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링하리(AringHary)

by 골든라이언

트위스트는 대기하고 있던 조사단장 전용 셔틀에 프카를 태워 현장으로 바로 날아갔다. ‘셀 연합위원회’의 통합관제실에 연락해 568,901셀 주변에 거리를 두며 위치한 셀들의 보안국 및 보건국 지원을 급히 요청했다. 최근의 사태로 대부분 해당 도시들은 비어있지만, 재가동을 대비해 유지 보수를 하는 엔지니어들과 이들을 보호하는 군부대가 근처 가건물에 상주하고 있다는 정보를 방금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우선 구축된 오믹스함을 569,801셀의 G 블록 상공으로 호출해 거기서 정찰 드론들을 보내 우선 상황 파악을 지시하였다. 피드와 딤프등도 각각 준비된 셔틀로 이동하며 부대장들에게, 사고가 발생한 셀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569,000셀에 조사단 임시캠프 설치를 지시했다.


취임식도 아직 안 했고, 시스템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데 벌써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오늘도 혹시나 해서 미리 사전 답사를 하고 온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비상 상황을 맞닥뜨릴 뻔했어. 그나마 다행이야' 임시캠프에 도착해 T3D1에게 프카를 도와 통신채널 시스템 구축하라고 지시한 뒤, 셔틀을 스테이션에 막 세우려는 순간 렌즈에 보고 영상이 올라왔다.


오믹스함에서 정찰 보낸 드론 중 몆 개가 보내온 영상이었는데, G 블록 바로 옆 H 블록 빌딩들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한 모습이었다. 곧이어 오믹스함에서 연락이 왔다. "H 블록도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없다. T3D1을 호출하지 않고 전투 슈트만 입고 바로 출발했다. 가면서 오믹스함 보유 ‘스파이드’ 드론들을 출동시켜 지상 근접 촬영을 지시했다. ‘스파이드’들이 달려가 실시간으로 보내온 영상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빌딩을 먹고 있어. 땅속에서 무언가가!' "저게 뭐지? 오믹스함 보고 바람" "네 단장님, 저희가 아직 완전히 파악 못 했는데 프로네이즈들과는 다른 형태의 미확인 분해체 같습니다" 21이 트위스트나 스네일을 급습할 때 달려든 짐승 같은 분해 효소들과는 다르다는 설명인데… 뭘까? "그럼 E3에 이은 거대 회전 원통 같은 것인가?" "아닙니다. 촉수들이 나와 활동하는 그런 양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알았다. 거의 다 왔다. 곧 셔틀 도킹 시작한다. 그럼, 일단 포집용 드론들을 보내서 저기 흡수되고 있는 부분 근처의 시료들을 모아서 분…""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I, J, K, L 및 M 블록에서도 동시에 흡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오믹스함이 크게 흔들리며 도킹하려던 트위스트의 셔틀이 오믹스 함에 부딪혀 튕겨 나가면서 균형을 잃었다. 셔틀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지만, 오믹스함이 위험하다. 여러 블록이 동시에 가라앉으면 천장이 무너질 수 있다.


"부함장!! 오믹스함은 현 시간부로 그곳으로부터 긴급 탈출한다. 천장이…"라고 할 때 도시 상부 천장의 부서진 큰 파편이 겨우 균형 잡은 트위스트의 셔틀을 덮쳤다. 그 충격으로 셔틀은 이내 곤두박질치며 M 블록 쪽으로 밀려났는데 셔틀의 비상안전장치가 작동해 자동으로 M 블록에 불시착을 시도했다. M 블록의 한 빌딩 중간의 EX 스페이스셔틀 정류장에 거의 추락하듯이 착륙했다. 전투 슈트 착용하고 겨우 빠져나올 때,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저희는 워프로 간발의 차로 빠져나왔습니다" 하는 오믹스함의 보고를 받았다. "오케이, 나도 잘 피했다. 무사하다"


그런데, 그때 L 블록의 무너진 천장을 지탱했던 빌딩들이, 트위스트가 있는 M 블록쪽으로 잇달아 쓰러졌다. 슈트의 비상용 추진기로 무너지는 정류장을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결국 지진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슈트 덕에 아프진 않았지만 돌아누웠을 때 수정체로 쏟아져 들어오는 검은 낙하물들은 이제 구슬이 될 시간이 왔음을 알려주는 어둠의 사자들같이 느껴졌다. "단장님, 단장님!!" 오믹스함에서 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눈이 부시다. 그럴 리 없지. 나는 큰 천장에 깔렸을 텐데 그럼 어두워야지… 슈트도 입지 않고 몸은 가벼워졌네. 그럼 난 정말 소멸해서 구슬이 된 건가? 아. 스네일 인사도 못했는데…' 그때 어떤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트위스트, 넌 아직 소멸된 것이 아니다" "당… 당신은 누구죠? 여긴 어디고?"


"여긴 너의 잠재의식 세계이고 나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이다" "어째서 표현할 수 없죠?" "너이면서 네가 아니기 때문이지. 난 모든 곳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충격파를 선물하고 싶은 답이었지만, 일단 사후세계는 아니라고 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지금 제 몸 상태는 어떤가요?" "깨어보면 알겠지만, 네 몸 상태는 아무 이상 없다. 궁금한 것 있으면 세 가지만 물어라. 그리고 이 규칙은 네 무의식이 스스로 정한 것이다" 신중해졌다. 갑자기. 딱 세 가지만 물어보라니.


"가장 좋은 질문이 뭘까요?" "그게 좋은 첫 번째 질문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으니까. 가장 좋은 질문은 진짜 나는 무엇인가이다. 왜냐하면 이름, 모습 그리고 생각 등등은 진짜 내가 아닌데, 그러한 것들에 애착을 갖고 마음을 두면서부터 모든 불안정하고 불행한 것들이 벌어져 나왔기 때문이지. 진짜 나는 무엇인가?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이전에 진짜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질문이고 좋은 답을 찾는 길이다" "그럼, 두 번째 질문. 스네일과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만 확정할 수는 없다. 마음이라는 변수가 늘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동안의 행동과 마음의 방향성을 갑자기 확 바뀌는 상황이 아닌 한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그대와 스네일은 이 시대와 환경의 부름에 의해 탄생했고 각자가 맡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한 결정은 그대들이 알아서 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늘 다른 존재들을 위해 나아가는 그대들의 마음을 유지하는 한 장래는 밝을 것이다"


"그럼, 마지막 질문이예요. 그 ‘인류’라는 게 존재하고 우리가 사는 셀은, 그들이 ‘암’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인 세계로 규정하고 소멸시키려 하는데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게 옳은 것인가요? "전 우주를 고려하면 인류 외에도 수많은 종의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너희 세계에서 믿는 것처럼 구슬이 별이 되고 새로 태어날 때 그 별 속에는 또 수많은 생명이 존재하게 된다. 즉, 모양과 색 등 모든 변할 수 있는 수만큼 다양할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의 다이아몬드가 수만 개의 다이아몬드들로 나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류가 부르는 암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너희의 역사관처럼 원래 존재하던 ‘셀’이 기존의 죽음 프로그램을 거부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고통스러운 것은 즉시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옳고 그런 의미에서는 너희들의 ‘암화 된 셀’은 소멸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너희 스스로는 태어나서 살아가려는 의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우주에,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수용하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인류’는 자연을 거스르는가 수용하는가? 똑같은 질문을 던 질 수 있겠지. ‘대화’가 가능하다면. 마치, 다이아몬드가 다이아몬드를 부수려 하는 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해 끝없는 고통의 바다로 들어갈 것인지 더불어 진짜 나를 찾아가는 빛의 길을 함께 할 것인지는 인류와 너희들의 의지에 달려있다. 인류와 그들이 살고 있는 또는 살아갈 별들과의 미래처럼.


마지막으로, 만약 서로 사랑하는 길을 택하고자 한다면 '아링하리(Aringhary)'를 기억하라. 너희는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다"

"트위스트! 트위스트!!"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여긴 어떻게, 스네일?"


스네일, 스네일이다. 못 보고 갈 줄 알았었는데. 마치 꿈처럼 그가 나를 앉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 구슬들이 우리를 여러 번 살려주네" 스네일이 빛나는 구슬과 실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스네일, 사령부로 간 거 아니었어?" "응,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 스네일의 로봇들이 실드 위에 떨어진 천장 파편들을 치우고 트위스트 슈트에 부스트를 부착시켜 빠르게 빠져나왔다. 스네일의 셔틀에 오른 트위스트는 오믹스함에 연락해 서로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다. 이동하면서 스네일은 트위스트에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을 했다.


"사령부로 가는 길에 바드에게서 연락받았는데, 21을 추적하고 있다고 했어. 자기는 지금 출동으로 정신없을 거라고 하면서 나한테 우선 알려줬지" "21을? 그래서?" "그런데 21의 행적이 하필 자기가 긴급출동하는 근처 568,900 셀이라고 했어.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자기가 출동한 방향으로 날아왔지. 자기가 무너지려는 빌딩 주차장에 셔틀이 불시착하는 것 보고 달려왔는데, 정말 이 구슬들 아니었으면 우리가 구슬이 될 뻔했어" 살짝 유머를 시도한 듯한 그의 어설픔도 지금은 용서된다. "고마워, 자기도 위험했는데" 하며 다정한 눈빛을 보내고 바드에게 연락했다. 21은 이미 바드 팀이 추적하는 것을 눈치채고 달아난 것 같다고 한다. 피드와 팀프 부대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 바드와 협조해서 조사할 것을 부탁했다. 21이 사건 현장 근처에 있었다면 53이 이 일련의 사건들에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무슨 이유로 그리고 어떻게 한 걸까? 향후 조사를 하는데 선입견이 생길까 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론 21의 비열한 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조사단의 일이지만 53과 21이 연루된 사안이 확인되면 우리 '셀 이주 연구위원회'의 사령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할게.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가 빨리 완성되어야 53의 끊임없는 소행들을 멈출 수 있을 텐데"

"고마워. 조금이라도 증거가 확보되면 협조 공식 요청할게. 비밀 프로젝트는 머시너리 사 최고 엔지니어 힛샥이 참여하고 있으니까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야. 그럼, 조심해서 가. 나중에 연락할게"


트위스트는 조사단 임시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상황 브리핑실에서 보고받았다. "보시는 바와 같이, 스파이더들의 영상들을 확인해 보면 미확인분 해체들이 총 8곳의 빌딩 하부에서 빌딩을 분해 흡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장이 무너져 저희가 일시적으로 워프로 빠져나왔다가 다시 포집용 드론들을 보내 주변 시료들을 채취해서 지금 분석 중입니다. 다행히 현재 시점에서는 다른 블록이나 다른 셀의 도시에서 더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기존에 함께했던 베테랑 대원들이어서 든든하다. "엔지니어들과 그들을 보호하던 부대원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게… 부대원 3명과 엔지니어 1명이 소멸되었습니다. 저희와 셀 보안국의 추정으로는 모자이크 소멸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요?" "빌딩 흡수된 568,901셀이 아니라 저희 임시캠프가 있는 이 셀에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569,000셀에서" 99.99% 확신이 든다.

21이다.


트위스트는 조사단에 세 가지를 지시했다. 미확인분해체를 규명할 것과 앞으로 모든 조사를 진행할 때는, 팀프와 피드 부대의 보호 및 경호하에서 실시할 것. 그리고 569,000셀의 보안국에 협조 요청을 하고 모자이크 도시의 사건 현장으로 특별 조사팀을 보내, 희생자들의 소멸된 방법과 원인을 찾아올 것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셀 연합위원장에게 현 상황을 보고 한 뒤, 53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증거가 확보되는 데로 비밀 프로젝트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긴급 비상회의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걱정하는 프카와 T3D1이 뒤따라 들어오는 단장실로 돌아와 거울을 보고서야 여태 슈트를 입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긴 하루'였다. 눈을 감고 푹 쉬려 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들었던 내용들이 계속 마음속에 맴돈다. '아링하리' 스네일에게 연락했다. "우리 심야 데이트할까? 배고파" 스네일이 걸어준 행운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지금 막 올라온 보고서 파일을 열었다. 현장에서 포집한 시료 분석 결과였다. 첫 리포트는 대사체 프로파일링 결과다.


[고농도 아미노산]

두 번째는 미확인분해체의 단백질 프로파일링 결과,

[리소좀 (Lysosome) 효소 (Enzyme)]

였다. 응? 이건? 큰일이다!!


"스네일, 자기야? 미안한데, 우리 둘만 만나는 데이트는 미뤄야겠어. 위원장님께 긴급 비상 회의 요청했으니까 거기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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