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대나무숲을 만나라.
내가 가족처럼 믿고 함께했던 친구도 그 중 포함이었고, 내가 하는 것들을 비스듬히 따라하며 내 조언을 구하던 이도 포함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디가서 말 못하고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가 없는 성질의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때때로 나는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늘어 놓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내 일의 힘듦은 사라지고, 화려한 면면들만 남아 떠돌았을 것이다.
사업체를 꾸리면서는 벌이가 달라졌을 것이다. 꽤 빠르게 안정을 잡았고, 나는 아직 배고프지만 어떤 달에는 월에 천만 단위 넘는 돈도 만지니까 월급쟁이인 친구들과는 격차가 있었다. 자연스레 씀씀이도 달라졌을 것이고.
그 격차가 꽤 벌어졌던 어떤 때에, 그들이 내 뒷담화를 시작했다. 나는 엔터업계에 있으면서 매일 속이 문드러져 가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1N을 버티고 또 버텨 여기까지 왔는데, 그들의 대화는 ‘걔 얼마 벌었다더라’, ‘걔 차 바꿨다더라’, ‘걔 세금 얼마 낸걸로 자랑하더라’하는 류였다.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이것이 우리의 20년 우정이구나.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줄 알았다. 내게는 한 때 인생에 나 다음으로 아꼈던 이와의 대형 사고라, 이 문제를 안 첫 날에는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의 평화는 금방 찾아왔다.
당장 터진 배우의 캐스팅 단독 기사를 응대해야 했고, 행사 준비도 들어가야 했고, 음방 생방송도 마무리해야 했다. 내 잘못을 돌아볼 여지도 없고, 그들이 왜 그랬는지를 따져 물을 여유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일에 집중하며 사람들을 손절했다. 이제는 내게 남만도 못한 친구들을…
울고 싶어도 울 곳이 없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내 힘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내가 전화 폭탄을 받을 일을 옆에서 보기라도 하는 날에, 그들은 그냥 그런 일이구나 하고 짐작 정도 할 뿐이었을 터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만난 더 소중한 사람들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주는 동료들. 십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옆에서 신뢰하며 서로 힘듦을 공유하고 의지가 되어 주는 친구들. 일로 만났지만, 개인사까지 공유하며 대신 기뻐해주고 대신 슬퍼해주는 든든한 존재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나를 지지해주는 지지대들.
절친들을 손절하고 나니, 내가 아끼고 챙겨야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너무나 절실하게 깨달았다. 사람의 인생사에 오랜 친구 하나쯤 옆에 두고 있는 것이 맞는다 하더라도 아니다 싶을 때는 확실히 쳐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서로 믿음을 쌓고 우정을 나누는 것이 때론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니 믿을 수 있는 대나무숲을 만나라. 아니, 당신이 먼저 누군가의 대나무숲이 되어주어라. 누구든 내게 와서 기댈 수 있고, 나도 그에게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숲을 찾길 바란다. 버티려면 그만큼 대단한 지지대가 없다. 단,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 함께 할 이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당신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일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