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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Nov 16. 2023

6. 기도, 너의 나에게

나란히 걷는 선불교

누구에게나 경건한,


[기도].


저마다 바라는 지점, 크기와  깊이가 다르겠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더 이상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읍니다.


온 힘을 다해 마음을 모으고 모아, 닥쳐오고 있거나  다가올 불행한 상황을 벗어나 보다 행복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을 기대하면서...


오늘날에도 어느 곳이든 사찰에 가면 늘 자식과 가족을 위해 부처님께 절을 하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 부처님 전에 향을 피우고 초를 켜고 목탁을 두드리며 예불을 올리는 경건한 스님들의 모습, 경전을 소리 내 읽거나 염주를 굴리며 가만히 정좌 하고 앉아 있는 모습, 혹은 참회를 하는 듯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절을 하는 모습 등등을 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인생 드라마 스토리를 모를지언정 냉-난방 조차 안 되고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그 곳에서 지극한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이지만, 다른 시각을 가진 분들에게는 미신 속에 행해지는 그저 기복신앙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스마트폰 덕분에 다양한 문화를 매우 빠르게 직간접적으로 접하고 보다 직설적인 표현이 익숙한 MZ세대의 눈에는 이러한 기도의 모습들이 자칫 고리타분하고 비합리적인 의식인 것처럼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게다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경전이 한글화 되었지만 '나모라다나다라야야..'로 시작하는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나 '옴 마니 반메 훔'으로 잘 알려진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처럼 본의를 헤치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산스크리트어 음을 번역 없이 외는 진언(眞言)과 '나무 아미타불' 처럼 염불(念佛, 부처의 상호를 생각하여 관하거나 부처의 명호를 부르는 것)하는 모습들이 단순하게 의지처를 찾는 타력 신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비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화두 참선을 수행하시며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어보신 불자님들 가운데에서도 임제(臨濟) 선사의 '살불살조(殺佛殺祖)'로 잘 알려진 법문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蓬佛殺佛),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일 것이며(蓬祖殺祖),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蓬羅漢殺羅漢),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야만(蓬父母殺父母) 비로소 해탈할 것이다]의 원칙 즉,  나를 얽매이게 하는 어떤 고정관념도 무엇이든지 부숴버리라는 뜻과는 배치되는 이러한 주력(呪力) 수행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도 종종 계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가 가진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적 의미에 대해 저의 관점으로 한 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앞서 1편에서 언급했던 [직지]의 칠불 게송을 기준으로 선불교의 내용을 전개한다고 했던 것처럼, 이 기도에 대한 부분도 과거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을 비롯한 모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분들의 정진 가운데 각자가 세운


[서원(誓願),  굳은 맹세]


들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서방 극락정토 세계의 [아미타 부처님의 서원]을 살펴보겠습니다.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이 이 세상의 부처님이었다. 이때, 법장비구(법장보살)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자를 구원하려고,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을 정진하여 마침내 아미타불이라는 부처가 되었다.' - 무량수경(無量壽經) -

 

보통 이 서원들은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군의 출사표처럼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면서 보다 구체적인 발원 내용을 담아 절대로 후퇴하지 않고 반드시 불도를 성취하겠다는 다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미래의 중생들을 가장 빠르고 쉽게 구제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 방법론적인 내용도 포함 되어있습니다. 그 콘텐츠의 방향성과 구체성에 따라 OOO 부처님 혹은 OOO 보살로 수기 혹은 명명이 되기도 합니다.     

 

우선 법정보살의 이 48가지 서원 가운데  다음 세 가지 서원을 살펴보면,


[18원.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9원. 임종현전원(臨終現前願)-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보리심을 일으켜 모든 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면 그들이 임종할 때 제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마중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0원. 식제덕본원(植諸德本願)-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극락세계를 흠모하여 많은 선근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마음을 회향할 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과 같습니다. 이 서원들에는 법정보살이 불도를 이루면 극락세계가 만들어지고 이세계로 오고자 지극한 마음을 가지거나 아미타불을 진심으로 외는 중생은 그 누구라도 차별없이 사후에 아미타불이 주석하는 극락정토에 환생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원입니다.  


그리고 다음 네 가지 발원을 살펴보겠습니다.


[41원. 제근구족원(諸根具足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여러 보살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부처님이 될 때까지 육근이 원만하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2원. 주정공불원(住定供佛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은 이는 모두 청정한 해탈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러 한 생각 동안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도 오히려 삼매를 잃지 않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3원. 생존귀가원(生尊貴家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도 수명이 다한 후에 존귀한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4원. 구족덕본원(具足德本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한없이 기뻐하며 보살행을 닦아서 모든 공덕을 갖추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앞선 세 가지 서원의 구제 대상은 '중생' 들이었다면,  위 네 가지 서원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보살들'이 불과를 원만하게 얻을 수 있도록 강력한 후원을 하겠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남섬부주 세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역이지만 저 법정비구의 발원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우리들이 서방세계 아미타부처님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동방정유리(東方淨瑠璃)세계 즉 동쪽세계의 약왕(藥王)보살이 약사유리광여래 (藥師瑠璃光如來, 혹은 약사여래불)를 성취하기 전 발원한 십이 대 서원 중 아래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6원 제근구족원(諸根具足願)- 제가 다음 세상에서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면 모든 유정들 중에서 몸은 천박한 불구자이며 지저분하고 더러우며 성질은 모질고 어리석으며, 장님 · 귀머거리 · 벙어리 · 손발이 오그라지는 병 · 절름발이 · 꼽추 · 문둥병 · 미친 병 등의 온갖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내 이름을 들으면 모두 다 간교한 지혜는 바른 지혜가 되고 불구자의 몸은 정상적인 몸이 되어 온갖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나이다.]
[7원-중환실제원(衆患悉除願)- 가 다음 세상에서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면 모든 유정들 중에서 온갖 병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치료해 주거나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고 치료할 의약품도 없으며 친척들이나 편안히 쉴 집도 없고 가난의 고통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의 귓가에 내 이름(약사유리광여래불)이 단 한 번만이라도 스쳐 지나가기만 하여도 온갖 병이 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집안 식구들과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이 풍족해지고 나아가서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도록 하겠나이다]


이 발원들은 모든 유정들 즉 중생이 겪는 온갖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 신앙의 대상, 그래서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합니다. (참고로, 현재 팔공산 동화사에 있는 통일약사여래대불은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하루빨리 성취하여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해소하고 민족 대화합을 이루어 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성된 것으로 이러한 발원 배경을 근간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살 가운데 현세 중생 구제의 화신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친근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발원들을 살펴보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즉시 그 음성을 관하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화현해서 고통을 덜어주고 마침내는 해탈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서원]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옥부터 하늘 세계까지 어디든 나투어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고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을때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굳은 발원으로 인해 우리가 필요에 따라 그 가피를 받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함께 아미타부처님의 협시보살(夾侍, 부처님의 좌우에서 모시는)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방정토 세계의 부처님과 보살님이 머무르는 당신의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세계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마침내 불도를 이루게 하겠다는 원대한 서원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스님들께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로 합장 마무리 지으시는 게 이러한 원력을 성취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서원들을 가만히 읽다보면 몇 가지 특별한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자로서 권능을 발휘하겠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즉, 내가 부처가 되면 그 즉시 모든 중생이 구원될 것이라고 발원하는 보살들은 한 분도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불성을 인정하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은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대명제와 결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그래서, 어떤 구제나 도움을 줄 땐 반드시 조건이 따릅니다. '만약 이름을 외거나, 기억하거나 진심으로 희망한다면....'등등. 즉, 중생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선택'을 해야만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인(因)형성할 때야 응해 줄 수 있는 과(果)형성이 가능하다는 뜻이고 이는 철저한 인과법칙에 따라 만든 구호 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는, 그 구체적 조건들이 더욱 놀라운 것인데, 소리의 세계에 있는 유정이라면 가장 쉽고도 빠른 방법인 명호를 외거나, 만약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일심으로 기도하면 즉시 화현하여 돕겠다것이죠. 세간(世)의 음성(音)을 본다(觀)는 뜻의 '관세음'은 늘 우리 곁에서 완벽하게 대기하며 요청의 소리가 나는 즉시 도움을 주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능엄경에서 보살 25분의 수행 방법 중 문수보살 및 부처님으로부터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일반 중생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은 이근원통(耳根圓通) 법, 즉 소리를 듣는 순간에 실제 듣는 주체를 살펴 자신의 성품을 깨닫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소리 이전의 마음까지 들여다 보아 즉시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아마 미래의 AI (인공지능)기술로도 구현하기 어려운 경이로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3편에서 다룬 내용을 다시 상기해보면 부처님께서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는] 보살행을 설하신 것은 비록 중생의 구제를 위해 이 모든 해법을 만들었지만 보살들이 결코 한 중생도 구제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이치를 드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불보살의 서원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생이 어떤 성취를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 공덕을 남김없이 회향(廻向)하도록 했다는 점이 불교만의 특별하고 멋진 마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에는 과거 성철(性徹) 선사님의 지도로 스님들이 참선에 임하기전 반드시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능엄경 제7권]를 외운다고 합니다. 능엄주(楞嚴呪)와 같은 대부분의 다라니 혹은 주문의 주된 내용은 성인들의 명호 열거와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겠다는 것이며, 모든 성인들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수많은 서원들을 세웠을 것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명호를 부르거나 외면 그 가피력에 의해 보호를 받아, 화두참선 과정에서 일어날수 있는 오십가지 마장(魔障, 깨우침을 얻는데 방해나 장애)에 빠지지 않고 불도를 빠르게 성취할 수 있도록 미리 예방하는 백신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요약하면, 무명의 업식으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이지만 이미 불성의 종자를 갖추고 있기에 무조건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중생 스스로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선택지를 마련한 것이고, 대자대비한 서원으로 인해 다양한 세계를 아우르는 가장 빠르고 보편적인 '즉각적인 구호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게다가, 기도자의 마음에 감응해 반응한 불보살의 구제는 그 마음의 크기만큼만 작동한 뒤 회향되니, 결국 기도자가 스스로를 구제한 것과 같은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서원의 시작과 끝 그 어디에도 '아상(我相)'이 없기에 '타력'의 명제가 성립될 부분은 없다고 보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들이 스스로 타력성을 만들어 낸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는 다음 장에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아무튼 개인적 관점으로는, 이런 특별한 기도와 감응 방법은 마치 등불을 나누어 주더라도 등불의 밝기가 줄어들지 않듯이 어떤 중생들이 보살행과 불도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처럼 마음을 내어 서원하고 구제 후 회향, 그리고 구제 받은 중생들이 다시 보살의 지위에 올라 서원을 하는 형태로 계속 발전하게 되어, 마침내는 모든 중생이 남김없이 스스로 불지에 이를 수 있을것이니 참으로 지혜로운 발명이 아닌가 합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의 기록에 의하면 육조 혜능선사께서는, 우리의 색신(色身, 빛깔과 형상이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몸)은 이미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천백억화신불 (千百億化身佛) 그리고 당래원만보신불(當來圓滿報身佛)을 갖추고 있으니, 자신의 이 삼신불(三身佛)에 귀의하고 모든 세계의 불보살님들의 서원들 가운데 요체만 추려낸 다음의 사흥서원(四弘誓願)을 발원하고, 기억하고 또 간직하도록 했습니다.


[중생이 끝없이 많아도 다 건지오리다. (衆生無邊誓願度, 중생무변서원도)

번뇌가 다함이 없어도 다 끊으오리다. (煩惱無盡誓願斷, 번뇌무진서원단)

법문이 한량없이 많아도 다 배우오리다. (法門無量誓願學, 법문무량서원학)

불도가 위없이 높아도 꼭 이루오리다. (佛道無上誓願成, 불도무상서원성)]


그리고,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함이 무너지면 그에 상응해서 발생했던 육계가 사라지며 즉시 머물던 그 자리에 극락세계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사후세계를 염원하지 말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자성을 밝히는데 힘쓰라는 강력한 메세지인 것이겠죠.  


그렇다면, 아마도 최고의 기도는,


[지금 바로 자성을 밝힐 수 있도록 일념이 지속되게 해주십시오.]


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약 어떤 불보살님이 딱 한 가지 기도를 성취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면,

어떤 기도를 하고 싶으신가요?


아! 질문을 취소합니다. 죄송합니다.

일단,

제가 바라는게 너무 많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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