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사람은 참 좋은데, 업무에 대해서도 조금더 신경 써 줬으면 좋겠어”
“제가 일을 잘 못하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너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중시하는것 같아서….”
“제가 어떻게 해야 잘하는거죠? 동료들과 대충 지내고 업무에만 신경써야 하나요?”
“아니다. 말을 하지 말자”
제가 후배와 나눴던 대화입니다. 비겁해 보이지만 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말할 준비가 안 돼 있었습니다. 후배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제가 당황한 이유도 있습니다. 제가 너무 소심한 탓인지 굳이 말을 이어가는 게 좋지 않겠다고 당시 판단했었습니다.
직장인에게 있어 딜레마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인간성 좋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업무 성과가 좋은 사람과 본래 인간성 자체는 모르겠지만 동료들과 두루 잘 지내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저는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동료와 고루고루 잘 지내는 직장인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제 나름의 철칙이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고 성향이 달라 친해지기 어려운 동료라도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자’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지낼까요. 사실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극히 형식적이고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 유지할 뿐입니다. 물론 장, 단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단점이 더 많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제 성격을 고치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조직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정도만 상대방과 관계를 유지하고 그 남는 에너지를 업무에 집중하자는 논리입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10년 동안은 어떻게든 동료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업무 능력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나의 뇌 구조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신경을 덜 쓰게 된 것입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조직 내에서 위치가 된 것도 있습니다. 같은 부서 내에서 상급자가 많기보다는 후배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같은 사무실 동료 한 사람이 심하게 몸살에 걸려 병가를 쓰고 출근을 못했습니다. 저와 매우 친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동료와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친한 후배가 있었습니다. 저는 직접 영양죽을 사서 후배에게 건네며 전달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아픈 동료에게는 “빠른 쾌유를 바란다”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문자로 죽값이 입금되었습니다. 너무 당황했었습니다. 서로 간에 어떠한 문제도 없던 터라 더욱이나 그랬습니다.
그 뒤로 저는 이유에 관해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극히 형식적인 관계로 1년여를 보냈습니다. 물론 큰 마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부서로 이동했고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이유는 모릅니다. 추측건대 당시 승진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저는 당시에도 관계 개선을 위해서 크게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시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듯합니다.
직장인에게 있어 ‘일도 잘하면서 성격도 좋은 사람이 최고’라는 것은 누구나가 압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길 대부분 직장인은 부단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대인관계서 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큽니다. 의외로 일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다는 사람보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나 상사 때문에 이직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습니다. 일반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가 직장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경찰 조직은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일반 회사의 경우 팀 단위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성과가 도출되는 것과 달리 경찰관들은 개인의 업무가 상당히 뚜렷합니다. 최 일선 지구대도 그렇습니다. 범인을 많이 검거하고 단속하고, 범죄 예방 활동을 하는 업무 자체가 수치화된 평가로 바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관 기동대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최소 팀 단위로 업무가 이루어지고 한 개 기동대 단위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시위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 성과보다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더 중요시합니다. 흔히 말하는 ‘업무는 조금 못해도 괜찮아. 사람만 좋으면 돼’라는 상식 아닌 상식이 통하는 부서 중 한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요즘은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최근 보름 동안은 정말 바빴습니다. 이제는 슬슬 몸도 지쳐갑니다. 팀장인 저도 그런데 일반 직원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 이미지가 더욱이나 두드러집니다. 누구나 힘들고 지치면 자신의 본래 모습이 쉽게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업무에 비중을 더 두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일을 소홀히 하거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요즘 콜센터 상담원이나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가보면 “지금 대화 중인 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쉽게 듣고 보게 됩니다.
경찰관은 예외입니다. 시위 현장에서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경찰관 기동대 업무의 대부분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경찰 버스 안에서도 20여 명의 선후배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그 안에서 마저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가끔은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업무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동료들과의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일에 더 집중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경찰관 기동대도 일반 직장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업무와 동료’. 그 두 가지를 분리해 생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업무도 사람이고 동료도 사람이기 때문에 업무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동료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조직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정도만 생활하자는 겁니다.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잘하고 있을까요. 그건 제가 답할 수 없습니다. 동료들이 직접 말하겠지요. 분명한 건 저 자신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여의도 어딘가로 ‘사람을 만나,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모난 사람이 되지는 말자’라는 다짐으로 경찰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지금 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