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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Jun 23. 2022

생명과학, 영향력 지수라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생명과학자의 철학


                            "혁신적인 신기술개발"

                             "의미 있는 최초 발견"


등등 과학분야 '연구성과'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 흔히 그 성과의 내용을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해당 논문이 실린 곳이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저널(journal, 학술 잡지)이라는 정보와 함께 이 저널의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 IF)는 몇 점이라고 소개하는 글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피인용지수 혹은 영향력 지수로 불리는 IF는 해당 저널의 영향력을 재는 지표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IF는 Thomson Scientific 회사에서 제공하는 JCR (Journal Citation Report)에서 주제별, 출판사별, 국가별 또는 전체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수치는 지난  2년간 해당 저널에 실린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된 횟수를, 2년간 그 저널이 실은 논문 수로 나누어 계산됩니다. 즉 인용수가 종전에 비해 급증하게 되면 자연스레 IF점수는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IF보다 양적 질적인 수준을 포괄하는 'H-index (Hirsch index)' 점수제도 병행 사용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실적이 제대로 반영되므로 박사 이후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신진연구자에게 불리할 수 있어  IF의 보조 지표로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생명과학정보센터 브릭(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 BRIC)에서 선정하는 '한국을 빛낸 사람들 (한빛사)'주저자 혹은 교신저자의 역할로 게재된 논문의 해당 저널이, 당해연도의 IF지수 혹은 직전 5년 간의 IF 평균지수가 10점이 넘어야 합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Nature, Science 그리고 Cell과 같은 저널들은 IF평균 4~50점에 육박하니, 대부분 교수 임용과 같은 극히 제한적인 포지션에 대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소위 'TOP class 논문'을 가져야 하는 부담감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젊은 연구자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 또한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사실입니다.


최근 학회 발표할 기회가 있어서 이력서 (CV) 정리를 하다 보니 필자가 5년간 공동연구원으로만 참여해서 통과한 20여 편의 논문들의 저널 평균 IF가 10점대 위로 급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저널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COVID19의 영향으로 관련 저널들의 인용회수가 단기적으로 급격히 상승한 영향인 듯합니다.

팬데믹 시기가, 오히려 관련 생명과학 분야의 주가 상승과 더불어 '한국을 빛낸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만, 백신의 잠재적 부작용에 대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한 학계를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R&D (연구개발)도 우리와 같은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발된 백신에 대한 장단점을 파고들어 확인해보면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공식적인 토론의 장이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문을 점수화한다는 비평이 간간이 이슈화되기도 하지만 그때뿐이고 여전히 IF가 교수 임용, 연구비 수주 경쟁, 그리고 우수 연구에 대한  포상 등 제한경쟁이 되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중요한 잣대임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심지어 교원이건 정출 연이건 임용이 되었더라도 각 기관이  요구하는 승진요건에 도달하기 위해서 혹은 중-대형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높은 IF저널논문을 게재한 실적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언론사나 대학교 그리고 관련 업계의 시장에서도 높은 IF점수를 들어 훌륭한 연구 업적임을 강조하고 홍보합니다.


당연히 학위를 위해 실험실에 입학한 대학원생들도 미래의 좀 더 나은 포지션을 위해 높은 IF의 저널에 '주저자 (first author)'로 등재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국내 연구실에서 생성한 순수 연구결과들 만으로 생명과학분야에서 20점대 이상 높은 점수의 저널에 게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당연히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이를 위해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한데 한두 명만의 실험으로는 가능하지 않는 수준이며, 이러한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은 성공적으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 결국 지도교수의 외부 네트워크 역량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트렌디한 좋은 주제의 연구와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데이터는 확보해야 하겠지만 결국 공동연구, 풍부한 연구비, 학계 이너서클(inner circle)의  암묵적 동의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학원생들의 미래도 결코 이런 악순환의 고리 (vicious cycle)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제한 경쟁에서  더 나은 포지션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 명문대의 유명한 랩에 학위 하러 나가려고 그렇게 애를 씁니다. 순수하게 보다 깊은 연구를 하기 위해 비인기 분야를 찾아 나서는 분들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당연...


과학이라는 학문분야도 결국 '보이지 않는 카르텔(cartel)과 이너서클(inner circle)'의 사각지대, 유리 천창 그리고 불가침 영역이 존재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국외건 국내건..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좋은 논문 내고 새로운 발견 해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있겠지만, 개인적인 역량과 추구하는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IF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높은 IF만을 추구하다 보면 그 연구가 가진 의미나 본질적 가치 발견보다 '대세와 유행'이 요구하는 타 분야로 은근슬쩍 갈아타야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바이러스 연구는 국내에서 매우 소외되어 있던 연구분야입니다. 특히 메르스 이전에는 더 했고.. 필자가 가축 살처분 관련된 인수공통 전염병 조사를 할 무렵인 2010년 과 바이러스보다 빠른 백신 개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해서 선정되었던 'X-프로젝트'-2015년 즈음에서야 조금씩 감염 바이러스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말 그대로 반짝 이벤트 수준이었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코로나 팬데믹에 무방비 상태로 대응했어야 하는 현실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실 시장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과학분야도 그 대세와 유행은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강대국들, 글로벌 제약사와 거대 공룡기업들 그리고 이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각 저널들의 관심 이슈에 따라 움직입니다. 잘 들여다보면 이런 흐름은 국가 간 경쟁, 주식시장 등 유동자산의 흐름과 관련 정책 이반자들의 계획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따른 정치적인 결정이 과학분야마저 핸들링하는 '보이지 않는 손' 되는 셈입니다. 그들이 순간 핸들 방향을 틀어버리면..


그러니, 크고 작은 거미줄 같은 촘촘한 상호 감시망 같은 네트워크, 말 그대로 '돈 없으면 연구 못하는 수동적 위치' 그리고, 어딘가에 조직에 귀속되어 있는 '을'의 입장에 있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주변 동료와 정부 그리고 글로벌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백신 부작용 연구와 관련된 국민 청원을 했을 때 사전 동의가 100명이 충족되어야 게시판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아내와 필자가 알고 있는 많은 지인 분들에게 내용 링크와 함께 동의를 구했습니다. 적어도 35~40명의 박사님들이 동의를 했다고 연락을 주셨는데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필자가 정부의 눈 밖에 나서 잘못되지나 않을까 염려해주셨습니다. 딱히 눈 안에 든 적도 없어서, 크게 신경 쓰이기보다는 그런 걱정을 하는 동료 선후배님들의 마음을 통해, 현재 우리 과학자들의 현주소가 여기쯤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무엇이 이분들의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가로막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산,  그리고 바다와 같은 자연을 보고 있으면, 어느 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습니다. 분야나 시류에 따라 시급한 것은 있겠으나 평소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허둥지둥 대다 끝나는 것이 그저 개인사적인 일만은 아닌 것이죠. 생명연구는 주식시장에서 늘 강조하는 가치, 분산 그리고 장기 투자가 가장 적용되어 야 할 분야입니다.


특히, 보다 더 근본이 튼튼한 생명과학강국이 되려면, 부침이 심한 IF와 인용 횟수가 마치 훌륭한 연구인 것처럼 포장하는 행태는 이제 접어두고, 연구자들이 편식 않고 모든 분야에 골고루 씨앗을 뿌리고 정성을 대해 키울 수 있는 토대부터 마련되어야 합니다. '성과'라는 괴물의 입에 학문의 본질을 넙죽넙죽 갖다 바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지런히 따라가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서기 위해 무엇을 추구할지 차분하게 논의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초격차'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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