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가 되고 보니...
한 때 나는 내가 직장 생활에 꽤 최적화 된 인간이라고 믿고 살았다. 뭐든지 예스맨이었고, 정해진 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도 과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야근요정을 자처했고, 많은 일도 열심히 해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살았나몰라' 싶을 때도 많다.
지금도 밤을 새며 일하고 주말 일정에도 부담이 없지만, 누구나 그렇듯 내 직장생활은 일거리가 많은 것보다는 직장 상사가 가장 문제였다. 낮에는 멍 때리다가 저녁부터 일을 시작해서 야근이 디폴트 값으로 되어있는 팀장들, 늘상 자리를 비우고 제때 컨펌을 안해주면서 새벽까지 다음 날 나갈 보도자료를 붙들고 있게 하는 실장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갈라치기 하면서 어떻게든 나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상사들…
경력이 10년차를 넘기고 나서 나는 직장상사들을 피해 회사를 차렸다. 단 돈 만원을 벌어도 마음 편하게 벌고 싶었다. 회사를 차리고 나면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직원. 나와 함께 일한 파트너다.
회사를 차리면서 나와 함께 한 직원은 시키는 일만 잘했다. 시켜야만 행동 했다. ‘엔터테인먼트 홍보는 이런 것이다. 이렇게까지 세심하고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하면 ‘이것까지 해야 하는지?’의 질문이 따라왔다. 이 생각을 깨부수는데 2년이 걸렸다. 프로페셔널한 맛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공개석상에 갈 때마다, 배우들을 볼 때마다 호들갑을 떨어대니 속된 말로 쪽이 팔렸다. 좀 프로페셔널하게 자중하라고 해도 한동안은 배우들을 보며 눈에 하트를 그리고 정신을 못 차렸다.
내년에도 장사가 잘 될까, 내후년에도 살아남아 있을까를 늘 고민하던 내게 그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다. 사업적인 고민들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에겐 늘 ‘어렵다, 모르겠다’의 답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 사업의 고민은 나 혼자 하는 것이라는 걸. 누구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성장을 꿈꾸지 않는 다는 것을. 그 사람은 그저 제때 월급을 주고 일을 시키면 그만인 사람이었고, 그에게 발전을 함께 꿈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회사를 다닐 때는 으쌰으쌰 힘을 내서 우리가 맡은 작품을, 배우를 열심히 키워 가보자는 파이팅이 있었는데 개인사업자가 되고 보니 그런 직원을 만나는 것은 정말 덕을 쌓고 또 쌓아야 가능한 행운인건가 싶다.
내 회사를 차리면 더 많은 발전적인 일을 하고, 직원들과 파트너십을 더욱 돈독히 쌓아갈 줄 알았던 나는, 헛된 기대와 희망을 버렸다. 그리고 파트너를 정리했다. 그를 정리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후련했다. 이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는다. 내 회사고 내 인생이니 나만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