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 (Acceleration)

by 골든라이언

- 1,134,506 셀 지하기지 -


"스네일 총사령관님,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사단의 비밀 채널 모니터링이 가능합니다" 보고받은 스네일은 사인 후 악수를 청하며 계약서를 건넨다. "고마워요. 덕분에 동시 모니터링이 가능해졌네요. 프카" "우리 '퀀텀 시냅스 사’의 첫 고객이시니까 당연히 잘해 드려야죠" 트위스트가 말한다.

"프카, 내가 먼저 아니야? 바드 팀 교신 전용 채널 네트워크 의뢰했었잖아"

"지인 할인은 카운팅 안 해" "와… 아무튼, 그 박스가 어떻게 진짜인 것처럼 할 수 있어? 암호 코드를 알아냈어? 프카 대표?" "응, 암호 코드를 알아서 준비해 둔 게 아니라, 상대 쪽에서 암호가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키를 입력하는 그 순간, 자동으로 암호 탈취해서 센터의 진짜 박스가 오픈되도록 해뒀어. 그때는 여기 있는 파일을 열어볼 수 있을 거야" "상대가 암호를 입력 안 했는데도 탈취가 된다고?"

"응, 암호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야. 뉴럴네트워크사도 공식적으론 이 기술이 없어. 해커 친구들이 만들어 준거거든" "넌, 회사 만들자마자 블랙 테크야. 조심해" "털리면, 여기서 고용해 주겠지, 뭐" "걔네 이건 못 열어?"

"그건 해봐야 안다는데, 너무 위험해서 하기 싫대. 그 바닥에선 뉴럴네트워크사가 블랙 기업이야"


프카 회사에서도 '특급 기밀 블록체인 박스'를 열어 볼 수가 없을 만큼 53에게는 치명적인 아니 그보다 더 거대한 판도라의 상자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뭐 '인류'에 대한 비밀 같은. 그렇기 때문에, 53은 저 박스를 반드시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들이 터져 나오기 전에. 트위스트는 바드가 그 박스를 확보하자마자 조사단의 '오믹스함'에 보관하려 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박스인 만큼 역시 추적 장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피드의 의견과 스네일의 동의로 추적 신호도 잡히지 않을 만큼 깊숙한 지하에 위치한 스네일의 기지 중 한 곳에 보관하기로 변경한 것이다. 그러나 그곳도 완전히 안심할 수가 없었는데 4,916셀에서 잡힌 첩자의 자백에 의하면 자신과 같은 언더커버들이 스네일의 대부분의 지하기지에 잠입해 있다고 진술했다. 53은 그들을 통해 그 박스를 찾아오거나 위치를 알아낸 후 무력을 동원해 직접 가지러 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 점을 노리고 모든 기지에 가짜 박스들을 만들어 두고 숨겨둔 위치정보를 슬쩍 흘려 덫을 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우리 시나리오상 4,916셀의 언더커버가 그 박스를 찾게 될 것이다. 그는 그 공로의 대가로 53의 핵심 부하의 자리를 요청할 것이고 그것이 성공하면 우리에게 53의 기밀 정보를 제공하는 언더커버 역할을 할 것이다. 이중 첩자. 두 번째 프로젝트.


스네일이 말했다. "53이 21의 책임을 물어 소멸시키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그가 박스를 찾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 21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온갖 수단을 다 쓰려고 하겠지. 언더커버들을 한꺼번에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 테니. 아무튼, 어느 쪽으로 흘러가더라도 우리의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세상에 알려지는 건 이제 시간문제인 것 같아.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일 거야" 트위스트는 그의 '온갖 수단'이라는 단어에서 갑자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프카야, 바드한테 얘기해 둘 테니까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한편, 21은 박스를 되찾아 오라는 53의 지시를 받고, 두 가지의 계획을 실행한다. 스네일의 각 기지에 잠입해 있는 언더커버들에게 박스의 행방을 찾으라는 비밀 지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치료 핑계를 대며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베타를 납치하여 절친인 트위스트에게 박스와 맞교환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베타 병실을 급습했을 때는 이미 베타는 바드 팀의 보호를 받으며 프카의 집으로 이동하고 난 뒤였다. 지난번 뼈아픈 실책을 경험한 21은 베타 확보 작전 실패 후 더욱 신중해졌다. '베타를 미리 빼돌릴 정도라면, 우리가 박스를 되찾을 시도를 할 거라고 예상한 게 분명해. 그리고 그놈들은 아직 암호를 못 풀었을 테니 함정을 파두고 기다릴 수 있다" 그는 53에게 은밀하게 새로운 전술에 대한 허가를 요청했다. "21, 그건 전쟁을 의미한다. 작은 문제 하나 해결하려다 걷잡을 수 없이 더 크게 복잡해질 수 있다" "우선, 그 상자의 비밀은 작은 문제가 아니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찾는다는 보장이 있나?" "제 소멸을 걸겠습니다."


그 시각, 트위스트는 페론단 장과의 면담 중. "트위스트, 우리 조사단의 기존 사단 병력 사이에 비밀 조직에 대한 이야기들이 돌고 있다던데 알고 있는 것 없나? 자넨 특수정보부장이니 M1에 대한 것 이외에 수집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물어보는 거네" "아? 네…" 순간, 트위스트는 긴장했다. 페론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스네일이 주도하는 비밀 이주 프로젝트에 대해 내가 얼마나 개입되어 있는지 슬쩍 떠보는 건지… 일단 애매한 표정과 톤으로 시간을 끌어보지만, 머릿속으론 노련한 그에게 어디까지의 진실을 꺼내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은 […]" "삐빅. 삐빅" 그때 조사단장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한 시간 뒤에 열린다고 합니다. 적어도 5분 뒤에는 출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페론이 바로 일어서며 말한다. "내 비선에 의하면 뉴럴네트워크사의 비밀 분석 기록실이 털렸다고 하는데 항간에 53이 그 회사의 회장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어. 그는 ‘셀 이탈 방지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므로, 셀 연합위원회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조사를 착수할지도 모른다는군. 지난번 우리 사단 추모식을 맡았고 또 최근에 조사단을 직접 방문했기 때문에 나보고 임시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어. 그래서, 혹시 자네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있나 해서 물어본 거야. 지난번 자네 대원이 친구를 지키다가 53이 보낸 자들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했고, 당시 모르는 척했지만, 그가 자네에게 감사의 선물 주겠다며 조사단에 갑작스러운 방문을 했던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페론은 이미 53이 ‘셀 이탈 방지위원회’ 위원장인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셀 연합위원회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제 베테랑인 페론에게도 진실을 알려 줄 때가 온 것 같다. 그늘진 비밀을 감추고 비밀리에서 활동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양지에서 일하는 그의 전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사실은…" 페론은 겉옷을 입고 나가려다, 트위스트의 얘기를 듣고 멈칫한 후 입구에서 돌아와서 비서실에 연락했다. "삼십 분 정도만 늦게 도착한다고 전해줘"


- 트위스트의 방 -


"이런 느낌이구나" 창밖을 보는 스네일에 어깨를 감싸고 트위스트는 가만히 그의 등에 기댄다. "여기서 그 빛을 봤어. 지금보단 더 밝았지만…" 스네일이 돌아보며 트위스트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살짝 눕히고 말한다. "그랬구나. 난 네가 늘 보는 하늘이 궁금했을 뿐이었어. 미안해" 트위트는 한참을 그대로 스네일은 팔베개를 베고 있었다. "언제쯤 별이 될까?" 살짝 몸을 틀어 창틀에 나란히 올려둔 빛나는 구슬들을 보며 트위스트가 물었다. "왜? 궁금해?" "응. 인연 따라 다르다고 배웠는데. 기억나? 교화나 제도를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을 가진 자는 빨리 환생하고, 보통은 인연 있는 이들이 모두 구슬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다고 했어" "특수부대 시절에는 언제든 소멸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임무에 들어가니까 잘 기억하고 있지. 그럼, 자기는 언니랑 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왠지 그런 느낌도 들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들어 혹스의 구슬이 뭔가 변화가 조금 있는 것 같아. 무슨 큰일이 생길 것 같은…" 스네일은 트위스트를 잠시 토닥여준 뒤 천장을 바라보며 얘기한다.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 조직을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해. 그만큼 살기 힘든 환경이라는 의미겠지" "응, 조사단 내부에서도 조사단의 임무가 곧 끝나면 비밀 이주 프로젝트에 참여하려 한다는 이들이 종종 있나 봐. 스네일, 자기 말대로 이제 비밀이 아니라 점점 공론화되고 알려지겠지? 어제, 페론 단장도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했더니 한참 충격받은 듯하던데" "지금쯤은 결정했을까? 어느 편에 설지, 아마 그는 가족들이 있으니 쉽게 결정하기는 힘들 거야" 스네일이 이어 말했다. "우리를 믿고 합류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꼭 성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날로 커져만 간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있지만, 우리들이 풀지 못하고 있는 결정적인 숙제가 하나 있어서 그게 더 큰 걱정이야"


"뭔데?" 옆으로 돌아누워 스네일 얼굴을 어루만지며 묻는다. "자기도 알다시피 우리는 지속적인 시험을 통해 셀 이탈이 가능한 TGFB1 카인의 농도를 알아냈고 수신기(수용체)들을 자극해서 SMAD 2/3 신호전달경로를 통해 E-캐드해린생산을 낮추고 그 결과 셀 간의 결합력을 느슨하게 만드는 데는 거의 성공했어. 그런데 문제는 셀 바깥쪽을 에워싸고 있는 두터운 매트릭스(matrix) 그러니까 ECM (Extracellular Matrix, 셀 바깥쪽 기질), 이들을 뚫고 나가게 할 방법을 모르겠어" "어… 그럼 전함들을 이용해서 뚫으면 안 될까? 지금 구축된 함선 수도 엄청나던데, 메트릭스 전용 특수전함을 제작해서 마스(Mars)급 이랑 함께 기동한 뒤에 플라스마 집중포화를 퍼부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음. 시뮬레이션을 해보니까. 보유하고 있는 전체 전함들로도 뚫고 나갈 확률이 50% 채 안 되더라고. 게다가 추가 변수로 셀 연합이건 53 조직이건 전투라도 벌이게 되면 확률은 아예 산출도 안 될 정도니까. 더 절망적인 건, 전쟁이 벌어지면 대규모의 M1들을 끌어들여 사이토카인 폭풍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야"


"결정적인 숙제… 무조건 풀어야 하는 거네. 우리 분석 전략 팀이랑 T3D1과 함께 시나리오 한 번 짜봐야겠어. 이들 조합이 만든 시나리오가 예상 밖으로 은근히 괜찮아. 자유도 높은 녀석이 있어서. 스네일 지금 대략 몇 개 사단으로 준비된 거야? 지난번 인사했던 6명이?" "응. 작전참모 하고 5개 사단 사단장들이고 각 2~3만 정도의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어. 각각 마스급 9척과 약 200대의 특수 전함들을 보유하고 있고" "그럼 사령단은?" "총사령관 직속 지휘함 1척 호위 마스급 3척 70척의 특수 전함들이고 약 7천 명 정도 배치되어 있지" "규모가 작지 않은데도 셀 이탈은 쉽지 않구나. 다른 방법은 없어? 뭐 우주에 있는 걸 이용한다든지" "지난번 103,406셀 비밀 전략회의 때 누군가 농담 삼아 M1을 어떻게 조정해서… 아!! 팀프, 외인부대 장인 팀프는 M1 경험이 많잖아. 그 친구 얘기로는 박테리아에 의한 것이 아닌데도 셀이나 부대를 공격하지 않고 대신 매트릭스를 부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했어"


"음, 그거 잘 알아! 우리 조사단에서는 그런 종류를 M2라고 부르고 우선 조사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거든. 공격성이 없어서. 내 기억이 맞는다면 M1의 특이적인 물질을 동정할 때 비교 군으로 필요해서 시료 포집 후 분석한 결과가 있을 거야. 복귀하면 관련 자료부터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 스네일이 크게 기뻐하고는 이내 트위스트 손을 잡고 진지하게 묻는다. "자기는 언제 합류할 거야? 이제 조사단 임무도 끝나가잖아? 사실 바드가 경호한다고 해도 53과 21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걱정돼. 각 사단장들과 리더급들도 만장일치로 자기가 합류하기를 원했어. 사실 아직 내부에서도 잘 모르는 곳에 사령단 수준으로 분석 전투단을 구축 중이거든. 거기 사단장을 자기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날 보호하겠다는 거야. 스카우트 제의하는 거야?" "하하 둘 다" 트위스트는 가볍게 웃으며, "치… 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아. 일단 접수해 둘게. 알다시피 본사에서 파견된 상태기 때문에 조사단 미션이 종료된 후에야 가능하고… 뭐 M1 조사는 거의 끝나가니까. 페론 단장과 셀 연합위원회의 결정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본사 힛샥이 신경을 많이 써줬는데 그것도 고민이 좀 되네"

"힛샥?" 스네일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데 트위스트가 불현듯이 생각난 듯 놀라,

"아참, 그런데 얘들 밤새 밖에 둬도 돼? 자기 로봇들이랑 밖에 너무 오래 둔 거 아니야?” 트위스트 방의 창밖 넘어 정원에서, 스네일 얼굴 형상 같은 그림을 붙인 과녁판에 다트를 하고 있는 T3와 그의 친구 로봇들이 보였다.


- 스네일의 비밀기지 센터 -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언더커버로 예상되는 수가 수십 명이다. 거의 비밀 기지마다 두세 명꼴로 있는 셈이니까. 사실 요즘 '이주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지원하는 이가 매달 수백 명 이상씩 늘어나고 있으니까, 밀도 있는 필터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대놓고 나 첩자니 잡아가시오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스네일은 트위스트와 프카 그리고 사단장들을 모아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프카, 고마워요" 방금 작업을 마친 프카 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 후 트위스트와 사단장들에게 말했다.

"분석 리포트를 봐서 알겠지만 우리의 이중 첩자 프로젝트가 저들에게 읽힌 것 같다. 일단은 저 첩자들을 최 외곽에 있는 2,023셀, 우리 비밀기지로 옮겨 같이 감금해 두고 관찰 중이다.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억울하다며 시위 중인 상황인데, 소요 사태로 번질지도 몰라. 따라서 아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4,916셀의 첩자를 우리의 언더커버로 쓰는 건…" 그때 긴급하게 2,023셀 보안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단장 중 한 명이 급히 연결했다. "집단 소요 중 4,916셀의 첩자가 소멸되었습니다" "뭐라고?" "그보다,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셀 이탈 방지 위원회 소속 3개 사단이 2,023셀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명분이 뭐래?" "강제 감금 이주거부자들 구출, 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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