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둥 Dec 19. 2024

눈물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는 꽃집의 일 년 치 대목으로 여겨졌던 졸업식 특수를 앗아간 대신, 크리스마스 특수를 가져다주었다. 우울한 시대를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기분내기용으로 트리를 장만하는 집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중 조금이라도 개성이 드러난 트리를 원하거나, 제대로 된 품질의 오래 볼 수 있는 트리를 찾는 소비자들은 감각 있는 꽃집에서 엄선하여 디자인한 트리를 구매했다. 상점들도 앞다투어 특색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느라 바빴다. 백화점의 대대적인 이벤트를 대표로 크고 작은 브랜드들, 골목의 작은 카페, 음식점들도 이왕이면 화려하게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따뜻한 겨울을 느끼고 싶어 하는 흐름이었다. 그런 흐름에 편승한 어느 뒷골목의 플로리스트는 12월 내내 쉴 새 없이 트리를 만들고 리스(잎과 가지를 동그랗게 엮어 문에 걸어두는 장식.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상징이다.)를 엮으며 성탄 전야들을 보냈다. 리스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작업은 굉장한 집중력과 노동이 필요한 일이라, 눈과 코와 손 끝에 연결된 감각들이 하나하나 살아나서 다른 생각은 모두 멈추고 지금 만들고 있는 ‘이 것’만 생각하게 해 주었다. 머리와 마음이 복잡할 때 하기에 아주 그만인 작업인 것이었다. 노동요로 틀어놓은 크리스마스 캐럴과 반짝이는 불빛에 둘러싸인 채 밀린 트리와 리스를 만드는 여인. 그 여인은 송진이 잔뜩 묻어 검어진 손으로 콧등을 타고 흐르는 눈물도 닦지 못한 채 어느 늦은 밤 숨죽여 울었다. 자신의 손 끝에서 탄생한 어떤 것을 이토록 아껴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 상황에서도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로. 그럼에도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아쉬움으로. 이 겨울, 가슴 뛰고 반짝이는 것들을 다른 여자와 함께 나누고 있을 남편을 둔 자신의 처연함을 잊게 해주는 것은 오직 꽃과, 작업실을 채워주는 사람들뿐이었다.  꽃을 업으로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대체로 아름답고 때때로 말도 못 하게 큰 위안을 주어 버틸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작업을 마쳤다. 퇴근한 그와 나는 함께 멀리 길을 나섰다. 크리스마스는 너와 보낼 거라는 그의 선심 쓰는 듯한 계획에 기가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그러기로 했기 때문이다. 연휴에 수많은 인파의 행렬에 가담해야 하는 강릉 여행은 교통체증을 극심히 싫어하는 그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타입의 것이었다.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우리의 여행길은 행복한 캐럴도, 따뜻한 속삭임도 없이 그저 시리고, 조심스러웠다. 정적이 흐르는 차 밖으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갇혀보기라도 하라는 듯이 어마어마한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도로 위 수많은 차와 폭설. 안개 낀 도로를 질주하다 남녀 주인공이 사망하는 시트콤의 엔딩처럼, 이대로 눈 길을 달리다 사고가 나서 그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엔딩이라면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우리 부부가 곧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될까. 그 이혼의 사유가 남편의 외도였다는 건 알게 될까. 그런 와중에 왜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여행을 간다고 길을 나섰을지에 대한 추측도 난무하게 될까. 아니면 아무 일도 모르는 여럿을 위해, 우리의 현재를 아는 소수가 침묵하여 그와 나는 죽어서도 나란히 있게 될까. 이런 최악인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알에게 연락이 왔다. 궁상맞게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연락했을 알. 그런 알에게 그와의 여행을 숨김없이 말한 것은 그 순간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우의였다. 알이 얼마나 싫어할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수 있을 알. 그와 함께 강릉행 중이라는 사실을 안 알은 ‘지금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앞으로 너를 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 부분에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보였느냐 하면, 바로 가장 가까운 휴게소에 내려 기다리고 있으면, 공룡과 함께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깨진 사랑의 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답답한 친구를 데려오느라 신혼 첫 크리스마스이브를 꼬박 쓰겠다는 공룡알. 그렇게까지 하려는 그들의 마음을 머리로는 모르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래서 한참을 망설였기 때문에. 그러나 13년의 시간을 마무리하는데 나쁜 기억만 갖고 끝내고 싶진 않았다. 이왕 이 사랑의 끝이 이혼이라면 남들이 뭐라 하든 끝까지 내 사랑에 대해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나와 한때 인연이었던 그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 후 이별하고 싶었다. 내 선택에 대한 책임과 후회는 오로지 내 몫이 될 것이므로 미련도 후회도 없기 위해서는 이성이 바닥을 드러낸 결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알의 단호한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동하는 것을 보니 역시 아닌 건 아닌 것이었다.  


 알의 뜻대로 나는 가까운 휴게소에 내리고, 그들이 나를 데리러 오는 일이 말처럼 쉬웠다면 좋았겠지만,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영업시간이 밤 10시까지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미 9시가 다되어가고 있던 시각, 서울과 가장 가까운 휴게소라도 공룡알이 열 시 전에 어마어마한 눈과 차를 뚫고 도착할 방도는 없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강릉 호텔에 도착했다. 빠르게 쌓이는 눈 때문에 저녁 먹을 새도 없이 내리 달린 우리는 각자 배 채울 것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12시가 되자 그는 메리크리스마스- 하고 짧게 외쳤다. 왠지 공허하게 흩어지는 메리크리스마스는 내가 아닌 그 애를 위해 공중에 띄운 인사처럼 느껴졌다. 창 밖으로는 여전히 흰 눈이 수선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그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나는 계산대 앞에서 주문한 군고구마를 받아 품에 안았다. 편의점에서는 토이의 ’뜨거운 안녕’이 흘러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