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포식 (Autophagy)

by 골든라이언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셀들이 스스로 자가포식(Autophagy)을 시작했다는 말이죠? 위원장의 질문이다. "네, 우리의 삶의 터전인 셀들도 유기체이며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 보호본능이 있죠. 그런데,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요즘처럼 에너지 공급원이나 자원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유지에 필요한 아미노산들이 많이 부족해지니까 스스로 채우려고 아미노산이 풍부한 단백질 산이나 단백질 빌딩이 밀집된 도시를 우선 분해 타깃으로 한 것 같습니다. 여기 오는 동안 몇 군데 블록에서 추가로 리소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건설부 위원이 바로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 위원님들도 잘 아시다시피 역사적으로 셀의 자기 포식에 대한 현상은 잘 알려져 있고,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매달 사용한 자원과 에너지의 양을 보고받고 일정량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었소. 모자이크 도시 프로젝트는 특히 에너지 소모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관리해 왔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트위스트가 말했다. "네, 맞습니다. 제가 현장 공사 책임자를 만나 들은 진술도 동일했습니다. 그럼, 다음 자료를 한번 보실까요? 왼편의 수치자료는 현장 책임자들로부터 받은 로데이터(Law data, 원본 데이터)인데 56,887~56,889 셀의 모자이크 프로젝트의 지난 2년간 셀 연합 위원회에 보고된 에너지 및 자원 소비량 데이터입니다. 오른편 데이터는 여기로 출발할 때 요청했던 셀 연합 위원회에 보관된 소비량 데이터입니다" 의문을 제기했던 건설부 위원이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반올림 정도도 아니고 마지막에는 두 배 이상 차이 날 수가 있지? 블록체인 개인 키 복호화 암호는 조작 불가능한데"


"데이터 전송 과정을 탈취하는 방식이 아니고 암호가 풀려 데이터가 영상화되어 사용자에게 보이는 바로 그 짧은 펨토 세컨드 사이 즉, 약 10^-15초 만에 이루어지는 기술이죠. 예전에 프카가 해커로부터 받아 성공한 53의 박스 암호 가로채는 기술과 53이 시도한 암호가 풀리는 동시에 다른 데이터가 삽입되도록 하는 기술들의 완벽한 조합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초기에는 에너지 사용량의 양쪽 리포트 간의 격차가 크지 않았습니다. 양쪽의 데이터를 가로채어 조작하는 게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한 뒤에는 조금씩 늘려갔던 거죠. 예를 들면, 현장에서는 10을 썼다고 보고했는데 위원회에서는 5 정도만 썼다고 보고받고 당초 예상치인 7보다 낮으면 위원회 쪽에서는 안전성과 견고함이 떨어지니 2를 추가하라고 지시하고 그러면 현장은 12를 쓰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공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조금씩 더 얹어가면 결국 2배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오토파지’ 마지노선인 1.5배를 훌쩍 넘겨버리도록 유도한 셈이 되는 거죠" "수법이 딱 그놈들 짓인 것 같군" 당시 53의 테러를 직접 경험했던 위원장이 말했다. "자, 그럼, 이 데이터들을 한번 보시죠" "음, 저 데이터는 조작되지 않고 그대로 보고되었군"


"네, 이 데이터는 569,000셀의 모자이크 프로젝트 공 사현장에서 확보한 거예요. 바로 엔지니어 한 명과 특수부대원 세 명이 소멸된 곳이죠. 평소 에너지 사용량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긴 엔지니어가 데이터 클라우드 서버실에 대원들과 함께 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 덕에 데이터는 그대로 보존된 것이고. 바드가 21을 추적할 때 568,900셀로부터 놓쳤다는 걸 보아 21은 569,000셀로 이동해서 범행을 벌인 후 도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지만 아직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가 한 짓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요. 문제는, 저들이 위원회와 셀 이주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는 모자이크 도시빌딩 소멸 사건처럼 일반 시민들에 대한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고요"


"그럼, 현재 우리 위원회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의견이 있소?" 다른 위원이 물었다. 스네일이 대신 답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17p13.1(17번 염색체 단완 13.1 부위)의 11개의 엑손(exon, DNA 염기 서열 중 단백질의 구성 정보를 담고 있는 부분)을 조사할 수 있도록 허가 부탁드립니다"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던 위원장이 말했다. "이건 53의 유전정보 구간 아니오? 53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겠다는 건데 그건 좀 곤란하오. 잘 알다시피 우리 각 개인의 유전 정보보호는 셀 연합회의 헌법과도 같은 규율이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부정한 짓을 벌이는 범죄자라 하더라도 허가할 수 없소" 위원장의 반대 의견을 듣고 트위스트가 이에 답했다. "네, 어릴 때부터 배워온 것이 어서 잘 알죠. 위원장님 그 법률은 우리 셀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우리 단백질들을 위한 법인 거 맞죠?" "그렇소" "그럼 53이 우리처럼 셀의 염색체의 정보를 가지고 생성된 것이 아니라면 그 법률에 저촉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렇… 응? 그럼 53이?" "네, 위원장님 그는 우리 셀의 염색체에 심은 재조합 유전자에 의해 생성된 단백질입니다. 바로, 인류에 의해"


스네일이 말했다. "제가 알기론 여기 계신 위원님들은 아마 EX 스페이스 셔틀 프로젝트 때 입수한 특별한 자료, 즉 '인류'에 대해서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닌가요?" 침묵은 긍정이다. 스네일이 이어서 말했다. "53이 섬광 테러를 벌인 그날 셀 연합위원회 회의장과 대부분의 카메라가 불능 상태가 되었지만, 다행히 복도 끝에 있던 카메라가 53을 포착했습니다. 이것은 위원장님께서 분석을 위해 직접 저희에게 보내주신 영상입니다"


영상에는 복도 끝에서 위원회 회의실 쪽으로 비치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비상벨이 울린 듯 복도 두 명의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가고 바깥쪽의 대원들이 지원하러 달려오는 순간 회의실의 닫힌 문 안쪽에서 빛이 폭발하듯 복도 바깥까지 눈부시게 번졌다. 곧이어 복도에 문이 부서지듯 튕겨 나온 53이 넘어졌지만, 곧바로 일어나 눈이 보이지 않아 엉거주춤 서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을 순식간에 소멸시키고 카메라 반대편 복도 끝 셔틀 정거장 방향으로 사라졌다. 스네일이 다시 영상을 돌려 53이 문 쪽으로 부딪혀 넘어지며 나오는 장면부터 천천히 재생시켰다.


"53이 저렇게 튕겨 나간 건 저와 트위스트의 구슬들이 만든 실드 때문입니다. 여기 이 장면에서 그의 허리벨트를 주목해 주십시오. 자, 문에 부딪힐 때까지 빛나다가 일어설 때는 빛이 사라지는 것이 보이시죠? 다시 한번 확대해서 보겠습니다. 53은 문에 부딪히면서 그의 벨트로부터 빛을 내는 중요한 단서를 떨어뜨리고 갔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트위스트 설명 부탁해"


영상을 업로드 한 뒤 트위스트가 나와서 설명을 시작했다.


[오믹스함 프로테오믹스 질량분석 파일 # 052][단백질 분석 결과: GFP (green fluorescent protein, 초록 형광 단백체)]


“보시는 바와 같이 초록형광 단백체로 동정이 되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섬광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위원장이 놀라며 물었다. "저건 우리 셀 유래의 단백질이 아니잖소?" 트위스트가 답했다. "네, 맞아요. 저 단백체는 우리 셀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래종 단백질이에요. 그래서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단백질 서열을 확인하는 방법 즉 De Novo Sequencing (드 노보 시퀀싱) 기법으로 정보를 획득한 다음 다른 종의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봤더니 저렇게 나오는 거죠. 더 중요한 것은 당시 53이 회의실에서 EMF 외에 발생시킨 특이한 에너지가 하나 더 검출되었는데 조사 결과 자외선 (UV) 파장대의 에너지가 검출되었어요. 아마 그는 당시 자외선 생성기를 켜서 자신의 벨트에 있는 저 단백질을 순간 자극 (exitation) 시켜 초록색 형광을 만들어 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이것도 보세요" 다른 파일도 업로드했다. "옛날 셀 이탈 방지 위원회 위원이었던 키스님이 보여주신 영상인데 파프 (PARP1)에 어떤 투명체가 달라붙는 장면의 저 뒤편에 초록색 형광 불빛이 보입니다. 그리고 저의 언니와 스네일의 형이 정찰 갔다가 소멸된 저 셀도 중입자포를 맞기 직전 초록빛 점이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도 보이시나요? 과연 셀 이 소멸되거나 공격받을 때마다 초록빛이 난다는 것이 우연일까요?"


설명들 듣고 한 위원이 추측했다. "53이 거기에 있었다는 얘긴가?” “아니요. 본인의 복제 로봇들을 보낸 겁니다. 바로 53-GFP 로봇인 셈이죠. 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로봇들을 생산한 복제 머시너리사의 간부들을 소멸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위원이 이어 질문한다. “그럼 53이 누군가가 셀을 공격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그… 그럼 인류가?" 트위스트가 답했다. "그게 제가 긴급 소집을 요청드린 진짜 이유입니다. 그리고 염색체 17번 p13.1 부위를 확인하자고 말씀드린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디까지나 가설이기 때문에 그의 유전자에 변형된 흔적이 분명히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위원장이 결심한 듯 말했다. "개인 유전정보 보호는 매우 중요한 대원칙이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셀의 존립이 기본적으로 보장될 때 성립되는 것이오. 위원장의 직권으로 허용하겠소.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위원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즉시 17p13.1 부위의 맵핑 (mapping, 유전자 지도 작성)을 부탁하오"


예상했던 바였지만 실제로 결과가 나왔을 때 모두가 놀라워했다. GFP를 코딩할 수 있는 염기서열이 마지막 엑손 (Exon) 말단 부위에서 검출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늘 보던 53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데이터를 보며 트위스트가 추가 설명을 했다. "저희가 배운 역사로는, 53의 집안은 대대로 '유전자의 수호자'라는 명성에 맞게 셀의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항상성)를 관리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에 변이(mutation)가 생기고 결국 인류가 '암'이라고 부르는 셀로 변형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죠. 그 이후에도 그들 집안에는 연속적인 돌연변이들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갑자기 53이 마치 옛날의 영광을 되찾듯 정상인 (Wild type, 자연형 혹은 야생형)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한 위원이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세간에는 종종 추모식을 진행하는 53이 예전의 조상들처럼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고들 했지…" 트위스트가 설명했다."인류는 우리 셀의 염색체 중 53의 주요 돌연변이가 있는 17p13.1의 엑손 5, 6 ,7 그리고 8번 네 군데를 잘라내어 버리고 정상유전자를 대신 삽입했어요. 그래서 마치 정상인 것처럼 생활이 가능한 거였어요. 물론 ‘초록 형광 단백체’도 달고 있었지만 벨트속에 잘 감추고 자외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만 하면 들킬 일이 없었던 거죠. 추측건대, 53은 ‘GFP 53 복제 로봇’들을 타깃 셀로 보내고 원격으로 UV 포 등을 이용해 활성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드론도 이용할 수 있고 "


스네일이 이어 얘기했다. "한 번 더 기억을 더듬어 보시면 우리가 셀 이탈 방지 위원회에서 입수한 기밀 파일 '중입자 빔에 의한 1,123 소멸'에서 53이 작성한 '상호조약 1,905'부분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끝났는데, 1,905는 바로 이 유전자 제거 및 재삽입에 성공하기 위한 실험 횟수로 추정됩니다. 이후 53은 성공적으로 형광 표식을 통한 인류의 특정 셀 타겟팅을 유도하게 된 것이죠.

결론적으로는…" 트위스트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호메오스타시스, 투명 결정체 그리고 중입자 빔. 우리와 우리 셀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멸시키려 하고 있어요. 인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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