이지만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팀 같은 계급에 있는 경찰관과 함께 곧 있을 승진 대상자 중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동료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경찰관들도 매년 실시하는 승진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경찰관은 매년 1월에 승진 후보자가 대부분 결정됩니다. 그래서 11월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입니다.
경찰관이 승진하는 방법에는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시험승진’입니다. 경장부터 경정까지 5단계(순경, 경장, 경사, 경위, 경감, 경정)는 시험 승진 제도를 통해 승진할 수 있습니다. 시험은 1월 중순에 단 한 차례 있습니다. 물론 시험승진이라도 하더라도 근무 성적이 50% 정도는 차지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시험 성적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시험승진도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심사 승진’입니다. 승진될 계급에서의 직무 수행 능력을 평가해 승진하는 제도입니다. 이때는 근무 성적평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승진할 계급의 5배수의 범위 안에서 승진 후보자를 심사하고 선발하게 됩니다. 매년 1월 첫째 주에 실시됩니다.
세 번째는 ‘근속 승진’입니다. 특정한 기간 이상을 근무하면 자동으로 승진하는 제도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근무 성적평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상위 계급으로 갈수록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의 승진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의 근무성적평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별 승진’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특별한 공적이 있는 경찰관이 승진 후보자 명부의 순위와 관계없이 승진임용되는 제도입니다. 중요 범인 검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부서에 따라 특별승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1년에 한두 번 실시됩니다. 인원은 매우 적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모든 승진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근무성적평정입니다. 근무 성적평가는 3단계에 걸쳐 이뤄집니다. 대부분 팀장이 1차로 평가하게 됩니다. 저도 3년 차(지난해는 부팀장으로 평가에서 제외) 팀장으로 팀원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합니다.
저는 근무 성적평가 시기가 싫습니다. 팀장으로서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탓인 듯싶습니다.
경찰관으로 입문한 뒤로 줄곧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사 부서가 저랑 ‘잘 맞을 것 같다’라는 주변의 조언입니다. 그래서 수사 부서에서 근무할 것을 많이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한 번도 수사 부서에서 근무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능력이 부족해서입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 때도 그랬습니다. 친구들이 말다툼하고 누구 말이 맞는지 물어보면 어떻게든 답변을 피했습니다. 결국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확신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수사 부서는 대부분이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수사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모두 자기의 말이 맞고 상대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때 그 부분을 정확하게 수사해야 하는 데 자신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수사 부서에서 근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경찰관들도 11월 중순부터 말까지 근무 성적평가가 이뤄집니다. 물론 팀장인 저도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상급자로부터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평가를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훨씬 힘들고 어렵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도 단 한 가지 원칙은 있습니다. ‘최소한 팀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평가를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직원과 면담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묻습니다. 그리고 저의 의견을 최소한 반영해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 부분을 동료들이 얼마나 인정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어느 직장인이나 관계없이 매년 누군가로부터 평가를 받아 가며 1년을 버팁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중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제도입니다. 사실 ‘근무 성적평가만큼 좋은 제도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합니다.
반면에 ‘승진이 인생에 전부는 아니잖아’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승진하게 되면 좋아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 한 달여간은 경찰버스에 다소 낯선 공기가 맴돌 것입니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갑니다. 그리고 자신과 경쟁상대에 있는 동료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낮은 평가를 받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꾸역꾸역 1년을 잘 버티고 지금까지 왔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라고 자기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저는 확실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승진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랬고 승진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 주차장의 체감온도는 영하의 날씨입니다. 하지만 따뜻했던 봄날의 공기를 기억하며 경찰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서울 어딘가로 지금 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