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고리 (Chain)

by 골든라이언

- 다시 회의실 -

53, 역시 통찰력 있는 그를 초빙 한 건 잘한 것 같다. "네, 53. 제가 비밀리에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초대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스네일 씨가 언니와 혹스 그리고 복제머시너리 사 간부들의 소멸에 개입되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 수집" 이어 말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이 조사는 언니에 대한 복수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들 잘 아는 우리 세계의 제2법칙" 히프가 읊조렸다. "항상 머물지 않은 것에 집착하면 고통이 따른다" "네, 복수하는 마음에 집착해 봐야 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분명 나는 또 다른 불행을 일으킬 거예요.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환경이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고 셀들은 하나씩 소멸하는 단계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서, 누구든 무슨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한 환경 이지만, 스네일 씨의 행적을 추정해 보면 케드헤린을 없애고 셀 이탈? 이런 위험한 걸 계획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트위스트의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지만, 피드는 그녀의 뜻과는 반대로 단호했다. "나는 그가 뭘 계획했건 만약 팀장님을 소멸에 주도하거나 관여했다는 확실한 정황이 드러나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고, 필요하다면 반드시 응징할 겁니다! 우리 팀원들도 마찬가지이고. 나는 그런 목표로 우리 팀원들을 대표해서 여기에 온 거예요" 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언니의 팀은 개인 고객들을 관리하는 우리 팀과 달리 주로 건설, 토지 및 도시 건설 프로젝트 등에 종사하는 고객들의 로봇 사용 패턴과 환경에 대한 상관관계를 조사하는 팀이다. 현장 팀이다 보니 의외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많아, 주로 전직 특수부대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순간 대응력이 그 어떤 팀보다 뛰어나고 단결력이 높은 팀워크를 자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팀장이었던 트위스트 2는 이미 큰 위험이 미션 장소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후 팀원들을 따돌리고 혼자 그곳으로 들어가 희생된 것으로 믿고 있다. 베타가 그를 보며 말했다. "네, 피드 그러니까 우리 함께 확인해 봐요. 저도 언니의 따뜻했던 배려를 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스네일 씨건 어떤 조직이건 신중하게 대응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진실과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키스 (KISS1, Q15726)가 말을 했다. 그는 나서기를 꺼리고 지극히 겸손하여 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일 년 전 비슷한 카인 사건으로 인한 셀 이탈을 막은 숨은 영웅이다. 53이 그를 추천해서 모셔 왔다. "트위스트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제가 여기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건 근래의 사건들의 시그널을 포착하기 위함도 있지만, T3? " T3가 영상을 띄웠다. [3개월 전 7,656,800셀 뉴클레우스 크로마티네 빌딩] 파프(PARP1, P09874)들이 한참 손상된 이동형 정보 블록체인(DNA)들을 복구하고 있다. 그들 뒤로 초록색 점멸이 보인다. 그 순간 누군가가 하늘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투명 결정체들이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파프들에게 꽂히며 하나둘씩 쓰러졌다. 이어서, 블록이 손상된 채로 빌딩 속으로 밀려들어 가더니 곧 폭발과 함께 빌딩이 쓰러지며 주변의 빌딩이 같이 손상을 입었다. (이어, 영상을 5배속으로 빠르게 진행한다) 잠시 잠잠해지나 했더니 어느샌가, M1이 출현했다! 그리고… 트위스트가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곧 영상 자료는 멈춘다.


"저곳은 우리가 있는 곳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북단의 셀입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셀 이탈 방지 위원회'의 한 위원이 두 달 전에 로우 파일(Raw file, 가공되지 않은 초기 데이터가 든 파일) 형태로 비밀리에 보내온 자료예요. 앞으로 공개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저 자료에서 우선 주목할 부분은, 투명한 결정체가 유독 다른 이들보다 파프들에게 특이하게 달라붙는다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주목할 포인트는, 지난달 우리 셀에 카인들이 부딪히고 사흘 만에 M1이 출몰했는데 저기는 거의 결정체가 떨어지고 불과 몇 시간 만에 나타났다는 점이죠" 히프가 질문했다. "아니 그런데, 저 영상을 찍은 이의 레이더에도 트위스트가 경험한 것처럼 M1이 나타나기 직전까지 전혀 흔적이 없어요. 어떻게 저런 거대한 물체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을 수 있죠?" 그때 어디선가 굵직한 소리가 들렸다.


"곧 M1 조사단이 만들어질 겁니다" 모두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힛샥?!" 본사 엔지니어 본부장 힛샥이다. "미안, 미안. 일부러 우회해서 오느라 조금 늦었어. 53, 키스 잘 지냈어? 오랜만이군" 그들끼리 의미심장한 눈빛 인사를 주고받을 때 트위스트가 말했다. "이제, 모두 모인 것 같으니, 앞서 D1이 제공한 포인트를 각자 벨트의 편한 곳에 붙여주세요. D1, 힛샥에게도. 그리고 버튼처럼 눌러 동기화 승인 요청 뜨면 비밀 채널 네트워크를 가동합니다. 모두가 승인할 때만 가동하니까 지금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빠지셔도 됩니다" 프카가 슬쩍 보내온 정보에는 아직 피드가 승인하지 않은 것이 보였다. 약간의 정적. 승인 완료. "자, 그럼, 전략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완전한 휴식' 복귀 이틀 전이다. 그간 미루었던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위해 T3D1을 본사로 보내고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산소 키트 하나 챙겨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기 위해 나섰다. 보랏빛 하늘도 간혹 밝은 빛줄기들을 넉넉하게 허락하는 시간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근무 중에 눈여겨봐 둔 풍경 좋은 곳이 있어서, 근처에 모빌리티 캡슐을 두고 걸어갔다. 작전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면, 이 평화로운 시간은 오늘뿐일 것 같아.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까? 구슬들이 들어있는 자신의 벨트를 쓰다듬으며 그동안 제대로 인사하지 못한 언니와 혹스에 대한 마음을 모아 저 보랏빛 하늘 속 빛으로 같이 올려보냈다. 빛나는 별이 되길 바라며. 문득 대학 시절 존경하던 교수님의 강의 '소멸과 구슬론'을 듣던 그때가 떠올랐다.


"… 중략 … 과거에는 생각이 나 마음이 육체의 한 기관에서 생성되고 조절된다고 믿었다. 당시의 과학은 유물론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사실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 이전에는 너무 비과학적 사고를 통한 미신과 같은 부작용이 심해서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현대에는 마음 이전의 성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과거에 물질이나 에너지에만 의미를 둔 해석들은 이미 많이 퇴색되었다고 할 수 있지. 가령, 캡슐은 환경과 탑승자의 목적에 맞게 코딩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 모두 잘 알다시피, 요즘엔 에너지-리사이클링 효율마저 극대화되어 있고 인공 자가 진단을 통해 스스로 필요한 부품까지 자동으로 교환하거나 심지어 직접 조립해서 채워 넣는 등의 '자가 정비 기능'까지 추가되어 거의 우리 같은 자율 생체 시스템과 거의 다를 바가 없지.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 것도 있고. 그렇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어떤 속도로 도달할 것인가는 반드시 탑승자가 결정하도록 설계된 근본 속성은 바뀌지 않았어. 그렇지? 만약, 타고 다니던 캡슐의 조절 기능들이 고장 나거나 문제가 있으면? 그래, 탑승자는 새로운 캡슐로 옮겨타게 되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


"우리가 소멸하면 구슬이 되고 또 다른 세계로 태어나는 것처럼요?" 학생인 트위스트가 물었다. "또 다른 세계일지 여기 우리의 세계로 다시 올지, 그것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탄생과 소멸 전후 단계에서 캡슐을 갈아타듯 옮겨 다닌다는 사실은 이제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지" "지난번 수업 시간에, 이백 년 전 바깥 에너지의 큰 변화로 인해서 개인의 소멸 후 구슬이 생성되는 현상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럼 그 이전에는 영혼을 부정했었나요?" "대부분 종교는 형이상학적 관점을 근본으로 하므로 제각각의 지향점은 달랐지만, 오히려 영혼에 대한 믿음은 강했지. 반대로, 당시 감각기관으로 인지될 수 있는 일반적인 관찰대상에게만 그 객관성을 부여했던 기존의 과학계는, 영혼에 대해 모호성 내지는 부정적 입장을 취했어. 증명할 수가 없었거든"


트위스트는 당시의 과학자 중 누군가가 "부정적 입장"을 취할 때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믿는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주장했을 텐데. 그랬던 그들이, 언젠가 이런 모순을 스스로 인지하게 된다면 꽤 곤혹스러웠을 거로 생각하니 꽤 흥미로운 역사의 흐름이라고 느꼈다" “그럼, 구슬이 생성되고부터는요?" "당연히, 물질계를 통해 저절로 증명되었으니까, 과학계에서 안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오히려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여러분이 이런 수업을 듣는 오늘날까지 온 거야" "미래의 어느 순간부터 소멸할 때 더 이상 구슬이 생성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요? 예전에 에너지 변화가 생겼던 것처럼 말이에요" "좋은 질문! 글쎄. 되돌아가지 않을까? 다시 구슬의 세계 이전으로" 궁극적으로 그 순환의 끝 혹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등등 더 질문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마음과 구슬 개론 II' 세미나를 청강할 시간 되었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었었다.


"Star flows in you"를 들으며, 천천히 거닐어 본다. 한창 무작정 걷고 있는, 그때 "툭" 하고 발 앞에 떨어진 작은 구체가 빙글빙글 돌면서 번쩍거리더니 신나는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온다… 뭐야, 기습인가? 하고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플라스마 건을 뽑아 들었다. 업그레이드를 마친 T3D1이 손을 들고 서 있었다. "본사 엔지니어가 준 거야. 업그레이드 기념 선물로" 어. 설마 포맷 후 초기화한 건 아니겠지? “… 요"


오케이, 휴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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