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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Dec 12. 2024

우리는 언제 이렇게 자랐나

이웃과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 전시가 시작되었다. 엄연한 ‘첫’ 전시 소식을 들은 알과 공룡은 축하를 위해 대전에 내려왔다.

(알과 공룡은 모두 나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으로, 그들은 그때부터 사귀는 사이였다가 지금은 부부의 사이가 되었다. 둘은 내게 각각 몹시 각별해서 언젠가 둘만의 이야기를 기약하기로 하고, 앞으로 이 부부를 한꺼번에 부를 때는 편의상 공룡알이라 칭하겠다.)

 

 공룡알은 전시 시작부터 첫인사로 그의 행방을 물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이였다. 그와 공룡알은 같은 대학을 나왔으며, 특히 공룡과 그는 같은 과의 선후배였기도 했으므로 우리는 다 함께 친했다. 명색이 내가 준비한 첫 전시가 시작되었고, 공룡알이 나를 만나러 대전에 온다면, 그 순간에 그가 함께 있어야 마땅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이 모든 것 보다 더 즐겁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른 데에 있었으므로, 그 역시도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짐작할 리 없었다. 전시장에서는 짐작의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 이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가 없어서, 공룡알에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핑계를 대충 둘러댔다. 반은 그들도 대충 듣고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에게는 왜인지 오랜 사랑의 비극엔딩을 최대한 늦게 알리고 싶기도 했다. 공룡과 알은 나처럼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사랑의 결실로 결혼한 지 이제 백일이 갓 넘은 신혼이었다. 친구이지만 마음만큼은 가족 같기도 한 그들에게 탄탄한 사랑의 길잡이만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더욱이 그때까지는 그와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결심을 세우지 못한 채였으므로, ‘이혼’이란 단어는 어찌 될지 모를 미래를 두고 섣부르게 꺼낼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내 편에 서서 나약한 내 마음을 단단하게 지지해 줄 이들 역시 알과 공룡이었다. 머리로는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던 그때. 나는 나의 멱살을 잡고라도 옳은 방향으로 단단히 이끌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누군가가 알과 공룡이라면 감히 믿고 끌려갈 수 있었다.

 더 이상 그들 앞에서 행복하기만 한 척을 그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전시 일정이 끝나고 함께 저녁을 먹던 중에였다. 그가 없는 우리 집에서 공룡알이 벌써 세 번이나 그의 부재를 되묻고 아쉬워할 때. 원래도 거짓말을 못 견디는 성격이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그토록 맛있게 먹던 단골집의 회덮밥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먹는 참담한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사실 더 이상 가식적인 웃음을 짓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들 앞에서라면 솔직하게 슬퍼할 수 있었다. 일말의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그들의 안정보다 나의 안식을 택하기로 했다.




ㅇㅇㅇ 바람났다.




 나의 간결한 고백으로, 공룡알은 나란히 앉아있던 모습 그대로 일시 정지 되었다. 우리는 수학이나 과학 같은 거나 열심히 공부했지 결혼한 친구 남편의 외도 소식에 반응하는 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한 그들이라도 순식간에 적절한 반응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의 입장이 어떻든, 나는 말을 꺼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내 마음속 돌덩이가 그들에게 조금씩 나눠진 결과였다. 그날 밤 우리는 욕하다, 침묵하다, 탄식하다, 또 욕하고, 다시 침묵하기를 반복했다. 화가 났다가, 이유를 찾아보려 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되어 답답했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현실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그때 나는 얼굴이 벌게지기만 했었는지 조금 눈물을 보였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둘인 공룡과 알이 헤어지지 않고 무사히 부부가 되어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맙고 소중했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당부했다. 너희는 꼭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라고.

 알은 서울로 올라가서 내게 백만 원을 보냈다. 이혼을 결심한 그의 태도가 어떨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움츠러들까봐 주는 지원비 같은 거라고 했다. 자영업자의 애환을 아는 알이었다. 오랜 사랑 끝에 맞는 이별의 고통을 아는 알이기도 했다. 문득 알이 공룡과 헤어졌을 때, 내 몫까지 사 온 컬러링북을 칠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던 날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이 슬픈 시간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버틸 수 있는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알이었다. 겪어보니 나는 그때 알에게 필요한 위로를 충분히 주지 못하였을 것이 분명해서 미안했고, 그런 알의 헤아림이라 울컥 눈물이 났다. 십 년 전쯤 그와 헤어졌을 때에는 나를 기분전환 시켜주겠다며 인생 처음으로 네일숍에 데리고 갔던 알이었다. 알에게 받은 백만 원은 쓸 일은 없었지만, 그 자체로 든든한 알이 분신으로 내 곁에 있는 느낌이라 갖고 있다가 상황이 모두 정리된 후에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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