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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보다는 공감이다 2

by 무상

‘화성기위(化性起爲)’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순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예로써 다스려 선하게 돌릴 수 있다는 화성기위를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교육의 힘일 것입니다. 즉 도덕적 교육으로 타고난 악한 본성을 선한 본성으로 전환이 가능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함을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으로 교육을 통하여, 특히 입시교육를 통하여 악한 본성을 더 일깨워주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이자 교육자인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또한 사회와 제도를 악으로 보았기에, 선하게 태어난 인간이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서 악한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주장했던 사상가입니다. 그래서 아동을 인위적인 제도 교육이 아닌 자연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도 가끔 루소의 말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의 제도권 교육이 우리 아이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선(善) 조차도 오히려 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입니다.


물론 우리 교육도 학교에서의 인성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기는 합니다. 인성교육을 담당했던 가정에서조차도 입시 위주의 학업성취를 위한 노력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인성 교육이 학교교육으로 떠넘겨져 있는 상태입니다. 인성교육에 대한 요구는 항상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적인 교육 1순위로 꼽혀왔습니다. 하지만 초·중학교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성적이 최우선일뿐 인성교육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할지라도 학교 차원에서 체계적 지원은 커녕 인성 교육이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학교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성적 제일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의 대부분 학교들이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인성교육을 하고자 하는 체제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교사들도 교사 본업 이외의 잡다한 업무들에 치여 피로한 상태에서 교과교육 위주의 타성에 젖어있어 인성교육을 별도로 해야 한다는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듯 합니다. 또한 교사들 스스로도 인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 전문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단지 학교 자체 생활규정에 의한 지도가 인성교육을 대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학교 단위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하든 안 하든 계획하기로 되어있는가 봅니다. 문제는 형식적인 계획이고, 한다 한들 비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일례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학교폭력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과연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아야 하고, 타인의 권리 역시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인식시키는 교육만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걸까요? 입시제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절박하게 우선적으로 점수를 챙겨야 하는 아이들에게, 친구들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간헐적이고 이론적인 인성교육을 한들 효과가 있겠습니까?


도덕적 인성은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수시키는 교화의 방식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도덕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학교 자체가 민주적이고, 인격적이고, 자율성을 강조하고,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야만, 그래서 아이들의 몸에 체화될 수 있는 여건이어야만이 자연스럽게 인격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론적 지식 주입과는 달리 공감 능력은 감정 지수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정의적 영역에 관한 교육에서는 공감 능력을 심어줄 수 있는 접근이 더욱 필요합니다. ‘공감 교육’이 학교에서 하나의 정규 교육 과정 교과목으로서 가르치거나, 형식적이고 간헐적인 접근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당연히 아래와 같은 환경 조성과 함께 상당한 시간과 지속적인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스포츠 교류의 일환으로 호주 클럽활동 대회에 운동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온 동료 교사가 아주 놀라고 부러웠다며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을 전해줍니다. 호주 아이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하루 종일 클럽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정규 수업의 한 교육과정으로서 매주 수요일마다 어느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여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협동 팀워크를 다지며 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클럽이든 가입해서 팀원들하고 실력을 기르고, 매주 다른 팀들하고 경기도 해야 한답니다. 정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서, 출석을 담당 코치가 체크하고 학교에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내가 놀랍고 부럽다고 보는 이유는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성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클럽활동을 통하여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팀원들을 우선적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팀원을 위해 자신의 주장, 욕심을 조절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기도 해야 합니다. 즉, 팀의 공동 목표를 위하여 팀원인 타인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협동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매주 하루씩 반복하며 팀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타인과의 관계 형성을 배워나갑니다. 이것보다 더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효과적인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러운 프로그램입니다.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고,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등 3대 능력은 독일의 민주시민 교육 중 아이들에게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내용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모든 국가에서 길러내야 할 민주시민으로서 필수적인 능력들입니다. 우리 교육에서는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지만요. 덴마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각국의 행복 지수를 조사하면 1위가 늘 덴마크입니다. 어느 신문사의 특파원이 세계 각국의 행복 지수를 조사하면 1위가 늘 덴마크라는 점에 궁금하여 직접 현지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가도 비싸고 대부분의 직장인은 월급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그런 나라에서 거의 모든 응답자가 행복의 비결로 꼽은 것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이유였답니다. 어릴 때부터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집과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타인에 대한 존중을 첫째로 꼽고, 이를 반복적으로 인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한줄 세우기로 1등만을 강조하는 우리 교육을 통하여 독일 국민 같은, 덴마크 국민 같은 인성을 갖춘 사회 구성원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요?


우리같이 간헐적이고, 이론적인 인성교육이니, 특기 적성 개발이니 하는 교육 담론은 모든 교육의 중심에 입시가 놓여 있는 한, 오직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최우선 가치가 되는 한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입시에 쫓기면서 모든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겉치레 인성교육으로 대신하면서 아이들 탓을 하지 마십시오. 당장 내 코가 석자인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요. 정작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면 호주와 같은 프로그램, 교육 활동 정도까지 제공해 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좀 더 적극적으로 최소한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동시에 인간관계를 발전시켜줄 수 있는 제도, 여지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의례적이고 이론적인 인성교육 계획서를 작성하는 우리 학교의 모습이 아니라, 일주일에 하루라도 원하는 활동을 급우들과 맘껏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교육과정, 이러한 내실 있고 진실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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