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1년
시어머님과 생활도 1년이 넘어간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었다. 2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쓸 수 있게 된 날이 2023년 12월 8일이었다. 딱 1년 전이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지는 2년의 시간이 흘려간다. 막상 되고 나니 어떻게 써야 할지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를 때가 더 많았다.
답답했던 마음을 글로 풀어쓰고 특히 어머님과 같이 살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소소하게 적기 시작했다. 어쩜 어머님이 다양한 소재를 제공해서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초보 글쟁이가 '내 삶에 시어머님이 들어왔다.'로 연재를 시작했다. 그냥 글 쓰는 게 좋아서 적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시어머님의 명절은 설레고 며느리인 나의 명절은?'이란 제목의 글은 조회수가 10,000회를 넘고 실시간 검색창에 올라갈 때는 무척 신기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댓글을 달아주는 분도 신기해서 정성을 다해 댓글도 달았다.
시어머님과의 생활도 1년이란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25년을 가끔 보고만 살았지 한집에 같이 살지는 않아서 서로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어머님도 맞추기 힘들었겠지만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식사를 챙겨 드리는 것이었다.
음식을 가리는 게 많으신 어머님은 뭘 해드려도 조금 드시던지 안 드시던지 호불호가 확실했다. 고기는 치아가 좋지 않고 속이 불편해서 싫다. 이것저것 해 드리다 찾은 것이 배추된장국이랑 무나물이었다. 뭐든 상에 두 번 올라가면 안 드시고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야 했는 데 무나물은 매번 드려도 다 드셨다. 무나물을 좋아하는 큰딸도 매번 상에 올라오니 이젠 무나물이 지겹다고 했다. 생선은 갈치와 조기만 드시고 등 푸른 생선은 비린내가 난다고 안 드신다. 이제는 식성을 잘 알아서 힘들지는 않다. 이렇게 하나둘 맞추어 가면서 살아지는 것 같다.
어머님이 딸 집에서 통마늘을 가지고 오셨다. 당연히 우리 집에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늘 까서 갔다 줘야 한다."
"우리 먹는 거 아니었어요?"
"우리도 조금 먹고 김장하는 데 필요해서 줘야 한다."
형님은 어머님을 자기 집에 며칠 주무시고 소일거리로 마늘도 까달라고 오라고 말했었다. 어머님은 집이 어긴데 뭐 하려 딸 집에서 자고 오냐고 놀려 가셨다가 마늘만 가지고 오셨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녀오시면 마늘 까기를 시작해서 이틀 만에 통마늘을 다 까셨다.
그때부터 마늘을 다 까놓았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며칟날 가겠다던 형님은 바빠서 못 가겠다고 하시고 도련님이 형님집에 올 일이 있어서 가져다준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 어머님은 침 맞으려 한의원을 가시겠다고 나에게 볼일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며늘 오늘 어디 가나?"
"오전에는 아무 일 없어요. 오후에 볼일이 있어요. 왜요?"
"한의원에 침 맞으려 갈까 싶어서"
"네 모셔다 드릴게요. 준비하세요."
"침 맞고 막내 집에 살살 걸어서 마늘을 갖다 줄까 싶은데"
"도련님이 오신다면서요?"
"그래도 내가 갖다 주면 안 와도 된다 아니가?"
"도련님이 오게 두세요. 어머님이 어떻게 걸어서 가요. 다리도 아프다면서요. 걸어가면 1시간은 걸려요."
"내가 노니까 살살 갖다 주면 안 되겠나?"
"저보고 갖다 주라는 말씀이잖아요"
"아니 내가 걸어서 간다고"
"그 말씀이 그 말씀이지요. 김치도 얻어 드시는 데 그 정도 수고는 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내가 갖다 주면 편하다 아니가"
어머님 말씀에 갑자기 화가 났다. 도련님의 시간은 소중하고 며느리는 일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갑자기 화를 내니 어머님도 당황하셨는지 안 가겠다고 하셨다. 그 뒤로 마늘을 가지로 오늘 못 가면 며칠 있다가 조카를 보낸다고 하는 전화가 오고 마늘 하나에 누가 오네 누가 못 오네 말이 많았다. 낮에 도련님은 집에 없었고, 결국은 마늘은 밤에 도련님이 가지고 가셨다. 도련님도 어머님께 가져갈 건데 조금만 기다리면 다 해결될 일을 어머니는 신경이 쓰여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어머님 마늘 가져가니 속이 시원하시지요."
"그래 속이 시원하다."
어머님이 연세가 있으시니 서로의 의견이 잘 부딪히지는 않는다. 다만 모든 일이 내 손을 거쳐야만 이루어지는 게 힘들고 부담스럽다.
앞으로도 어머님과 살아가면서 더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며느리 생각도 조금 해주셨으면 좋겠다.
어머님과의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회상하려고 적은 글이 브런치 북 두 편이 되었다. 보잘것없고 모자란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요즘 가끔 글을 왜 쓰는지에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읽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꾸준히 노력하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