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략 … 이제 곧 당신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슈퍼 EX 딜리버리" 한번 교역 루트가 열리자 각각 N과 L로 향하고 있는 셀들 사이에는 활발한 변화가 일어났다. 일단 EX미니셔틀이 상대 셀 근처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송수신 장치와 미니 자율항해 시스템이 켜지면서 정확히 슈퍼 EX 딜리버리 사의 물류센터로 이송되도록 개발되었다. 만약을 대비해 슈퍼 EX 딜리버리 사의 스페이스 셔틀이 보다 먼 반경을 일정한 시간 순회하며 비교적 멀리까지 흘러가 분실 우려가 있는 것들을 회수해서 물류센터로 보낸다. 각 물건들은 예전처럼 튜브 딜리버리로 각 가정에 배달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주라는 미지의 변수로 인해서인지 여전히 분실률이 30%를 상회했다. 이 때문에 곧 서로 방문이 가능할 거라는 희망 고문을 담보로 수익성 확보를 위해 저렇게 홍보하지만, 직접 셔틀에 타고 오가는 저런 위험한 프로그램은 아직 현실성이 없다. 양측 지도부도 허가를 내어주지 않고 있다. '나부터 가고 싶다' 지도부 소속 트위스트와 스네일의 마음이다. 분실을 대비해 항상 똑같은 영상과 선물을 4개씩 따로 준비해서 주고받는 것은 그렇다 쳐도 오히려 모두 잘 도착하면 그 처분이 대략 난감하다. 다들 이 부분을 개선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지만 회사 대표이면서 최고 엔지니어 수석인 힛샥조차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고가이거나 귀중품들은 여전히 배송이 어려웠다. 그러는 와중에 스네일에게 한 가지 좋은 소식이 들어왔다.
- N 함대총사령관실 -
다행히, 트위스트가 L 구역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의 예상과 반대의 전개였는데, 흐름을 거슬러 L 쪽으로 간 트위스트들이 비교적 순항한 것과는 달리 이쪽은 지속적인 위험천만한 변수들을 근근이 막아내느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내가, 꼭 찾아갈게" 약속도 했고, 그녀가 걱정할까 봐 또 보안상 전달하지 못한 사실들이 많다. "스네일 총사령관님, 비상입니다. 또 NK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며칠 후면 곧 N 목적지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근처에 존재하는 특이한 셀이 우연히 우리 셀 쪽으로 다가와 살짝 접촉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근처의 셀막에 구멍을 내고, 무언가 효소 같은 것들을 구멍 낸 세포막 내에 마구 뿌려서 세포질을 해체시켜 버렸다. 결국 당한 셀들은, 소멸이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수많은 시민이 함께 소멸한 충격 탓에 멀리 후퇴했다. 자연상태에서 우연히 만난 셀 저승사자, 그래서 우리는 그 셀들을 NK(Natural Killer cells)라 명명했다. 그 NK들이 또 출몰한 것이다. "모든 전투함은 ‘음영 상태’로 있다가 NK가 더 가까이 오면 일제 발사하고, 셀들은 군대가 시간을 버는 동안 역추진 최대출력으로 이동한다"
아직 저 셀의 정체가 파악이 안 된다. 섣부르게 덤비다가 전멸할 수도 있다. 출몰 빈도를 계산한 결과 분명 목적지인 N 구역 부근에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최초 탐험했을 땐 없었던 변수인데 셀 수가 많은 탓에 주변으로 퍼진 카인이나 대사체들이 그들을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회피 후 고심 끝에, 확보한 시료들과 영상 자료를 안전하게 각각 8개씩 준비해 L 구역으로 보냈다. N 위원회에서도 트위스트의 분석 시스템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SOS 상황.
- L 함대총사령관실 -
마침내 L 구역에 잘 안착이 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함대의 저출력 에너지 플라즈마 포만으로도 말랑말랑한 매트릭스는 잘 분해되었다. 트위스트는 셀 안착 최종 보고를 받고, 산소 농도 게이지가 반짝거리며 그린라이트와 함께 21%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엄청나게 신선한 산소!! 더 이상 지긋지긋 한 산소 보조 키트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 "내일부터, 각 셀 튜브 네트워크에 연결해서 자원 및 에너지 공급 시작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전투 호위 사단들도 기본 경계만 유지하고 휴식을 취하시고. 모두 고생했어요" 이제 셀들이 어느 정도 증식하면 L 셀 연합과 위원회를 구성하면 된다. 그때까지이다. 내 역할은…
그때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거짓말처럼 피드가 무언가를 들고 급히 찾아왔다. N 팀이 보내준 SOS 요쳥자료이다. 각각 6개 세트가 잇달아 도착했다고 한다. 즉시, 오믹스함에 지시해 시료 분석에 돌입했다. 그 NK라는 셀이 N으로 항해 중인 셀들의 막에 구멍을 낼 때 쓴 물질이 퍼포린(Perporin), 셀 내로 마구 뿌린 것은 그랜자임 (granzyme)이라고 부르는 단백질인 것을 알아냈다. 문제는, 스네일들은 그것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괜찮다고 하더니… 참…" 사실 다른 이들이 N 팀들과 주고받은 정보들을 통해 N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걱정할까 봐 스네일이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위스트도 모르는 척했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이 분명하다. 전 셀에 채널을 열고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L 구역의 첫 번째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우주 순환의 자연적 유리함에 기대해 N 쪽으로 간 셀 수가 엄청난 데 비해 몇십 배 적은 L에는 연합위원 제도나 위원장 선출 등 정책 결정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총사령관의 직권으로 개최한 것이다.
"금일 의제는 […]" 다행히 비교적 안정된 상황이어서 회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역시 산소나 에너지 문제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순 없는 문제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특히, 셀 증식 확장 및 연합회 구성이라는 원래 계획을 추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N 팀을 지원하는데 소극적 개입 정도만 하자고 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반대의 의견이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은 아직 셀 정착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자칫 증식이 새로운 위험을 불러올 때 미리 대비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온 고향의 상황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셀 증식보다는 '휴면(dormancy)' 상태를 유지하자는 쪽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셀의 도시 건설에 들어갈 인프라는 자연스럽게 NK에 대항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 생산할 수 있는 '물질 합성공장'을 구축하는 형태로 전환되었고, 슈퍼 EX 딜리버리 사와 협력해서 전투함의 일부를 개조해서 대량 생산된 NK 억제제들(inhibitors)을 N까지 수송할 수 있는 ‘EX 스페이스 대형 화물 셔틀’을 만들기로 했다. 시민들은 특히 화물 셔틀 개발에 대환영이었는데, 성공하면 직접 이동이 가능한 상황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상황은 그들 모두에게 점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두 개 세트, 똑같은 거 발견했대. 1004" "놔둬, 급한가 보네. 뭐 하는지 두고 보자고. 아직 우리가 자기들거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는지 모를걸. N과 L 중간에 있는 우리 비밀기지에 연락해서 똑같은 거는 절대 전부 회수하지 말고 일부만 챙기라고 해. 우리 쪽애서도 L에서 N에 보내는 배송도 똑같이 처리하라고 한 번 더 지시해. 욕심부려서 괜히 의심받아 들킬 수도 있으니까. 하여튼, 21이 재미난 전술을 남겨놨네! 크크" L 과 N 양쪽 모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치명적인 위험 고향의 남아있는 공격형 돌연변이, '53들'이었다.
셀 연합의 대이탈이 있던 날 페론과 팀프의 기지 공격을 막아내느라 오백 척 이상의 전투 전함과 삼만이 넘는 '53들'이 희생되었다. 물론, 셀 연합 이탈 저지를 위해 출동했던 1번을 태운 지휘함을 비롯한 이천 대 이상의 전투함들이 중입자 빔에 소멸될 때만 하더라도 패색이 짙었다. 그렇지만, 적들이 잠시 재정비하는 사이 '인류'가 보낸 2차 바이러스 감염 덕에 소멸한 공격형 돌연변이 '53들'의 수를 순식간에 회복하였다. 조금씩 적들을 밀어내며 비등한 대치 상태를 유지하던 사이, 반대편 셀 지역에 기습적인 3차 감염까지 성공함으로써 오히려 페론들이 이끄는 셀 연합사단을 양쪽에서 압박하는 형국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저 무시무시한 'MDM2-Chem'의 공격도,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는 '53 웨이브'를 막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형제들을 희생시키면서 MDM2-Chem를 소진시키는 방법 외의 회피 방법을 찾지 못한 탓에 셀연합의 C-NUT 작전은 '53들'에게 트라우마에 가까운 대한 공포가 되었다. 아무리 공격적인 그들이라도 섣불리 쳐들어갈 수 없어 장기적 대치 상태로 이어졌다. 게다가, 점점 나빠지는 환경에다 전쟁으로 인한 상흔 및 과도한 자원 소진 때문에 전체 셀들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이는 유전자 삽입 후 셀의 머시너리를 이용한 '공격형 53들'의 생산 차질로 이어졌다.
"요즘 '불량 53'의 퍼센트가 늘어나고 있다. 눈앞에 적이 있다고 무턱대고 쳐들어가면 안 돼, 형제들" "까짓거, 안되면 인류가 또 바이러스에 실어 보내주겠지, 안 그래? 1004?" "568975012 이 멍청아, 셀 상태가 안 좋다고 지난주에 얘기 나온 거 기억 못 해? 아, 너도 최근에야 나온 놈이지. 어쩐지 상태가 안 좋다 했다" "256489, 너 가만 안 둔다. 내 오늘 널 불량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당장 따라 나와" 새로운 지휘관 53-1004는, 싸우는 그들을 제지하고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는 다른 '53들'의 보고를 받았다. "N 구역으로 가던 스네일들이 NK라는 셀에 공격받고 후퇴한 상태인데, L 구역으로 간 트위스트 쪽에 도움 요청해서 NK 억제제를 공급받을 예정이래. 봤지? 보내준 리포터와 영상들?" "봤지, 우리는 우선 가만히 잠복하고 있다가 그 억제제 만들어 보낼 때 중간에 가로채서 그들이 N 구역으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그놈들의 에너지와 자원이 소모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전력을 모아 치러 간다. 우리 1번과 친구들 복수해야지. 그리고 여기 묶어둔 셀 연합 놈들 N 쪽으로 탈출하거나 지원 갈 수도 있으니까, 잘 감시해. 너희들 뚫리면 가만 안 둬"
1004는 L 구역에 트위스트들이 정착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53'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이 상황에서 우주의 흐름을 거슬러 공격 갈만한 여력이 없다. 어차피 우리의 주 타깃은 N 방향으로 가는 거대한 셀 연합이다. 저들이 지반이 단단한 N 구역 곳곳에 일단 콜로니를 정착시키기 시작하면 한 번에 제거하기가 어렵다. 만약 '이주 성공' 소식이라도 알려지게 되면 여기 남아있는 셀 연합 시민들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 N으로 2차 이탈을 감행할 수도 있다. 그전에, 이곳은 지금의 고립 상황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면서 소모적인 국지전을 펼쳐 저들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속도를 높일 것이다. 굶주림과 공포는 그들을 자멸 혹은 항복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결국 소멸되겠지만. 어차피 L 쪽은 휴면으로 들어간 것 같으니, 53들도 예상치 못한 NK 덕택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대어 스네일 쪽을 낚는다. 이후 재정비한 다음 전력을 다해 L 이주지역을 총공격할 것이다.
여차하면 마지막에 적들과 함께 사라지는 '공멸'도 나쁘지 않다.
그게 우리 미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