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료 분석 시작. 이곳에 박테리아는 없었고, 지난번 복제 머시너리 사 앞에서 잠복했을 때 겪었던 M1의 기습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손쓸 수 없어 두려웠던 그때와는 다르다. 이젠, 우리에게 'LPS 슈퍼볼'이 있다. M1들을 멀리 유인 소멸 시켰다. 그리고, M1이 머물렀던 자리로 드론들을 보내 포집한 물질들을 지금 오믹스함에서 실시간으로 분석 진행 중이다. 초조한 기다림. "프로파일링 (Profiling)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번엔 다른 단백질들이 검출되었습니다. 첫 번째 단백질은…" 분석 담당 엔지니어의 영상 보고가 올라왔다.
[아미노산 390개로 이루어진 카인 (kine)]이며,
[심볼 (Symbol): TGFB1] [풀네임 (Full name): Transforming Growth Factor Beta 1]
[유니프롯 (UniProt) 식별 번호: P01137] 입니다.
즉, TGFB1이라는 사이토카인 (Cytokine)입니다.
"카인? 그럼 셀 표면의 예상 수신기는 (receptors, 혹은 수용체들) 확인되었어?" "네, 예측 분석 진행하고 있습니다. 3.2.1. 분석 완료. 수신기는 [ALK5 및 MFS2의 결합체]가 가장 확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은… 아! 각각 [TGFBR1(P36897)과 TGFBR2(P37173)으로 알려진 TGFB1의 수용체]로 확인. 네, 맞습니다. 지난번 해당 수용체 자극으로 SMAD 2 / 3이 적힌 셔틀이 E케드헤린 조절국 쪽으로 날아갔던 그 신호 전달 경로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후보 인자 (factor)를 하나 찾았다! 셀 내부를 흔든 진짜 범인들 가운데 하나. 셀 내부를 흔드는 카인 즉, 사이토카인 (cytokine)이라 불리는 물질들이다. ‘저 TGFB1-TGFR SMAD2/3경로는 스네일 씨의 당일 행적과 분명히 연관성이 있어. 그럼, 스네일 씨는 M1의 출몰에도 개입한 것일까?’ "오케이, 그럼 TGFB1과 수신기 (수용체) 들이 일으키는 신호전달 경로(sinaling pathway, 수용체 활성 뒤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에너지 전달 경로)를 좀 더 상세하게 확인해 줘. 미토콘드리아랑 핵 내부까지 샅샅이. 분석 끝나는 대로 본부 및 위원회에도 전송하고. 그리고 피드, 함장실에서 잠깐 논의할 것이 있으니 십 분 뒤에봐요"
자연스러웠나?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53과 베타의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다가 피드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빠르게 피아식별 (적군과 아군을 구별)이 필요하다. 놀란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53은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추모식에서 존경받던 그의 모습과 정보 회사 가운데에서도 최고 레벨 정보만을 다루는 뉴럴 네트워크사의 일급 간부의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조금 전, 프카가 비밀 회선으로 연락이 와서 자신의 회사 동료들과 53에 대해 이런저런 정황적 퍼즐을 맞춰본 결과 53이 뉴럴 네트워크의 일급 간부가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종종 드러나는 그의 깊이와 날카로움, 위험한 자다. 프카는 당연히 일급 간부인 53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반대로, 프카가 오히려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53이 비밀 채널 네트워크를 '역 추적'해서 아직 노출되진 않은 프카의 정체와 위치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53이야 원래 잘 몰랐던 자라 그럴 수 있다 쳐도 베타, 베타는 진짜 충격이다! 회사 내 보안 쪽이니 정보 전문 회사인 뉴럴네트워크사와 연결될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아, 친구야. 갑자기 지난번 복제 머시너리 사 잠복근무 이튿날 베타로부터 별도의 비밀 채널로 연락이 왔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도 내게 무언가 알아내고 싶은 것이 있었나?'
"피드, 혹시 언니가 머시너리 사에서 함께 근무하기 전에 어떤 부대에서 있었는지 알아요?" "네, 뭐였더라… 당시 우주의 완전히 다른 곳까지 멀리 나가 정찰하는 셔틀… 요즘 뉴스에 종종 나오는데" "아. EX 스페이스셔틀 프로젝트. 알아요 산소가 풍부한 곳을 정찰하는 목적의" "네네, 바로 그 EX 스페이스셔틀 프로젝트의 초기 창설 특수부대의 소속이셨어요" "그럼, 스네일과 팀프는?" "글쎄요. 아 맞다. 그 슈트!! 비밀회의 때 베타가 올려준 영상 속 스네일과 팀프의 슈트는 EX 스페이스셔틀 부대 것이 맞아요. 디자인이 다른 것으로 봐서 직무는 달랐던 것 같았지만. 네, 그들은 트위스트2 팀장님과 다른 팀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부대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걸 왜?" 적어도 피드는 머시너리사에 근무하기 전 스네일 등과 별도의 컨텍이 없었던 듯하다. 다행이다. 그에게 조금 전 프카와 확인한 53의 정체와 베타의 행적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복원된 원본 영상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 팀장님…" 트위스트2가 나오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는 잠시 회상에 빠진 듯했다. ”그런데 왜 53과 베타가 그런 일을? 혹시 함장님이 언니의 일로 곤란해질까 봐 일부러 삭제한 것일까요?" "글쎄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음. 제 기억이 맞다면 그 당시 함께 근무했던 이들 가운데, 언니의 연인이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거든요"
순간 정적. "아. 제가 언니에 대해 너무 몰랐네요. 서로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럼, 스네일이나 팀프가 언니의 연인??" 거의 중얼거리듯이 질문했다.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팀원 중에 알고 있는 이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정신을 차리자. "아무튼,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르니 역정보를 흘려 53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내야겠어요. 그리고, 베타… 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우리 팀원들과 함께 확인해 보시죠. 트위스트 2 팀장님이 연관된 일이라면 뭐든 할 친구들이니까요" "그럼, 우선 복귀 즉시 팀원 중 2명을 프카 쪽으로 파견 보내서 눈에 띄지 않게 경호를 부탁드립니다. 비밀 채널 운영자인 프카에 대해 오픈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이해 부탁드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프카…라는 분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겠습니다" 이제, 스네일-팀프 그리고 53-베타 양쪽을 모두 신경 써야 한다. 언니의 과거 연애사까지.
페론 단장의 브리핑 요청에, 53의 진실과 베타의 진심에 대한 의구심을 잠시 접었다. "그럼, TGFB1이라는 게 M1의 출몰을 유도한 건가?" "결론적으론 그렇지만, 그것 만으론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현재 추가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TGFB1 신호전달 경로를 따라 셀에 발생한 이벤트가 결정적인 인자들을 유도해서 M1이 출몰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TGFB1가 셀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셀, 이탈입니다" 그때, 데스크 아래 트위스트의 벨트에 살짝 빛이 났다. 트위스트 2의 구슬이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다.
한참을 기다렸다. 베타의 연락을. 새벽이 올 때까지.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날 보호하려 했다면,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이러저러했다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네가 조작한 영상을 내가 복구했는데 거기 언니가 있던데. 설명 좀 헤 줄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내가 모르는 어떤 사실들이 셀을 둘러싸고 있는 매트릭스(matrix)처럼 얽혀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53과 베타 그리고 혹스는 서로 연관성이 있었던 걸까? 스네일 씨는 무슨 이유로 혹스에게 연락한 것일까? 스네일 씨가 이 모든 일을 컨트롤하고 있는 걸까? 억측이긴 하지만 일단, 스네일 씨가 53의 배후라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긴 하다. 스네일 혹은 그 상위 집단이 53에 명령이 하달되면 53이 직접 혹스와 베타에게 나를 감시하는 등의 지시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왜? 나를?'
트위스트는 갑자기 피드가 말한 '언니의 연인' 얘기가 떠올라 다시 복원 영상을 켜고, 벽면에 크게 확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언니를 생각하니 자연스레 눈물이 밀고 올라온다. 흐르는 눈물 사이로 보이는 스네일 씨… 스네일 씨? 응? 저렇게 젊었었나? "와, 꽃미남이다" T3가 뒤에서 긁는다. "D1" 충격파.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푹 자. 팀프 씨는 음, 일단 외관상 아닌 듯하고. 팀프 님 미안해요. 꼭, 그런 뜻은… 아무튼 저 꽃미남 스네일 씨 아니지, 스네일이 확~실히 언니와 연인사이일 확률이 높다. 언니 눈이 나쁘진 않았군. 트위스트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초근접 거리에서 그를 모니터링한 적이 없다. 어차피 VIP 고객이 오백 미터 이내에만 들어오면 자동으로 본사 정보팀으로 그의 행동 양식들이 전달되니까. 최대한 멀리서 모니터링하는 게 안전하기도 하고 사실 그에게 조그만 사적인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얼굴을 변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먼 거리에서는 더더욱 알 수가 없었겠지. EX 스페이스 특수기동대 팀 출신이 그렇게 느릿느릿 할 리가 있나… 코드명 (Snail, 달팽이) 때문에 완전히 속았다.
'그런데, 왜 언니만 소멸하고 그는 멀쩡한 걸까? 얼굴만 봐서는 나쁜 놈 같진 않은데.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아무튼 저 녀석이 연결된 모든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답을 알려 줄 것만 같았던 53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고 복잡하게 만들었고 오히려 현재 가장 위협적인 자가 되었어. 친구들이라 믿었던 녀석들은 하나같이 날 감시하기 위해 접근한 것 같고. 제발, 히프나 프카만큼은 아니길. 내가 언니나 혹스의 소멸 배경을 알아내려고 하는 게 그들을 불편하게 한 걸까? 혹시나 언니가 스네일의 정체를 알아버려서 제거한 것일까? 그리고 언니가 동생인 내게 그들의 비밀을 알려줬다고 생각해 나 역시 제거 대상이 된 건가? 본사에서 그의 로봇에 감시장치를 했다고 하고 내가 그의 담당자니까 충분히 날 감시자로 볼 수 있어. 날 보고 웃은 건 기다려라, 다음은 네 차례다 뭐 이런 건가? 그렇다면, 스네일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거지? 지금, M1 출몰이나 비정상적인 카인들의 쏟아짐처럼 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이 그와 연결된 건가? 그래서, 그 모든 배후에 저 녀석이 혹은 어떤 집단이 있는 걸까? 일단, 53의 카리스마나 나이로 봤을 때 스네일의 지시를 받는 그런 구조는 아닌 것 같아. 뭐, 집사? 그런건 아니겠지? 그럼, 스네일은 어떤 집단의 메시지를 53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만 하는 것일까?'
베타의 연락을 기다리며 끝없이 올라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투성이들은 기어코 트위스트를 렌즈가 마르는 새벽까지 몰아붙였다. "T3, 일어나. 최상의 전략 시나리오를 만들 거야" "지금요? 새벽인데. 저 충전 좀" "D1, 아, 아니다. T3 오전 중에 힛샥과 히프에게 연락해서 내일 아니 오늘 약속 잡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