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Robin Nov 08. 2022

이재 이야기

02. 실존(實存) : 존재의 실질적인 상태 ②

*


   11월의 심상을 이재는 어떻게 갖고 있었나 돌아본다. 10월부터는 가을이라는 인식이 명확한 반면, 11월은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넘치고 겨울이라고 하기엔 설익은 이도 저도 아닌 달이지만 을씨년스럽고 쓸쓸한 것으로는 최고인 달이 그녀가 가져온 그것이다. 

   그래서 화창한 날보다는 흐리고 스산하고 바람은 살갗에 와서 박히는 살얼음 같은 인정머리 없는 날씨가 더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다는데 이재는 '그 사라지지 않은 것들도 곧 머지않아 사라질 것을 아는 달'이라는 사족을 굳이 붙이며 시니컬하게 굴어본다. 

 

   자, 시니컬도 하루의 용량을 채웠으니, 지난번에 하다 만 것을 이어가 보자. 



- 적성 측면

  적성이라 함은 타인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나은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소질 줄 가장 두드러진 잠재력이라 한다. 그러니까 비교 우위의 개념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더 나은 것을 말한다는데 이재는 여기서 잠시, 시니컬 버튼을 누른다.

  '잘하니까 좋아하는 것인지, 좋아하니까 잘하는 것인지 그러니까 흥미하고 어떻게 구분을 하자는 거지?'

  '잘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을까?' 

  '좋아하는데 잘 못하는 것은 영원히 잘 못하는 것으로 남는 것인가?'

  '이것저것 잘하는 사람은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잘하는 것은 노력 없이도 유지되는 것인가?'

  

  그 버튼 하나에 이재의 생각은 거미가 끝 간 데 없이 거미줄을 치는 것 같다.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로 고생하는 사람의 정수리처럼 휑할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다시 주의를 이재 자신에게로 끌어온다. 


  이재가 잘하는 것을 떠올려보니 글쓰기가 있다. 이건 글 읽는 것을 좋아하니, 쓰는 것도 잘하게 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글 쓰는 것은 생각해보니, 많은 훈련을 거친 것이다. 

  초등학생일 때 담임선생님이 이재가 쓴 일기나 독후감 같은 것들을 곧잘 읽어주시기도 했고 그녀가 쓴 일기가 어린이 잡지와 신문에 실리기도 하며 졸업식 때는 직접 쓴 답사 글로 전교생 앞에서 읽게 되기도 했다. 그때 그 담임선생님은 이재가 생각한 바를 꾸밈없이 더 잘 쓸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 작전을 쓰심에 따라 잘 훈련되었던 것이다.

   그건 자신감도 생기게 했을뿐더러,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꾸준히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 글로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이미지를 표현하거나 공감한 것을 공유하는 것, 동기유발시키는 것 등에도 곧잘 응용해 써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재는 문제나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바람직한 대안을 판단하거나 제시하는 능력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주어진 상황에서 짧은 시간 내에 서로 다른 많은 아이디어를 개발해내는 것도 자주 수월하게 한다. 그 둘을 적절하게 쓰자면 상황판단력과 사고 유창력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재는 하나의 능력이 발견이 돼서 써먹고 다듬다 보면 거기에 연결된 다른 것들도 함께 나아지는 모양이라고 기꺼이 설득을 당해 본다. 


  한편, 잘하는데 하기 싫은 것은 생각이 났다. 바느질, 음식하기 그런 것인데, 못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늘 해야 한다 생각하면 좀 싫으니까, 이재 자신의 능력에서는 과감히 뺀다. 생활하는 데에 무리는 없지만 그것으로 먹고살고 싶지 않으니까.



- 가치관 측면

   이재는 흥미와 적성보다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는 것은 "가치관"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즉 가치관은 인간이 본인을 포함한 세계 또는 그 속의 사상에 대해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근본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가와 바라보는 바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의 중요성이랄까.


   또 가치관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결정의 순간이 필요할 때를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 그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하니, 가치관에 대해서는 자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재는 생각했다.


   그래서, 이재는 잘 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은 다른 이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여긴다. 돈이라는 것을 좇다가 오히려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보다는 자율성, 그리고 이재의 일과 판단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가,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그것을 지키는가, 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움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이재는 확신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자율성, 영향력 발휘, 변화 지향성쯤으로 할 수 있을 듯하다. 또 그 이면에는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히 여겨서 언짢아하는 마음)과 수오지심(羞惡之心: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은 이재가 자라면서 누누이 들어 귀에 박한 가치관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것 때문에 이재는 미련스러운 선택과 결과를 감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고귀한 자존심이 아닐까? 



   점, 선, 면에 해당하는 이재 자신의 여러 점들을 쓰다 보니,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구분해도 결국 피상적이다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선을 무수히 그어서 그것이 면이 되더라도 그 면이 그림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그 특성들을 잇는다 하더라도 이재 자신의 실존 전체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이재는 조금씩 더 이야기를 확대해보기로 한다. 


   한편, 선긋기 연습과 명암 처리 연습을 어느 정도 하고 나니, 데생 강사가 정육면체를 이재의 앞에 놓는다. 드디어 입체에 대해 들어가는 모양이다. 


  To be continued.


  


이전 03화 이재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