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싫어진 이유
남편의 변화로 명절이 좋아질까
나는 추석에 예쁘게 하고 간 적이 없다. 항상 시댁에 도착하면 부엌으로 바로 들어가서 음식 준비를 하니 늘 트레이닝이나 편안차림으로 가서 온몸에 기름 냄새와 옷에 밀가루가 잔뜩 묻어 있다.
5남매 중 넷째인 남편은 형제 중에 가장 먼저 결혼했다. 형님들이 들어오기 전 5년 동안은 어머님과 시장 가서 생선 사고 늘 전날에 가서 꼬치와 튀김 준비를 한다.
다음날 차례를 지내고 시누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5년 후 형님들이 들어오고 이제 좀 편해질 줄 알았다.
여전히 어머님과 시장 보고 준비하고 음식을 해 놓으면 형님들은 오후쯤에 온다. 해놓아서 할 게 없다며 동서가 고생했다는 말만 하곤 어머님께 준비한 선물을 드린다.
일하고 선물도 드리는 며느리가 바로 나다.
명절 음식하는 날이면 도련님은 큰아이들만 데리고 오고 동서는 작은 아이를 돌본다고 오지 않는다.
요즘 젊은 며느리 처럼 할 줄 몰라요 말해야 했는 데 그냥 하는 건 줄 알고 일은 내 차지가 된다.
제사를 없애기 전까지 명절 전날 혼자 가서 음식을 해놓고 다음날 남편과 아이들과 새벽에 시댁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20년을 하고 나니 명절이 정말 싫어졌다. 가족이 모여도 나는 즐겁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남편이 제일 밉상이다. 나의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하는 적이 없다. 도련님은 아내가 힘들다고 동서를 집에 두고 오는 데 남편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앞세워간다.
처음으로 추석에 시댁에서 2박 3일 가족 여행 가는 날 친정엄마가 어깨 수술을 해서 입원을 했다. 병간호를 한다며 여행에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난리가 났다.
"무슨 소리하냐고, 다들 오는 데 니가 안 가면 어떡하냐고?"
"엄마 입원했는 데 옆에 누가 있어야지 내가 안 가면 어때"
"무조건 가야지 1박 2일이라도 하고 오자"
마지못해 여행을 갔지만 기분이 좋을 리도 없고 재미있지도 않았다.
일찍 내려와서 엄마에게 바로 달려갔다.
엄마에게 있는 동안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도련님내외가 여행 끝내고 우리 집으로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빨리 집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도련님 온다고 꼭 내가 있어야 하는 거는 아닌데 무조건 빨리 오라고 한다.
이럴 때 남편이 밉다.
그 뒤로 시댁 여행도 같이 가고 싶지 않다.
"나는 이번여행 가고 싶지 않아 혼자 집에 있으면 안 될까?"
"그래라 나도 여행 가기 싫다."
"웬일이래 엄마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그렇게 가자고 하더니 그때 오지 말라고 하지 이제 와서 엄마도 없는 데..."
이제 와서 내 입장을 이해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어머님이 우리 집에 계시니 명절에 여행을 가지 않으면, 다들 우리 집으로 오니 여행 가는 게 차라리 낫다.
이번 추석명절은 음식준비는 형님이 밀키트 위주로 사 오고 동서네는 과자와 음료를 준비해서 왔다.
여행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남자들은 낚시를 가버리고 여자들은 저녁 준비로 바빴다. 저녁을 다 해놓고 나면 와서는 뭐 하면 되냐고 물어본다.
이번에는 형님이 밀키드를 준비해서 편하기는 했지만 음식 준비하고 차리다 보면 내가 먹을 음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매번 나는 식당 아줌마 같은 느낌이다.
이번에는 형님과 남편이 나서서 설거지와 여러 가지를 도와주어서 수월했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가 나서서 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았다.
어머님과 같이 살게 되면서 남편은 나에게 미안한지 집안일을 이것저것 도와주려고 한다.
26년 만에 도와주니 고맙다. 남편도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끼되는 추석이었다.
추석을 보내고 어머님은 나 말고는 당신한테 물 한 모금 건네는 놈이 없다고 서운해하셨다.
어머님께도 얼굴 보고 온 것으로 만족만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거 같아서 좀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