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에 갈 때마다 늘어나는 숫자 속에 나의 존재감을 찾는다. 2만, 3만... 그리고 얼마 전에는 5만 쌍을 돌파했다는 광고가 대문짝 만하게 떴다. 그 흔한 인터뷰 한 번 해보지 않은 나와 아내지만 지난 십 여 년간 지하철 광고판의 숫자 속에 녹아진 우리의 흔적이 1년 365일 만천하에 생중계되고 있다.
이십 대 중반 무렵 어느 책을 읽고 자기 선언문을 써서 코팅을 한 채 책상 앞에 붙여 두었다.(지금도 여전히 노트북을 닫으면 정면에 당시 쓴 글을 마주하게 된다.) 서른 살에 결혼해서 아이 세 명을 낳고 결혼 십 주년을 기념하여 아이들과 뉴질랜드로 여행을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나는 솔로였다.
솔로 탈출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마음 맞는 군대 고참 두 명과 카투사 시절부터 주말에 서울에 가서 미팅을 하곤 했는데,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조직화(?) 되었다.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매주 한 번씩 미팅을 주선했고, 비용 절감을 위해 날씨가 좋을 때는 대형 마트에서 5리터짜리 싸구려 와인 한 병을 사서 양재 시민의 숲에 돗자리 깔고 여성 분들을 맞이했다. 촛불과 기타까지 준비해서 나름 로맨틱한(?) 저녁을 준비했고 매번 미팅이 끝나면 참석했던 분들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서 우리 나름대로 총평을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는 연애보다는 함께 '기획'한 행사에 관심이 많았고 이런 우리를 여성 분들이 어떻게 볼지는 그닥 중요치 않았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씩 갖는 소소한 이벤트가 우리 삶에 활력소가 되었다고나 할까?(우리 셋이 이벤트 회사를 차려 볼까 진지하게 논의도 해봤다.)
각양각색의 추억들이 쌓여 가는 만큼 미팅을 잡을 만한 연줄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 각자도생의 길을 가기로 했다. 2010년 어느 따뜻한 봄날, 나는 강남역에 위치한 결혼정보회사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온, 미래의 배우자가 될지 모르는 여성분들을 빛의 속도로 스캔하고, 멀쑥한 정장 차림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휘리릭 지나쳐서 상담실로 향했다. 홀로 자발적으로 찾아온 것에 대해 커플 매니저님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애써 감추는 게 보였다. 그때 비로소 체감했다. 짝짓기 전쟁이라는 체스판에 하나의 말로 참전했다는 사실을.
만남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매니저님이 서로 어울릴 것 같은 분을 추천해 주시거나, 내가 여성분들 프로필(특히 사진)을 보고 만남을 신청해서 상대방이 수락하면 소개팅이 성사되는 거다. 반대로 가뭄에 콩 나듯이 여성분이 나에게 만남을 신청해서 내가 만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니저님이 정해주신 장소는 주로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둘이 식사하는 데 1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들었고 새로운 분을 만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적지 않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여 나중에는 연락처만 받고 여성 분 직장이나 집 근처 가성비 좋은 곳으로 직접 장소를 정했다.
한 명, 두 명... 어느덧 50명 가까운 여성 분을 만났고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미팅하던 시절처럼 한 명씩 차곡차곡 엑셀 파일에 짧은 코멘트를 기록하는 나를 발견했다. 한 번은 하루에 두 분을 뵈었는데 이름조차 헷갈려서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 회의가 들었다. 만남 횟수 제한이 있어 재가입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내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던 매니저님이 퇴사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회사를 떠난 매니저님도 나보다 겨우 4~5살 많은 여성 분이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커리어와 결혼 고민을 하는 옆 동네 누나였다. 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누님 이상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소개팅을 주선했다. 술자리가 파할 즈음에 누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재원아, 넌 항상 직접 여성 분 프로필 보고 선택해서 만나던데, 그러지 말고 매니저가 추천하는 분도 한번 만나 봐."
프로필 사이트에 들어가면 수많은 여성 분들의 사진과 직업, 성격 등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심심풀이 땅콩 먹듯이 여성 분들 얼굴만 보고 만남을 신청하고 거절당하고 혹 성사된다 해도 두 차례 이상 만난 적이 없었다. '더 나은 대안이 있지 않을까?'라는 불순한 의도를 숨긴 채 만남에 응하는 남녀 한 쌍이 잘 될 턱이 없었다. 이건 마치 백화점에 옷 사러 가서 모든 매장을 둘러본 후에 결정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다른 매장에 들른 사이에 내가 눈여겨본 옷이 이미 팔리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옷이 내 몸에 맞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 해 가을 쌀쌀한 어느 날, 한티역 주변에서 매니저님이 이전부터 만남을 권했던 여성분을 뵈었다. 단아하고 차분한 그분을 뵙고 내 프로필을 사이트에서 숨긴 채 그녀에게 올인했다. 루미큐브 게임으로 커피값 내기를 하고 야구장에서 함께 무적엘지를 외치며 신뢰를 쌓았고 두 계절이 지나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미팅과 소개팅으로 점철된 지난한 여정을 비로소 마무리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계획했던 뉴질랜드는 가지 못했지만 코로나 기간 중에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호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20년 전 끄적거렸던 메모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현실로 이루어진 셈이다.
15년 전 그 해 가을로 잠시 되돌아가본다. 매니저님 조언을 따르지 않고 관성대로 사진만 보고 소개팅 쇼핑을 했다면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내는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나았고 MBTI도 나와 똑같았으며(이건 세월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믿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직감이 들었다. 적어도 나처럼 팔랑팔랑 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으리라는.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아내가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그녀를 만나게 해 준 옆 동네 누님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