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머리 염색
거울 공주라 말하고 싶다.
어머님은 아침에 일어나시면 이불을 개고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신다. 가만히 지켜보면 30분 이상 거울을 보시는 거 같다. 한참을 들여다 보고 치장을 하신 다음 식사하려고 나오신다.
얼굴에는 하얗게 파운데이션을 바른 게 전부이다.
"어머님 너무 많이 바른 거 아니에요?"
"좀 있으면 다 없어진다. 주름이 있어 이거라도 발라야지"
어머님은 연세보다 주름도 없는 동안이시다. 다리가 아파 지팡이만 짚지 않으면 80대 노인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매일 거울 속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하신다. 그러다 면도기로 이마 부분을 깎는다.
"어머님, 뭐 하세요?"
"아~ 흰머리가 보여서, 보기 싫어서 깎는다."
잔머리가 하얗게 올라와 그게 보기 싫어서 면도기로 깎으니, 이마가 점점 넓어진다.
"그냥 염색하세요"
"여기는 염색해도 금방 보인다."
"할머니인데 흰머리가 올라오는 게 당연하지요."
"그래도 내가 보기 싫다."
팔십이 넘어도 흰머리가 올라오는 게 싫으신 모양이다. 조금만 흰머리가 보여도 면도기를 드신다. 나는 어디 갈 때 거울을 5분도 안 보는 데 어머님은 틈만 나면 거울을 보신다.
"약국에 가면 비00 좀 사온나?"
"그게 뭔데요?"
"염색약이다."
약국에 가보니 비00은 잘 팔리지 않아 준비해 놓지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 앱을 열어서 찾아보니 있어 주문했다. 나도 염색하지만,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염색약이다.
가루가 들어 있어 물을 조금 부어서 섞어 쓰는 듯했다. 혼자 거울을 보고 염색약을 바르고 계셨다.
"제가 해드릴게요."
"뭐 하려 니 손까지 빌리노 내가 하면 되는 데…"
염색할 때마다 해드리는 데, 새삼 또 말씀하신다. 센터에 친구들은 딸들이 머리 염색을 해 준다고 자랑들을 하신단다. 그럼 어머님은 며느리가 해 준다고 하시라 해도, 염색한 기억이 나지 않으신 모양이다.
"왜 칫솔로 염색약을 바르세요. 염색하는 빗 있어요. 그걸로 하세요?"
"그냥 묻혔는 데, 마 해라."
염색약을 머리에 골고루 바르고 마무리 정리는 어머님께 맡겼다. 칫솔도 씻고 통도 씻고 손에 묻은 염색약까지 씻고 나오시면 머리에 비닐 팩을 씌워드린다. 혹시 염색약이 옷에 묻을 수도 있고, 손도 무의식적으로 한 번씩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염색을 다 하고 머리를 감고 어머님이 나오셨다. 늘 욕실정리를 잘하고 나오셔서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런데 욕조 청소를 하려고 어머님의 목욕 바구니를 드는 순간 검정 물이 나왔다. 이미 욕조에는 바구니 모양의 물이 들어 있었다. 염색한 칫솔을 그대로 바구니에 두 개나 넣어 두셨다.
"어머님 염색하고 칫솔을 넣어두면 어떡해요?"
"와 무슨 일인데?"
"염색물이 들어서 지워지지 않아요. 칫솔은 다른 곳에 따로 보관해야지요."
"아이고 어쩌노, 아범이 뭐라 하겠네"
순간 황당했다. 내가 지금 어머님께 뭐라고 말하는 거는 괜찮고, 아들이 뭐라 할 것만 생각하시는 거 같다. '내가 속상하다고요. 지금 욕조에 물이 들어서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꾸 말하면 어머님이 무안해하실까 봐, 칫솔을 다른 곳에 보관하니 필요하면 말씀하라고 했다. 이럴 때는 참 속상하다. 바구니를 들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으로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