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읽는가

by 방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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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모든 게 시시해져 버렸다. 매주 야구장을 찾아 "무적엘지!"를 부르짖던 기억은 희미해졌고 29년 만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 세제거품이 가득한 고무장갑을 낀 채 멍하니 티비만 쳐다보았다. 축구공 하나에 목숨 걸고 뛰어다니던 시절은 빛바래 가고 아이들과 공놀이를 할 때도 햄스트링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종종걸음을 친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앞뒤 재지 않고 열정을 뿜어내던 추억을 되짚어 볼 때면 민망할 따름이다.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있는' 가짓수가 줄어드는 게 자연의 이치일 텐데 '하고 싶은' 일마저 손에 꼽으니 약간의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내 물러간다. 그저 이전과는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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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안과 권태 사이의 줄다리기가 아닌가 싶다. 분명 어디서 비슷한 말을 듣거나 읽었을 텐데 기억이 가물하여 내가 만든 미문(美文)으로 퉁치기로 했다. 조바심으로 동분서주했던 지난날, 자기 계발과 경제경영, 그리고 투자 관련 서적 사이에서 헤매곤 했다. 게 중에는 하워드막스나 짐 콜린스의 서적처럼 비즈니스 세계를 뛰어넘어 삶의 지향점을 제시해 주는 보물 같은 책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의성에 초점을 맞춘,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두툼한 잡지 같은 글 들이었다. 그만큼 느긋하게 한 구절 한 구절에 머물기보다는 책 제목에 혹해 일단 사고 보는 내 안의 조급함에서 기인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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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겉핥기 하고 사 버릇하는 습성을 지금도 완전히 고치진 못했다. 다만 권태가 불안을 조금씩 잠식해 가면서 이전보다 에세이나 소설에 눈길이 머물곤 한다. 적어도 문학을 읽는 동안은 깜빡 졸지언정 여기서 뭐 하나라도 빼먹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은 옅어진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하루종일 눈 쓸기, 아픈 이웃 돌보기, 버려진 고양이 키우기까지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살아있는 이유를 증명하는 60대 할머니. 그녀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고 어느 누구의 방문도 허락지 않는다. 병든 그녀를 구하겠다는 명목으로 외부인들이 침입했을 때 그녀의 세계는 무너져 버린다.(<The Door> 중에서) 오물 뒤범벅인 그녀의 방을 소독처리하는 광경을 눈앞에 그리면서 한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 먹먹함을 가눌 길이 없다. 문학을 읽는 동안은 지루할지언정 더디게 흐르는 일상의 굴레에서 적막이 흐르는 한적한 호수, 뉴욕 시내 한 복판의 미술관, 거대한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현장으로 나를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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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든, 아니면 각성이나 무기력이든 마음속 정규분포곡선의 끝자락으로 밀려나는 적이 있다. 이럴 때는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숲길을 걷는다. 살다 보면 미묘한 모멸감을 느끼곤 한다. 적극적으로 항변하기에는 애매하고 결국 예민하고 속 좁은 내 마음만 자꾸 뒤적거리곤 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으라는 한 스토아학파 철학자의 조언을 따라 밑도 끝도 없이 파고 내려가는 나 자신을 다독인다. 한편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속삭이는 숲 속 현자의 한마디에 기대어 내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건 아닌 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동안 내 마음의 눈금이 조금씩 곡선 중앙으로 옮겨 간다. 책은 분명 나를,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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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수백 권의 책을 버렸는데, 불과 일 년 남짓 사이에 백권 가까운 책들을 또다시 그러모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이중 절반 이상은 사라질걸 알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전에 쳐둔 밑줄 그은 문장을 곱씹고 때로는 따라 써보면서 어제보다 한 뼘 성장하는 나를 기대해 본다. 일상이 지지부진할지언정 나 자신이 시시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기에,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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