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인 듯 아닌 듯

신부님의 은경축일을 맞이해

by 모닝페이지


본당에서는 오랜만에 잔치 분위기로 설레는 하루였습니다. 2주 전 주임신부님의 25주년 은경축을 축하하기로 했다가 교황님의 선종으로 인해 연기해야만 했습니다. 성가 연습을 끝내고 미사 참례를 위해 2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신부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한 흔적들이 지나가는 신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맛에 신부님은 큰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보람도 느끼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제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과 1부는 성가대에서 2부는 전 신자 모두가 손을 흔들며 "나를 따르라!"축일 노래를 부릅니다.


다 함께 감동스러운 시간이었는데요. 신부님의 부모님께서도 참석하셨습니다. 2층 성가대석에서 사제의 부모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세속적 희망과 바람은 다 내려놓으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제로서의 길도 험난하고 힘들지만 사제를 자식으로 둔 부모로서의 길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0대 지금도 사제로 살아와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가장 잘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신부님은 말씀하셨는데요. 이 큰 행사를 위해 준비해 주신 분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인사를 하셨고,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인사가 제게는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따라 더욱 진하게 와닿았습니다. 그렇게 신부님의 은경 축일을 전 신자들의 박수 속에서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반장, 구역장들이 며칠 전부터 준비한 국수를 다 함께 먹게 되었는데요.

마당과 대회의실, 그리고 교리실마다 다소 혼란스러움은 있었지만 시끌벅적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평소 잘 보이지 않던 신자들이 여기저기서 마주쳐 반가웠고. 인사하느라 바쁘기도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전 신자들이 함께 모여 줄을 서고, 한 그릇의 국수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속이 빈 상태로 먹는 국수여서 그런지, 유독 더 깊은 맛이 느껴졌고, 어쩌면 그건 국수에 담긴 기쁨과 축하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가대 식구들과 둘러앉아 국수를 먹고, 지난주에 이어 마리아, 베로니카 언니, 데레사 씨랑 4명이서 따뜻한 차를 마시러 카페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문득 가로수길에 시선이 머뭅니다.


초록이 짙어지고, 싱그러움이 가는 길목마다 번지고 있더군요. 매주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기분을 바꾸곤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쌀쌀했던 공기가 오늘은 어느새 따뜻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고,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설레는 기분을 안겨주었습니다. 하루의 끝자락,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게 다음 주를 기다리며 돌아왔습니다. 일상 속 작지만 특별한 하루, 그렇게 마음 한편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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