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 )

by 골든라이언

"자. 다들 여태 참느라 고생했다. 내일이면 셀 연합회에서 '이주'를 시작할 거고 우리 비셀연합이 그간 비밀리에 구축해 둔 수천 대의 전함들이 총출동할 것이다. 그때 맘껏 싸워라. 뭐 숫자는 비등비등할 거니까 저들은 메트릭스 뚫느라 아등바등하다가 끝날 거야. 우리 53 친구들한테 연락해 뒀지? 걔네들도 단체로 숨어 있으니까 답답하다고 난리다. 내일 모든 전함을 성공적으로 탈취하고 장악하려면 사단 집결지 주변에 잘들 숨어 있으라고 해" 1번이 명령했다.


새벽이 밝아 오고 있다. 개시. 수만 명의 ‘53들’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모든 전함이 대원 탑승을 위해 해치들을 열고 먼저 각 함장이 들어가려는 입구에서 일시에 습격했다. 함장들과 참모들이 그 자리에서 소멸되고 53들이 막 오르려는 순간. 어디선가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작은 로봇들이 53들에 일제히 달라붙는다. 53들이 'MDM2-chem'이라고 적힌 이 작은 로봇들을 신속히 떼어내려 했지만, 이상한 물질이 '착'하고 벨트 깊숙이 들어와 박힌다. 뒤이어 바드팀들이 레이저로 지정한 지점으로 연합 기갑부대들이 쏘아 올린 로켓들이 폭발하며 쏟아낸 유비퀴틴 (Ubiquitin)들이 몸에 달라붙더니 즉시 하늘에서 대규모의 원통들이 날아 들어와 53들을 분해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소멸이 끝나면 작은 로봇들은 또 다음 타깃을 찾아가 반복적으로 공격했다. E3인 베타의 아이디어로 만든 트위스트의 작품이다.


MDM2는 원래 스네일 등에도 위협적인 E3 지만 53만을 위해 화학물질을 붙인 형태로 특별 제작 된 것이다. 뒤이어 기지에 미사일과 플라즈마포 공격도 날아들었다. 대기하고 있던 페론이 이끄는 사단들이 도착해 비 연합셀의 군사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그러나 이미 전함 속으로 피해 달아난 53들은 안전하게 전함들을 장악했다. 1번이 탄식하며 말했다. "쳇, 변수가 나타났군. 형제들 전투함정 천 대는 남아 기지방어를 해라. 겨우 이천 대 정도만 끌고 가야겠네. 그래도 막을 수 있다. 자. 나머지는 모두 전속력으로 셀 이탈 구역을 향해 워프"


“약 70 프로의 53이 소멸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트위스트는 페론의 공격 개시까지 확인한 뒤, M2를 소환해 메트릭스를 부수기 시작했다. 적의 전력이 떨어진 이때다. 53들은 언제고 다시 만들어져서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스네일들은 모든 호위 전투 전함들을 이끌고 53들이 도착하는 예상지점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C-NUT 작전이 먹혔지만, 여전히 상대전력이 만만치 않고 M1과 새로운 T의 출현 등 대비해야 할 변수를 생각하면 아직 완전한 우위가 아니다. 예상대로 매트릭스의 붕괴 속도가 너무 더디다. 떠나는 이들 남는 이들 할 것 없이 모든 연합 셀 시민들은 초조한 상태로 숨죽이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드디어 나타난 53들의 함대와 스네일들의 함대 간의 '우주전쟁'이 개시되었다. 비등한 상황에서 양쪽 다 M1 소환 카드를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격렬한 초반 접전에 스네일 쪽이 우세한가 싶더니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점점 M2가 있는 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한 53 돌연변이들은 적 함대 대량 섬멸을 위한 고에너지 플라스마 포를 준비하기 위해 매트릭스 위의 특정 지점으로 몰렸다. 이때, 트위스트가 반지의 크리스털을 만지며 스네일에게 나지막이 "작전 개시"를 전했다. 스네일은 좀 더 멀리. 후퇴하면서 매트릭스 쪽으로 포를 발사했다.


"M2들을 포기한 건가? 버리고 가네?" "저 멍청이들이 우리가 아니라 메트릭스를 쏘는데? 1 어떻게 할까?" 각 전함에서 무전들이 시끄럽게 들어온다. "지금이다. 기세 늦추지 말고, 고에너지 플라즈마 발사 준비. 3… 2… 1 발사!" 엄청난 섬광 때문에 지켜보는 모든 시민의 눈이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사라진 것은 53들의 전함과 메트릭스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의아해했다.


사실, 트위스트는 스파이더들에게 GFP를 입혀 메트릭스 곳곳에 미리 숨겨 두었었다. 일부러 수세에 몰린 척 53을 그쪽으로 유인한 스네일이 트위스트의 신호에 맞춰 거리를 두며 비밀리에 개발한 ‘UV 포’를 스파이더들이 있는 매트릭스 쪽으로 발사한 것이다. 순식간에 매트릭스는 초록 형광빛 섬광으로 물들었고 그곳을 표적이라고 여긴 인류가 발사한 중입자포에 53들과 메트릭스가 동시에 소멸된 것이다. 53과 인류 간의 조약을 역이용해서 대규모 셀 이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스네일이 반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랑해. 트위스트. 꼭 찾아갈게. 기다려 줘" 트위스트는 아무 말을 못 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스네일은 반지 너머, 트위스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T3가 조용히, 전 연합셀로 중계되고 있는 트위스트의 영상을 껐다.


L 구역으로 가는 여정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스네일들이 우주의 흐름을 따라 N으로 가는 반면, 지름길을 위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주피터급 오믹스 함뿐만 아니라 모든 셀 호위 전투사단들과 이동하는 셀에 부착된 거대한 추진기의 출력 에너지가 두 배 이상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거슬러 올라가다가 비교적 흐름이 약한 곳에 일시적으로 정박하듯 멈추고 있으면서, 흐름을 이용한 에너지 생성기를 이용해 에너지 보드를 채우고 다시 출발. 이런 식이다 보니, 더디게 갈 수밖에 없다. 이미 조금 추진력이 떨어진 셀 몇 개가 흐름에 쓸려 내러 가버렸고, 그럴 조짐이 예보될 때마다 시민들의 대이동 행렬이 이어졌다.


그래도 좋은 점은, 거슬러 올라갈수록 빠른 흐름 덕분에 M과 T 등이 근처에 유영하며 위협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굳이 전투를 벌일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단장인 피드가 부대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유지하는 수준이어서 에너지 보존에는 큰 도움이 된다. 히프도 한번 다녀온 경험이 있는지라 자동 항해 장치에 그녀가 가져온 경로 정보를 입력해 두어서 위험한 소지가 있는 곳은 피하도록 해두었다. 그 덕에 오믹스함은 마치 '우주 생물환경연구소'처럼 되고 있다. 목표지점을 향해 나가며 주변 환경의 다양한 셀들과 카인들 그리고 유기물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해 나갔다. 우리들이 정착에 성공하면 시나리오상으로는 고향에서 2차 출발을 계획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진행에 좀 더 수월한 길을 표식 해가며 항로에 대한 지도도 작성 중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53과 21과 대치하느라 정신없었던 그때와 달리 너무 시간이 남는다. 일부러 바쁘려고 했는데, 그래서 피곤해 잠들려 했는데… 결국, 가장 정신이 멀쩡한 새벽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스네일이 준 반지, 오믹스함의 채널, 그리고 마지막으로 셀의 가장 성능 좋은 송수신 시스템으로 그와 계속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 끊어진 지 오래다. 잘 가고 있으려나. 그의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을 텐데. 게다가 대규모 이동이라. 다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그와 거닐던 산책로가 떠오른다. 빛들이 그립다. 그의 따뜻한 가슴과 맑은 눈동자도… 처음 그를 지목하고 만든 비밀 채널 네트워크의 회의가 떠올랐다. 당시에, "셀들은 하나씩 소멸하는 단계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데 스네일 씨만큼은 이런 붕괴 상황 (destructive condition) 전개와는 반대 즉 무언가 에너지가 상승하는 듯한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 포착되기 때문에 일련의 사건과 무관하거나 단순한 승객 (passanger)은 아닐 것이라는 거죠"라는 주장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에너지가 상승했던 건 트위스트 그 자신이었다. 머시너리사의 VIP 고객 담당했던 일개 직원이, 특수 조사부장, 오믹스함 함장 그리고 특수 전투분석 사단장에 이어 총사령관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걸 당시 회의 때 지켜본 53이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내게 무슨 말을 할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이들이 소멸하였다. 스네일과 함께 걸어온 걸음 수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구슬이 되었고 마침내 별들이 되고 있다. 셀 이탈 이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직하던 혹스의 구슬이 빛을 내며 사라져 갔다. 함대 창밖으로 보이는 저 별들 중 하나일까? 스네일에게 건넨 언니의 구슬은 좀 더 오래 남아 그를 잘 보호해 주길 기도해 본다. 물론 나도 안전하게 도착해서 그를 기다려야지. 어제 많은 이주 시민들이 트위스트의 총사령관 임명을 축하해 주었다. 어떤 시민분들은 T3가 끄기 전 영상을 봤다며 축하 겸 위로의 연주를 해주셨다. 부끄러웠지만 너무 감사했다. 이 모든 분들을 위해 걷는 한 걸음이 그에게 닿는 거리를 좁혀 주길…


그와 나 사이에는,

수많은 이별들이 있었다.

그 모든 이별은,

별이 되고 있다.

이 별들의 바다를 건너,

그와 나란히 걸을 수 있을까?


흥분한 프카가 사령관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트위스트, 아니, 아니 사령관님! 우리가 뭘 찾아냈는지 보세요" 뒤이어 따라 들어온 히프가 손에 뭔가 작은 박스를 들고 왔다. "우리끼리 왜 이래. 근데, 뭔데?" 히프는 박스에 들어 있는 작은 칩을 T3에게 건넸다. 영상 자료가 열리고, 그걸 보는 트위스트는 눈이 동그래졌다.


["집에서 문만 열면 회사가? 이제 지옥 출퇴근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가 갑니다. 당신의 집 앞으로 아니 안방으로!"

"잠결에 일어나 방문 열고 나갔더니 마트에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네요… 호호호"

"밤새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35,684셀 바다 앞이더라고요. 이제 따로[…]"]

어디서 많이 본 광고 영상이다. 트위스트가 실망하며 말했다. "저건 모자이크 프로젝트 도시 광고잖아" "맞아. 그런데 저 하단 자막에 있는 셀 번호를 봐"

"셀 번호가, 4,916이네… 4,916 응? 저긴 스네일의 기지가 있던 셀 번혼데!!" 4,916셀은 트위스트가 처음으로 초대받고 방문한 스네일의 비밀 지하기지가 있는 셀이면서 지금 스네일군과 함께 N으로 향하고 있는 셀이기도 하다. 나 와 스네일의 추억 때문에 가져온 건가? 프카라면, 가능할지도. "맞아. 그런데 이게 어디서 구했게?" 갑자기 수수께끼? "음… 우리 이탈하기 전에 어디서 입수한 거 아니야?"

"아니야, 이거… 어제 날아온 거야! EX 미니셔틀 타고" 히프가 대답했다. "응? 뭘 타고? 저게 날아왔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트위스트, 저거 N으로 가고 있는 '이탈셀'에서 보낸 거야. 더 정확히는 버린 거지만" 프카의 답에 트위스트는 순간 매우 놀랐다.

최근 프카는 히프와 함께 가끔 환경 조사를 나갔다. 지금 구축된 통신 채널 네트워크는 같이 이주하기로 한 회사 식구들과 자발적 지원자들 덕에 별 탈 없이 잘 운영되고 있지만, 좋아하는 특수작전이 없는 탓에 새로운 일에 취미를 붙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조사를 나간 이탈 셀들의 곳곳에 자그마한 EX셔틀들 즉 작은 엑소좀들이 간헐적으로 몇 개씩 한꺼번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자그만 EX 셔틀들이야 우주에 많은 셀이 생성하는 평범한 것들이어서 특정 지역을 지나가는 것 때문에 그런 패턴을 보이나 보다 했지만, 분석업무도 참여해 볼 겸 어제 몇 개 회수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일부의 셔틀에서 꺼낸 것들 가운데 뭔가 익숙한 생활 쓰레기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중 한 셔틀 내에서 발견된 작은 포장된 박스를 확인해 보니 바로 저 영상이 들어있는 칩이 온전하게 들어 있었다.


"그럼?" "맞아!! 우리도 뭔가 보낼 수 있고 저쪽이 찾아내기만 하면" 히프의 가설에, "소식도 물건들도 주고받을 수 있는 거지" 프카가 확신한다. 그렇지!! 스네일들은 우주의 흐름 방향으로 우리는 그 반대인 역방향으로 가고 있으니까, 저쪽에서 버린 것이 순환하다가 우리 쪽 셀에 도달할 수가 있었던 거구나!


어느 날, N 구역으로 향하는 셀들의 곳곳에 이상한 모양의 무수한 EX 미니셔틀이 무리 지어 떨어졌다. 그 내용물들은 곧장 재브위원장이 있는 N 연합위원회로 전달되었다. 총사령관 스네일과 위원들이 재브와 함께 본 그 영상에는 트위스트와 동료들의 안부 인사 그리고 EX 셔틀 바깥쪽을 열심히 꾸미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받는 쪽이 알아볼 수밖에 없도록! 우주의 순환을 이용해 직접 통신이 불가능한 원거리에 있는 셀 간에, 새로운 통신 및 딜리버리 시스템이 구축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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