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이야기(23화)
군생활을 하면서 때에 맞춰 진급을 착착착 하고, 상급자 및 주변전우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주변 동기들보다 앞서나가는것이 쉬울까 어려울까?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쉽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중령진급까지다.
대령부터는 또 다른 세계일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때에 맞춰 진급을 하고, 상급자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굉장히 간단하다. 시키는 것만 잘해도 상위 30% 안에는 들 수 있다. 상급자가 명확하게 지시한 사항만 복명하면서 클리어 해나가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군생활을 하면서 주변을 보면 참 안타까운 전우들이 있다. 허우대도 멀쩡하고, 인간관계도 좋고, 뭐 하나 빠지는게 없는데 상급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남의 다리를 긁다가 좋은 평가를 못 받고 끝이 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20년 위 고참이 해주신 얘기가 있는데, 정말 별거 아닌 얘기지만, 항상 마음에 되새기게 되는 얘기가 하나있다. 군생활을 잘하려면 이 얘기를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한다. 얘기해보겠다.
밭에서 새를 쫓는 허수아비가 있었다. 주인이 허수아비에게 얘기했다. "허수아비야, 너의 역할은 새들이 우리 밭의 곡식을 먹지 못하게 새를 쫓는것이란다. 그러니 밭에 가서 새가 오면 열심히 팔을 흔들면서 새를 쫓거라." 허수아비는 대답했다. "네 주인님, 밭에 가서 열심히 팔을 흔들면서 새를 쫓겠습니다."
그리고, 허수아비는 넓은 들판으로 갔다. 주인님이 지시한 임무 중 '팔을 열심히 흔들면서 새를 쫓아라.'라는 내용은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서 새를 쫓아야 되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에이 뭐 새만 쫓으면 되지. 저기 저 나무들이 보이는 넓은 들판으로 가보자." 그러고는 밭이 아닌 곳에서 열심히 팔을 흔들어대며 춤을 췄다.
주인은 허수아비가 제대로 임무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러 밭으로 나왔다. 밭에 가보니, 허수아비가 춤을 추고 있어야 하는데 허수아비는 없고, 밭의 온갖 곡식들을 새들이 쪼아먹고 있었다. "허수아비 녀석, 아까 찰떡같이 대답하더니 도대체 어디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야?" "훠이~훠이~저리가거라~저리가거라."
그렇게 해가 저물고, 허수아비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가니 주인은 대노하며 소리쳤다. "허수아비 이 녀석, 너는 하루종일 도대체 무엇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이냐, 내가 밭에가서 새를 쫓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밭에 가서보니, 너는 코빼기도 보이지않고, 도대체 어딜 싸돌아 다니다 이제 돌아온것이냐?" 허수아비가 대답했다. "예? 주인님? 저는 들판에 나가서 열심히 팔을 흔들면서 새를 쫓다 돌아왔는데요? 보세요. 제 옷들을요. 땀에 절어서 하얀 소금도 피고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그러자 주인이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라고 했느냐? 아까전에 분명히 니가 대답을 하지 않았느냐. 밭에가서 열심히 팔을 흔들며 새를 쫓겠다고. 그런데 밭이 아니라 들판? 아이고 속터져. 들판에 가서 개고생을 했구나. 명확히 모르겠으면 물어보지. 왜 혼자서 그렇게 개고생을 하는것이냐. 어휴..안타까워라.. 쯧쯧쯧 알겠다. 편히 쉬거라." 허수아비는 생각했다. "아...맞어. 밭이었지. 왜 밭이 생각나지 않았지. 주인님이 무서워서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안물어본건데, 그래도 오늘 하루 알차게 보냈다. 고생했다."
이 이야기가 허수아비 얘기다. 딱 봐도 감이 오지 않는가? 나는 허수아비 처럼 업무를 하거나, 안일한 태도로 군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그 잘못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다. 허수아비는 자기 나름대로 고생을 하면서 열심히 새를 쫓았다. 그런데, 주인이 얘기한 곳에서 새를 쫓지 않고 엉뚱한 노력만 허비했다. 주인이 바로잡아 줬지만, 허수아비 스스로는 자위를 하며 마무리를 한다. 그래도 열심히 새를 쫓았으니 나쁘지 않았다고.
상급자가 명확한 의도를 설명해주고, 바로 잡아 줌에도 불구하고 내 나름의 변명과 상황을 들어가며 스스로를 위로하지 마라. 그냥 내가 잘못한거다. 빨리 그 잘못을 알아차리고, 다음부터는 동일한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one-out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three-out은 안된다. 회생불가다.
나는 과연 어떤 마인드와 자세로 군생활을 해오고있을까? 허수아비처럼 열심히 팔은 흔들되 엉뚱한 곳에서 팔을 흔들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허수아비처럼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우직하게 계속 그 잘못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분명히 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