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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Robin Nov 04. 2022

이재 이야기

02. 실존(實存) : 존재의 실질적인 상태 ①


   이재의 점, 선, 면에 해당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녀를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나열해 본다. 


   우선 외적인 요소이다. 이재는 그나마 외적인 요소를 말하는 게 제일 쉬워 보이니까 그것부터 건드린다. 잘 모르겠을 때는 쉬운 것부터 하는 게 정석이다. 


   - 키

  :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키에 근접한다. 여성의 평균 키가 159.6cm라고 산업통상부에서 공표했으니까 그 기준에서 말하자면 오차범위 내외이다. 조금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모든 성장판은 한참 전에 닫혔다.  

  

 - 몸무게

    킬로그램 수는 치명적이니, 옷 사이즈로 대신한다. 55에서 66 사이. 마른 것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통통해 보이고 살이 찐 사람들이 볼 때는 보기 좋은 정도일 것이라 이재는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한다. 

  

  - 피부

    대체로 하얀 편이고 유전적으로 좋은 피부에 속한다. 약간 핑크빛도 도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 집에서 돼지 사육을 하던 남자 동기가 "랜드레이스" 색깔이랑 비슷하다고 했다. 랜드레이스를 백과사전으로 찾아본 후, 그 남자 동기를 발로 차 줬다. 발에 차이면서 그놈은 예쁜 색이라고 킬킬대면서 말을 무르지는 않았다.

랜드레이스 종

 

 - 목소리

   좀 낮고 울림이 있다. 어릴 때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안 그래도 내향적이었는데 더 입을 닫고 살았다. 내심 콤플렉스였던 셈이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발표를 자주 하게 되면서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목소리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놀리는 것 같아서 썩 좋지 않았지만 서서히 인정하게 됐다. - 자신의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순간 그게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님을 이재가 알게 된 것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꽤 이재가 세상을 너그럽게 보게 된 좋은 시작점이기도 하다. -


 - 머리카락

  좀 얇고 갈색이다. 눈도 갈색빛이 돈다. 그래서 어릴 때는 하얀 피부와 갈색 머리칼은 더 노란빛이어서 혼혈 아니냐는 말을 듣고 살았다. 이재가 살던 동네에서는 좀 튀는 얼굴빛과 머리카락이었다. 이재의 엄마와 막내 고모는 오히려 더 튀게 꾸며서 이재를 데리고 다녔다고 했다. 

  가끔 살면서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재가 눈치 안 보고 내키는 대로 저지르는 건 그녀들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튄다고? 그럼 더 튀게 하지 뭐!' 하는 그런 것.


   이재만의 실존(實存)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

    

  좀 어렵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면적인 것을 나열해보도록 한다. 외적인 것을 나열할 때만큼 간단명료하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데생에서는 하얀 종이 위에 힘껏 내저으면 그래도 채워지는 하던데, 내면에서 무엇을 끌어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는 옛 가요의 대사는 진리이다. 그래도 이재 자신의 점, 선, 면을 찾으려 했으니 일단 시작해 본다. 


  - 지적 측면

   이재는 인정한다. 지적인 허영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알아야 하는 것도 많아서 책을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다. 지적 호기심은 늘 이재를 자극한다. 

  하여 탐구욕과 학습능력은 엇비슷한 듯하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글을 좋아하는 이재의 부모님 영향이 큰 듯도 싶다. 이재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오전 풍경에는 항상 신문을 읽고 신문 귀퉁이에 짧은 소감을 적거나 책을 읽는 아버지, 그것을 같이 공유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한편, 모든 것에 겉멋이 드는 특권이 있는 듯 구는 사춘기 시절, 이재가 부린 허세와 만용은 '지식이 중요한가? 지혜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지식'이라고 우겨댄 것이다. '지식'은 소유이고 '지혜'가 실천이라 하니, 아마도 실천이 까다롭고 힘들 것을 알아서 내지른 허세였을 것이다. 

  누구나 이불 안에서 발로 차고 싶은 기억쯤은 품고 사니까.



  - 흥미 측면

    흥미라 함은 물체, 사건, 과정 등에 이끌리는 정서나 감정으로 어떤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니, 이재는 다리를 떨며 생각해 잠긴다. 

   먼저 좋아하는 것부터 생각해 본다. - 이재는 맛있는 음식을 아껴먹는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 가장 맛있는 것부터 입에 넣는다. 좋아하고 맛있는 것부터 먹고 나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 그렇지 않은 것들을 돌아보는 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두고 참는 성격이 사회적으로 더 성공하는지 여부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아끼다가 다른 사람한테 뺏기지나 않으면 다행 아닐까? 아님 썩던지.-


  영화, 책, 글, 그림, 다큐 같이 시각적인 자극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이재는 생각한다. 대신 음악은 크게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굳이 찾아서 듣는 편은 아니니까, 좋아하는 영역에 들이지 않기로 한다. - 청각보다 시각에 좀 더 예민한 편인 듯-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기존의 것과 다른 어떤 것이다. 예를 들면 같은 카페라테를 마셔도 오늘은 샷이 추가해서 마셨다면 내일은 바닐라나 헤이즐럿을 넣어 먹는다거나 계절용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시도해보는 따위의 것들이다. 

   그리고 헤어스타일은 이것저것 다 해봤던 편이다. 헤어디자이너가 이제는 더 이상 해볼 스타일이 없으니 유지하라는 조언을 했을 정도이다. 덧붙여 그 헤어디자이너는 이재가 가장 긴장시키는 손님이라 했다. 까다롭지는 않으나, 뭔가 다른 헤어디자인을 뭘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해서라 했을 정도로. 

  이런 것들을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다고 해야겠지. - 이재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시키거나 해보지 않을 것을 해야 할 때, 세련된 사람이라면 응당 해봐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건 꽤 이재를 자극시키는 말이었다. 지적 탐구욕과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맞물리도록 한 아버지의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인지도-

  

  사람들의 이야기 듣거나 그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표정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빨리 알아채다 보니, 부딪힐 일을 미리 피하기도 한다. 

  이재는 그건 할머니로부터 온 유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할머니는 사람의 비위를 맞춰주는 능력이 있었다. 할머니는 이재를 야단치거나 잔소리를 한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보면 할머니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고단수 할머니의 노련함이라 해야 하나. 

  예를 들면, 이재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가기 전, 집에 와서 저녁 먹고는 학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할머니는 살며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말씀해 주셨다. 

  "이재야 할머니가 학원에 전화해줄까? 아파서 오늘 하루 빠진다고."

  어쨌든 이재는 학원을 빠진 적 없었는데, 조금 더 지나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비위 맞추기 신공에 당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좋아하는 것은 이외에도 더 많을 테지만 여기까지 일단은 써본다. - 나중에 또 발견하고 쓰게 될지도 -



   이재의 실존을 증명할 흥미 외에 또 다른 것은 무엇이 있을까? 점과 점이 연결된 선 안에 무수한 점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재미있다. 

  차원이 다른 일을 위한 선 긋기 연습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것을 하나씩 꺼내는 것 또한 묘하게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창 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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