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산책 중 주인이 급변사태 발생

잊지못할 산책

by 언아솔

모처럼 시원한 가을바람이 부는 평일 저녁, 우리집 강아지 푸푸와 산책 출발 전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다. 그날 하루 업무도 잘 끝났고, 딸내미도 깨끗하게 목욕시켰다. 마음으로 낳은 우리집 강아지 푸푸는 산책시간이 되서 그런지 집안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엘리베이터에서 푸푸를 안고 내려가며 ‘오늘따라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네’ 싶은 생각을 하던 찰나, 갑자기 아랫배가 살짝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뭐 괜찮겠지. 집 근처만 산책할거니까. 급하면 집에 올라오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산책을 나갔다. 앞으로 벌어질 평생 잊지못할 푸푸와의 산책이 될거라고 상상은 못한채...


우리집 아파트는 구축 20년된 아파트이고, 건너편 아파트는 신축이라 늘 건너편 아파트를 산책했었다. 거기는 지상으로 차도 안다녔고, 매끄럽고 넓은 인도에 나무도 잘 심어져 있어서 푸푸와 산책하기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렇게 한 3분을 산책했을까? 살짝 아팠던 아랫배가 약간 더 아팠다. 소리도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실제 배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겠지만, "쿠르르릉" 이라는 천둥소리가 났다. 그러면서 쿡 쑤시는 단발마 섞인 비명같은 아픔이 아랫배에서 느껴졌다. '큰일났다. 이건 전시 급변사태 급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나는 재빨리 산책 코스를 재설정했다. 원래 남의집 아파트 코스는 20분짜리 왔다리 갔다리 코스였다. 오르막길, 내리막길, 계단, 화단같은 산책길 등을 막 휘젓고 다녔었는데, 지금의 배 상태로는 5분도 안되서 급변사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 같았다. 전쟁에서 김정은의 목을 베든, 내가 죽든 둘중의 하나 같은 상황이였다. 얼른 최단거리 코스를 통해 집으로 복귀하기로 마음을 먹고 내리막을 내려갔다.


푸푸는 평소와 다른 산책 코스로 인해 주인이 이상하다는 듯 내 다리를 둘러 빙글빙글 돌고, 나는 걸음을 빨리하다가 천천히 하다가 걸어 내려 가는데 갑자기 또 배가 아파 왔다. ‘아 제발, 푸푸야. 목줄로 내 발목을 빙글빙글 감지마. 아빠 진짜 급해. 빨리 집에 가야해. 제발. 안 돼! 아빠 반바지야. 똥 지리면 바지 밑단으로 다 떨어져. 니가 갠지 내가 갠지 당최 알 수 없을수도 있다고!’. 쿡쿡 쑤시는 아픔이 점차 아랫배에서 윗배 쪽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거는 안된다. 집까지 갈 수가 없다.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 초유의 급변사태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항문을 막든 화장실을 막든 둘중에 하나다.'

한 걸음 뗄 때마다(정확히는 3.5걸음마다 / 스포츠 댄스의 원투차차차 같은 우아한 걸음걸이), 내 위장은 롤러코스터이자 시한폭탄이 되어갔다. 이미 등과 이마엔 식은땀이 한가득했고, 마음은 ‘이러다 지역신문에 실리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렇게 원투차차차 스텝을 밟으며 내려가는데, 전방 5m 지점에 경비실이 보였다.


경비실 눈부신 LED 조명 아래, 구원의 손길—경비아저씨! 물론 우리아파트 경비아저씨는 아니였다. 남의집 경비아저씨 였다. 그래도, 신축아파트이다 보니 경비실이 몹시 컸고 안쪽에 보니 간이 화장실도 겸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원투 차차차와 자이브를 추면서 거의 사극 배우 뺨치는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혹시 근처에 있는 공용 화장실이 있으면 좀 쓸 수 있을까요? 너무 급해서요."

눈치없는 푸푸는 옆에서 ‘진짜 너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혀를 낼름거리며 코를 핥았다.

아저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들릴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10m 쯤 내려가다 좌측에 공용화장실이 있는데, 비밀번호는 0000 별이에요, 소변이에요?" 하고 물어보셨다.

난 거의 유격장에서 겪은 낮은 포복 30m를 죽기살기로 기어가는 표정을 하며 "아니요. 대변인데요. 아....일단 가보겠습니다. 혹시 화장실에 휴지는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니

“휴지는 없을건데....”라며 뒷말을 흐리셨다. 차차차, 자이브 스텝 다음 룸바를 추면서 10m를 더 진격해야 되나...하는 생각을 하며 흙빛이 된 얼굴로 가려는데 경비아저씨께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부르셨다.

"그냥 경비실 안에 간이 화장실을 이용해요. 많이 급해보이는데...."

순간 경비아저씨가 천사로 보였다. '아, 역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마음은 아직 우리나라에 존재하는구나. 그래, 사람 한명 살린다고 생각하는거지.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사랑합니다. 남의 집 경비아저씨!!'


그러면서 옆에 있는 푸푸를 쳐다봤다. 눈만 껌뻑껌뻑 얼른 산책가자 라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우리집 강아지 푸푸. 어찌나 얄밉던지...차마 경비아저씨께 화장실을 이용하는 동안 푸푸를 봐달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그정도 눈치, 코치, 염치는 있었다.


그래서 푸푸랑 함께 경비실 안쪽, 간이 화장실로 같.이. 들어갔다. 그 좁은 간이화장실에서 꾸르릉 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0.5초만에 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화장실 문을 닫는 동시에 거의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자이브와 차차를 번갈아 추면서 변기에 안착했던 것 같다.(댄스스포츠는 대학교 1학년때 3개월 정도 배웠었다. 와...그때 안배웠었으면 진짜 쌌다.) 혹시 키우는 개랑 같이 똥 싸본적이 있는가? 물론 동시에 똥을 쌌다는건 아니다. 함부로 경험하지마라. 기분 뭐 같다. 내가 개인지 사람인지 조금 헷갈릴수도 있다.


변기에 앉자마자 '항문에 성대가 달렸나?' 싶을만큼의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존나 시원하다. 와...카타르시스..이게 바로 그 카타르시스인가? 오마이 지져스.' 그러던 찰나에 2차 함성이 터져나왔다.

평소 노래를 좋아해서 두성, 흉성, 가성, 진성, 반가성 등 가요 창법에 관심이 많다. 3차 대변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머리로 내는 소리는 두성이라고 하지. 그러면 나같은 경우 항문으로 소리를 내니까 항성이라고 명명해야 하나?' 하며 실실 쪼갰다. 일촉즉발의 엄청났던 사태가 진정되고, 마음이 여유가 생기니 별의별 웃긴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내가 응가중인 곳 바로 옆에 앉아서 날 바라보고 있는 푸푸를 봤다. 진짜 웃기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푸푸의 눈동자에서 '저 한심한 주인새끼, 남의집 경비실 간이화장실에서 뭐하는 짓이야? 빨리 싸고가자. 민폐다 진짜.' 라는 눈치를 주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항성 3차 교전이 있었고, 푸푸가 이상한 냄새를 맡았는지 내쪽으로 다가왔다. "푸푸 오지마라. 아빠 지금 큰일 보는중이다. 오지마라. 아 제발, 진짜로, 진짜, 으르렁 으르렁."

코를 벌렁벌렁 거리면서 내쪽으로 오다가 내가 으르렁 거리니까 쫄았던건지 or 미친개라고 생각했던건지 더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3차 대전이 끝나고, 당당하게 변기에서 일어나서 뒷처리를 했다.


한숨을 쉬며, 겸연쩍인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왔다. 경비아저씨께서는 아파트로 접근하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뒷모습의 후광을 느껴본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밖에 없을터였다. 연예인만 후광이 있는게 아니다. 경비아저씨도 후광이 있다. 엄청나게 하얗고 우아하고 백두산 같이 커 보이는 후광을 달고 계신다. 당시 경비아저씨는 나에게 신이였고, 날개만 없지 그 어떤 천사보다 고귀하고 멋진 천사였다.

경비실을 나오면서 경비아저씨와 짧은 눈빛 교환—‘전우여, 오늘 고생했다.’ '사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람 한명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산책을 경험했다. 강아지를 키우시는 반려견 주인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산책 때는 ‘강아지 배변봉투’보다, 나를 위한 ‘인간용 비상 화장실 대책’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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