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분명한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보충

by 김경현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분명 ‘분명’한 것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감각 영역에 세계가 들어오고, 자기 의식감이 그것을 본능적으로 해석하는 절차가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게 ‘분명히’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분명하다’고 여기는 그것들은, 정말 그렇게 분명하고 사실일까.


여러 학자들의 후속 연구와 구전을 통해 선대의 지혜로운 자가 남긴,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감각의 역설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용인즉, 우리는 보통 내가 어떤 것을 느끼고 행한다면, 그것은 내 의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대부분 ‘내 생각’, ‘취향’, ‘결정’이라고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 영향이 너무 자연스럽게 내 것이라는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어쩔 땐 나는 선택했다고 느끼지만, 그 선택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자세히 따져 묻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너무나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나를 옥죄고 있음을 발견한다. 살아온 환경, 문화, 관습, 지인의 정보, 길 가다 마주치는 동네 이웃의 소문 나르기...


내가 정말 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오래 듣다 보니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일까. 내가 정말 이 일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남들이 좋아 보인다고 말한 삶의 형태를 내 욕망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오늘 이 선택을 한 것은 진짜 내 의지일까, 아니면 수많은 외부 자극이 내 안에 쌓인 결과일까.


이미 잘 알려진 위의 내용 외에도, 감각은 한층 더 심각하게 오묘하다.


단체 합창 중 이례적으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옆사람에 놀란다. 앞에 앉은 사람도 놀라 확인하러 뒤돌아보는 것 같다. 어? 자세히 보니 그냥 의자에 씐 비닐봉지가 잠깐 바람에 날리는 거였네.


나만의 감각과 내면의 생각이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나리오를 그린 것이다. 즉, 나의 옆사람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불편감을 있지도 않은 인물에 투영시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정당화하고 있던 것이다. 있지도 않은 것을 얼마든지 만들어 내어 자기기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몇 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1. 사람의 감각이라는 건, 생각보다 세상이 주는 '무차별적인' 정보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자기만의 그릇의 크기에 맞추어 그저 편할 대로 해석할 것이란 것. 그렇기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는 어떤 한 꼰대의 조언이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2. 우리는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의 방식을 너무 유일무이하게만 받아들인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 세상에 '있음(有)'으로의 방식으로 밖에 존재해 본 적 없는데도, '없음(無)'의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이 살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있음(有)의 세계 속에서, 세상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무차별적인 자극을 멋대로 해석하여 '우리'와 '쟤네'의 궤도를 무의미하게 가르는 우리네 모습을 잠시라도 제3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존의 삶의 방식의 한계가 뚜렷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중요한 질문이다.


내 감각이 완전 당연 순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내 선택이 100퍼센트 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에 흔들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그때부터 비로소 나는 더 조심스럽게, 더 정직하게, 더 '분명'하게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순응할 수도 있다.
반항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알아차리는 일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각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정말 내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영향이 내 안에 스며든 끝에, 비로소 내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쉽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조금 더 깊게 살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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