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은쟁반에 흰 눈이 소복이
나란히 걷는 선불교
'부모에게 나기 전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父母未生前, 부모미생전 本來眞面目, 본래참모습)'
나기 전? 참모습?
무슨 얘기지?
이처럼 도대체가 그 낙처(落處 물이 떨어지는 자리, 본래의도)를 알 수 없는 당혹스러운 질문. 이성적이고 지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선사님들의 수수께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특이한 질문 즉 [화두, 話頭- 말 혹은 언어 이전의 것]를 철저하게 타파해 그 답을 알아내기만 하면 자신의 본성에 바로 이른다는 이 독특한 방법이 바로 불교의 다른 많은 수행법과 차별되는 선불교만의 일미(一味, 으뜸가는 맛)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기하죠?
게다가, 여러 종류의 화두 가운데 최상승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그 순간 바로 즉시 부처의 지위에 오른다 (一超直入如來地, 일초직입여래지)는 매우 파격적인 기치를 내세운 이 돈오(頓悟, 즉시 깨달음-바로 진리의 문에 들어섬) 법은 많은 불교 수행자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섰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오랜 시간의 수행으로 점차 닦아나가 여덟 가지의 바른길 (팔정도, 올바르게 보고(正見)· 생각하고(正思)· 말하고(正語)· 업을 지어나가고 (正業)· 생활하고(正命)· 깨어있고(正念)·정진하며 (正精進) 바른 선정(正定)을 성취하고서야 마침내 부처님의 지위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후퇴하거나 멈추지 않고 끊임없는 수행으로 조금씩 나아가서, 아라한 및 보살 등의 여러 가지 높은 단계를 점차 거쳐 마침내 부처님에 이르는데, 여기까지는 수억 년 혹은 몇 겁의 세월이 걸린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 수수께끼 같은 질문 하나만 잘 풀면 즉시 부처님의 지위에 이를 수 있다? 쉽게 믿기지 않았겠지만, 그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나를 찾아 혹은 진리를 찾아 헤매는 불교 수행자들에는 엄청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간화선(看話禪, 언어 및 행동 등 선사들이 남긴 질문 속 본질을 꿰뚫어 보다) 법은, 중국의 송대에 임제종(臨濟宗)의 전통을 이은 대혜종고 (大慧宗 , 1089~1163) 선사가 제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종(禪宗)에서 설명하는 간화선의 역사적 원류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2대 조사인 마하가섭 존자 사이에 벌어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이심전심(以心傳心) 법에서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이 올린 우담바라 꽃을 말없이 대중에게 보이셨습니다. 대중들이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가섭존자만이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신 뜻을 알고는 빙긋이 웃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선언하시길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을 가섭에게 부치노라”]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잘 알려진 마하가섭 존자의 이 화답으로 인해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존자를 공식적인 법게승자로서 인정하는 최초의 심인법(心印法)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상황이 간화선법의 최초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심전심 이벤트가 발생하기 전 마하가섭존자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떤 상태였길래 부처님께서 들어 올린 꽃을 보는 순간 미소를 지었을까?'
추측해 보면, 마하가섭 존자는 부처님이 대중들에게 꽃을 들어 올려 보이는 그 순간까지도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어떤 결정적인 문제 즉 화두 같은 질문의 벽에 막혀 오랜 시간 동안 그 의문을 해결하려고 엄청난 몰입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부처님과의 문답 과정 중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어떤 구절에 강한 의문이 들었겠지요?
그러다가 점점 그 의문을 풀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한 가지 생각만이 남아 지속되는 일념삼매의 상태에 이르게 했고 이제 깨달음의 문 안쪽으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둔 단계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를 간파하고 계시던 부처님이 일부러 들어 보이는 꽃을 보는 그 순간,
그 질문이 해결됨과 동시에 마하가섭 존자는 즉시 자신의 참 성품이 드러나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였고 개인적 상상으로는 아마도 미소가 아니라 크게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춤을 췄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 명의 부처님의 탄생을 위한 스승의 자비행.
[줄탁동시 (啐啄同時)],
알속의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한 지점을 열심히 쪼고 있을 때 어미 닭이 그곳을 탁 쪼아 병아리가 세상의 빛을 맞이하게 하는 그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가끔 신문 등 매체에는 어떤 사건의 발생이 동시에 일어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쓰이지만 선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벌어진 이 찬란하게 아름답고 극적인 장면을 비유하기 위해 종종 인용되곤 합니다.
[직지]에는 이런 귀한 순간의 스냅숏들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치, 트리나 폴러스 작가님의 어른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주인공 애벌레가 스스로 만든 고치를 막 벗어나 호랑나비가 되어 곁에서 기다려 준 노랑나비 친구와 함께 훨훨 날아가는 장면을 엿보는 듯하여, 저에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장면보다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직지]는 인류 역사상 만들어 진 책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또 재밌는 것은, 부처님께서 당시 마하가섭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독특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해운정사에 주석하고 계시는 제79대 조사이신 진제선사님께서는 설법을 하시기전에 항상 조용히 좌정하고 계시다가 주장자를 이마까지 들어 올려 대중들에게 보여주시고는 탁하고 책상 위를 치고는 내려놓거나 어깨에 걸치시는데, 왠지 이 주장자를 비껴 들어 올리시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치 부처님 당시의 연꽃을 들어 보인것을 오마쥬 혹은 재현하신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유튜브에 진제스님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설법하신 동영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종종 다른 스님들도 주장자를 올리시는 장면을 볼 수 있지만 그 위풍당당함이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미 세수 90을 바라보시는 지금도 선사님께서는 제2의 마하가섭과 같은 제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지금껏 그랬듯이, 아마도 절대로 함부로 주장자를 넘겨주지 않으실 겁니다. 반드시 먼저 깨달은 스승으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받아 법을 계승하는 이 인증(印證)의 가풍(家風)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직지 LIVE라고 하면서 직지심경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꼭 대를 이을 선사님께서 출현하시길...
선종 역사를 보면 인도에서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넘어가 이조 혜가(慧可, 487~593), 삼조 승찬(僧璨,?~606) 대사에 이르기까지는 당시 ‘선(禪)’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고 기복과 교학, 율학 전통이 불교계에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는, 시절인연에 따라 만난 제자에게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전해 인증의 징표로 삼았습니다.
이후, 사조 도신(道信, 580~651) 대사의 지도하에 약 오백인 그리고 오조 홍인(弘忍, 601~675) 대사에 이르러 늘 천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하니, 법을 이어 받은 정통계승자의 징표인 그 가사와 발우를 받고 싶어 하는 이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단순히, 자성을 밝히는 데만 오롯이 일생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도(道)에 이르지 못했으면서 그저 'XX대 선사' 칭호와 '계승자'라는 지위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깨달음의 문안에 들어온 이가 아니면 절대 법을 전해주지 않는다는 대원칙 덕분에 오늘날까지 그 소중한 법맥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꾼으로서 평생 글을 읽지 못한 육조 혜능선사께서 스승으로부터 한밤중 몰래 인가를 받고 이를 인정치 못한 스님들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십 육년간 사냥꾼들 사이에서 지내며 시절 인연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다 법을 펼치신 덕에 우리나라 불교 최고 종파인 조계종이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 늘 시기 질투와 살생의 위협이 도사리는 현실세계 속에서 귀중한 보석을 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는 마음도 들고, 실제 선종 역사속 선사들의 열반 전후의 상황들을 살펴보면 그 중 몇 분은 비장하다고 할만큼 현실의 냉혹한 면을 엿볼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선사님들의 메세지들은 있겠지만 말입니다.
일전에 진제선사님을 찾아뵙고 작은 시민으로서 나라의 앞날과 저 자신의 길을 찾으며 궁금했던 방향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생명을 헤치지 않고 약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하시면서, 운문 삼전어(雲門三轉語)로 유명한 화두를 화제로 삼고 과학자로서 연구하는 틈틈이 풀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당나라 말 운문종을 제창한 운문(雲門) 선사와 파릉(巴陵) 선사의 문답인데, 이 답변을 통해 파릉선사는 운문 선사의 법제자로 인가를 받게 됩니다.
문] 어떠한 것이 진리의 도인가?
답] 눈 밝은 이가 깊은 우물에 떨어졌습니다.
문]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인가?
답] 은쟁반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문] 어떠한 것이 진리의 보배칼**인가?
답] 산호나무 가지가지에 밝은 달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종종 진제선사님께서는 이 문제들의 참뜻을 아는 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이 글을 보신 분들 한번 도전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저는 가끔, 아주 가끔 떠오릅니다.
은쟁반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빙수가..
* 제바종 (提婆宗): 제바 존자의 종지를 중심으로 한 대승 반야사상의 불교교단. 인도에는 96종의 다양한 사상가들이 서로 자기들의 종교가 최고라고 주장하여 혼란스러운 시절이 있었는데 이때의 국왕이 모든 종교의 대표들을 모아 논쟁을 시켜 최종 승자의 종교로 통일하기로 했다, 이때, 부처님 심인법 제14조 용수보살의 법을 이은 가나제바 존자가 이 자리에 참석해 뛰어난 지혜와 방편으로 96종의 외도들을 모두 조복(調伏) 받았다. 그래서 왕이 오직 가나제바 존자의 법(法)만을 남겨두어 그 종지(宗旨)가 인도전역에서 크게 떨쳤다고 한다.
**취모검(吹毛劍)이라고도 하며, 칼날 위에 솜털이나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로 고대의 명검을 비유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