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쏘쏘리 벗 알러뷰 다 거짓말.
우리의 이야기가 드라마가 된다면 첫 만남에 등장하는 OST는 단연코 빅뱅의 ‘거짓말’이다. 대문자 I 삼인방인 나와 라마와 거북이는 그 시절 최고의 아이돌 빅뱅을 보기 위해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가 친해졌다. 다른 친구를 사귈 재간이 없었는지 아무튼 우리는 서로 잘 맞는다고 느꼈고, 이후 모든 수업을 함께 들으며 서로의 대학 시절을 빠짐없이 채웠다.
아침부터 같은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같은 메뉴의 학식을 먹으며, 같은 과목의 조별 과제를 하다가 같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 잠만 다른 곳에서 자는 날들이 몇 년째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엔 스스로를 뉴런 공동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겠다 느낄 정도로 정보의 공유에 지체라는 것이 없는 관계가 되어있었다. 당장 먹은 저녁 반찬이나 서로의 생리 주기까지 꿰고 있을 만큼 매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럼에도 이 일은 너무 심각해서 그들에게 차마 바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제주에 간 이들이 라마와 거북이였기에 더 그랬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라마와 거북이에게 견딜 수 없는 심정을 전했다.
사건을 듣자 라마와 거북이는 굉장한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극도로 차분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내 안위를 물었다. 우리는 모두 중대한 사건 앞에서 생각이 또렷해지고 한 층 더 침착해지는 타입이었다. 다만, 탄식의 끝에 라마도 거북이도 입을 모아 한 말은, 그와 내가 자신들이 아는 커플 중 가장 이상적인 부부였기에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믿어지지 않았다. 내게 닥친 현실의 실체는 곧바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버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지울 수 없는 사실인 것도 자명했다. 자그마치 13년 관계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걸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원래 쌓아 올리는 데엔 오랜 공이 들지만 무너뜨리는 건 순간인 법이었다. 이 땅에서 생겨난 것 중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뢰 또한 그 영역에 있는 것이다. 결혼이란 제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우리 중 라마는 평소에 가장 이성적인 친구여서 그런 그녀가 가끔 이성을 잃고 내뱉는 무시무시한 욕은 살벌한 만큼 강력한 위로가 된다. 라마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청자를 향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욕을 한바탕 쏟아냈다. 아무리 퍼부어도 넘치지 않는 독에 물을 붓는 사람같이 열정적이고 쉴 새 없었다. 그리고는 넋을 놓고 있는 나 대신, 자신의 지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배신의 대상을 혼쭐 내 줄 공식적인 방법을 찾아 나섰다.
한때 사회부 기자를 꿈꿨던 라마에게 정의는 당연히 피부로 느껴져야 마땅한 것이었다. 역시 라마다운 공감법이었다.
그런가 하면, 순하디 순한 감정 이입 대왕인 거북이는 이 상황에서 내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누구보다 빠르고 명료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자문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 그 말을 거북이가 가장 먼저 했다는 점이 놀랍다. 나는 그제야 나에게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변호사라는 직군의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알게 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아마 평생토록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온 34년. 특히나 철저하게 이과적 사람들에 둘러싸인 삶을 살아온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며칠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거북이는 그런 내게 어떻게 하면 변호사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알려주었다.
연애시절 그와 헤어졌을 때, 러시아 봉사활동을 마치고 가장 먼저 달려와 끼니를 챙겨주던 거북이. 그때 거북이가 날 보자마자 했던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너 얼굴이 카키색이 됐어!“
이번에도 거북이는 가장 먼저 달려왔다. 눈물로 짓는 행복의 전시 오픈을 함께 도우며
“두 번째 보는 카키색 둥둥의 얼굴이네.”
하고 말하는 거북이. 슬픈 상황이지만 그 말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서 조금 웃겼다.
거북이는 그 때 처럼 뭐 좀 먹었냐고 묻고는 먼저 밥부터 먹였다. 그리고는 정신이 없는 나를 앉혀놓고 변호사와 상담할 내용을 미리 정해보자며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서 스피커폰을 켜고 전화 상담도 해주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쓸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필요할 수도 있다며 휴대용 녹음기를 주문해 주기까지 했다. 그녀의 어마어마한 공감능력과 다양한 간접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거북이는 나와 꽤 비슷한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내놓은 솔루션들은 영 내 생각 밖의 것들이라 작기만 했던 거북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갓 스물에 처음 만나 아메리카노의 맛도 모르던 우리. 그런 우리에게도 남들과 공평하게 시간은 훌쩍 흘렀고, 인생의 쓴 맛을 진탕 경험 중인 친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각자의 위로를 건네는 삼십 대가 되었다. 쉽게 볼 수 없는 라마의 뜨거운 분노와 거북이의 냉철한 가이드는 눈물로 뒤범벅인 매일을 사는 중에도 든든한 버팀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