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모든 게 시시해져 버렸다. 매주 야구장을 찾아 "무적엘지!"를 부르짖던 기억은 희미해졌고 29년 만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 세제거품이 가득한 고무장갑을 낀 채 멍하니 티비만 쳐다보았다. 축구공 하나에 목숨 걸고 뛰어다니던 시절은 빛바래 가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할 때도 햄스트링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종종걸음을 친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앞뒤 재지 않고 열정을 뿜어내던 추억을 되짚어 볼 때면 민망할 따름이다.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있는' 가짓수가 줄어드는 게 자연의 이치일 텐데 '하고 싶은' 일마저 손에 꼽으니 약간의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내 물러간다. 그저 이전과는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요즘이다.
책을 겉핥기 하고 사 버릇하는 습성을 지금도 완전히 고치진 못했다. 다만 권태가 불안을 조금씩 잠식해 가면서 이전보다 에세이나 소설에 눈길이 머물곤 한다. 적어도 문학을 읽는 동안은 깜빡 졸지언정 여기서 뭐 하나라도 빼먹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은 옅어진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하루종일 눈 쓸기, 아픈 이웃 돌보기, 버려진 고양이 키우기까지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살아있는 이유를 증명하는 60대 할머니. 그녀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고 어느 누구의 방문도 허락지 않는다. 병든 그녀를 구하겠다는 명목으로 외부인들이 침입했을 때 그녀의 세계는 무너져 버린다.(<The Door> 중에서) 오물 뒤범벅인 그녀의 방을 소독처리하는 광경을 눈앞에 그리면서 한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 먹먹함을 가눌 길이 없다. 문학을 읽는 동안은 지루할지언정 더디게 흐르는 일상의 굴레에서 적막이 흐르는 한적한 호수, 뉴욕 시내 한 복판의 미술관, 거대한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현장으로 나를 옮겨 놓는다.
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수백 권의 책을 버렸는데, 불과 일 년 남짓 사이에 백권 가까운 책들을 또다시 그러모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이중 절반 이상은 사라질걸 알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전에 쳐둔 밑줄 그은 문장을 곱씹고 때로는 따라 써보면서 어제보다 한 뼘 성장하는 나를 기대해 본다. 일상이 지지부진할지언정 나 자신이 시시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기에,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