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국가자격증부터 프리다이빙까지. 나는 왜 이렇게 취미에 열광하나?
10대의 나는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무엇이든 교과서만 아니면. 만화책이든 SF 소설이든, 로맨스 소설이든, 당시 유행이었던 ‘paper’라는 매거진이나 패션지, 신문 사설까지… 교과서만 아니면 뭐든 읽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약간 활자 중독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대의 나는 점점 무엇인가를 읽을 시간이 없어졌다. 대학생땐 노느라 바빴고,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영화 홍보일을 하면서는 쓰는 일이 더 많았다. 보도자료라는 것이 대단한 글쓰기 스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서 많이 어려운 업무는 아니었지만, 양이 많아지면 말이 달라진다.
게다가 마케팅 기획안에 실행안, 전단 텍스트, 포스터 카피, 예고편 카피, 덴당 구성, 프레스킷, 포털에 보내줄 글자료에 각 매체별로 줘야 할 자료들, 기자 간담회 큐카드까지 쓰다 보니 어느 새 책상에 앉아서 글 쓰는 기계가 된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 즈음 나는 텍스트 포비아가 생겼다.
글이라면, 책이라면 한 글자도 쓰기도 읽기도 싫었다. 주말마다 무비위크와 씨네21을 정독하던 내가 영화 제목 박힌 포스터도 보기가 싫어졌다.
30대에 엔터테인먼트사 홍보를 할 때도 쉼 없이 글자료를 써 댔다. 매일 기자들에게 보낼 자료를 만들었고, 쓰고 또 썼다. 낮에는 기자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내일 나갈 자료를 돌보고, 저녁에도 미팅, 밤에는 방송을 보고 업무에 치여 이리저리 살다 보니 내 생활이 없었다. 당연히 취미 생활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시간을 갖게 되기 시작한 30대 중반부터 취미 부자가 됐다. 일단 그 취미들이 텍스트와 연관된 건 없었다. 처음엔 네일을 배웠다. 20대 초반부터 네일샵을 다녔기에 폴리쉬라도 내가 예쁘게 발라보자 배웠는데 어쩌다 보니 국가자격증까지 땄다.
어릴 때부터 향수 모으는 걸 좋아했고 향이라면 사족을 못 썼던 나는 비누 공방을 다니며 내가 원하는 향을 담은 수제 비누도 만들었다. 비누, 샴푸바, 트리트먼트바를 만들면서 또 (의미 없는) 샴푸바 자격증까지 얻었다.
나아가서는 아로마테라피스트 자격증까지 땄다. 여기서 발전하니, 차크라, 크리스탈 힐링, 타로마스터까지 관심의 분야가 넓어졌다.
뭐든 손으로 조물락 거리고 호작질을 좋아하다 보니, 원석을 사 모으고, 그 원석으로 묵주도 만들고 팔찌도 반지도 만들면서 오롯이 쉬는 시간이 좋아졌다. 아니, 소중해졌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나는 세부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따러 갔다. 전화가 오지 않는 시간, 물 속에서 오롯이 내 숨소리만 느낄 수 있는 시간. 지상에서 느낄 수 없던 그 평온을 느끼는 시간이 좋아서 해외를 나가면 펀다이빙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스쿠버를 하다보니 프리다이빙도 궁금해져서 프리다이빙도 배웠다. 본격적으로 배워보려 할 때 즈음 코로나가 터져서 그 이후로는 멈춰졌지만…
떡 공방에 가서 앙금 케이크도 배우고, 겨울이 되면 목도리를 뜨던 10대를 생각하며 지난 겨울에는 바라클라바도 두 개 떴다.
“대표님은 어쩜 그렇게 취미 생활이 많아요? 취미 부자야 정말!”
“20대에 할 걸 못해서 그래. 20대에 일하는 거 말고 취미라곤 클럽 가는 거 밖에 없었어.”
나는 늦게라도 내가 손을 놀리고 무언가를 배우면서 때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살아서 그나마의 긍정적 마인드를 찾고 있다. 그리고 누구든, 자신의 취미를 꼭 찾아서 그때의 스트레스를 풀며 살길 바란다.
좀 더 어릴 때, 좀 더 에너지가 있을 때.
나이 들기 전에 여행 많이 가라는 어른들의 조언이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걸 나이 들어 깨닫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