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든라이언 Dec 10. 2023

8. 초발심, 깨달음의 연결고리

나란히 걷는 선불교

맞습니다.

오랜 세월 쌓인 두터운 업의 층층 구름을 뚫고 자신의 빛나는 태양 같은 본성에 이르는 길이 쉽진 않겠죠.


하지만,

너무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희소식은,

"불도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초발심(初發心)]만 굳게 세운다면 개인마다 시공간의 흐름과 시절 인연이 도래하는 속도가 차이 나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룬다는 것입니다. 꿈속에서야 시공간적인 차별이 있겠지만 꿈을 깨는 즉시, 꿈속에서 지내온 모든 시공간들은 무의미합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스스로 만든 무명업식(無明業識)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의 고통 속에 머물러 있다 보니 마음의고향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이 저마다 불성의 종자를 가지고 있다"는 선언을 해주신 덕에 이제 다시 마음의 고향과의 소통 채널을 다시 오픈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연결고리가 바로 [초발심]인 것입니다.


'나도 불성을 갖추고 있으며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진실한 큰 믿음을 내는 그 순간, 무구한 세월 연락 두절이었던 마음의 고향에 SOS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당연히 고향 땅에서도 응답이 올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이 무명(無名)을 깨뜨리고야 말겠다는 마음의 발로로 발현되고 이것이 '인(因), 원인'이 되어 결국엔 부처의 '과(果), 결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사흥서원의 불도무상서원성 (佛道無上誓願成, 위없는 최상의 불도를 마침내 이루겠다)의 맹세는 앞의 세가지 서원이 더해서 궁극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불과인 (佛果因)'의 에너지를 형성합니다.


이는, 화엄경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라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의 원리에 입각해보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명도 우리의 한 생각의 어긋남으로 시작되었으니 되돌아가는 것도 한 생각으로 모아 되돌아 갈 것인데, 돌아갈 곳을 까마득히 잊어 고향을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목적지를 지정하고 네비게이션을 켤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점 두개가 하나의 선을 만들 듯이 마음의 고향으로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 후에 열심히 정진하면 반드시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신라시대 고승 의상조사에 의해 지어진 ‘법성게(法性偈)’ 제15구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한 순간 바로 정각을 이룬다"라는 구절은 이 초발심의 중요성과 의의를 가장 간명하고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음의 고향으로 어떻게 어떤 길로 돌아갈 것인가입니다.


화두 참선은 꿈을 깨고 마음의 고향에 달려갈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에 가장 수승한(뛰어난)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이죠. 단, 가이드로 제시한 길을 잘 따른다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이게 어려운 것이고 바로 여기서부터가 신중하고 차분히 '생각을 다스리는 수행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지점입니다.


앞의 몇 개의 글들을 통해, 이제 '화두'라는 특별한 참선 수행법에는 일반적인 지식이나, 이해 혹은 분별심으로는 절대 그 답을 알아낼 수 없도록 철저하게 고안된 비밀스러운 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마치 어떤 이가 밝고 환한 거실에서 꿈꾸며 잠들어 있는데 깨어 있는 그의 친구가 꿈속에 있는 그와 대화가 가능하여 실내의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맞춰보라는 질문을 하면, 그가 꿈속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거실을 볼 수 없으니 거실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자신의 몸 바로 옆의 물건조차도 맞힐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잠들어 있는 이가 꿈에서 깨고 눈을 뜨면 저절로 밝은 거실에 놓여 있는 가지각색의 물건들 위치를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참 성품에 이른(견성見性, 깨달음) 순간에서야 화두에 대한 정답이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있는 이 독특한 게임의 법칙이 '화두 참선'의 핵심 근본이자 다른 수행법과 차별되는 뛰어난 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는 거짓으로도 맞힐 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지금까지 약 천 칠백개의 화두가 전해져오고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각도와 깊이가 서로 다른 다양한 문제를 통해 꿈속에서 우연히라도 맞힐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정밀하게 가려내어 수행자의 상태와 수준을 철저하게 점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시험하는 것이 마치 관공서(官公署)의 문서와같이 엄격하다고 해서 '공안(公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러한 점검을 하는 과정 혹은 선승들 사이의 진리 실상에 대한 대화를 '선문답 (禪問答)'이라고 합니다. 그냥, 일반인은 못 알아듣는 것이죠. 그레서, 저는 이러한 선문답을 이해하려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틀릴 테니까요. 시간과 수고를 낭비할 뿐입니다. 선문답을 흉내 내어 마치 진리에 이른 특별한 사람인 듯이 표현하더라도 나와 남을 기만하는 죄업만 더해가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다만, 초발심을 굳건히 하고

간간히 '은쟁반 위에...?'하고

화두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선언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저는 "천상천하 you are 독존"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다소 말장난 같지만, 부처님에게는 아상이 없으므로 너와 나를 구분하는 '나 아(我)'자로서의 해석은 무의미합니다. 천상과 천하 그리고 홀로 높다는 것도 지극히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표현이어서 직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여지며 "오직 우리 모두가 가진 불성만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중생근본불성(衆生根本佛性), 절대평등(絕對平等)]에 대한 대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온 우주 법계를 채우는 것은 우리 마음의 본성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불성이 있음을 믿고 

불도를 반드시 이루어

부처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가실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6. 기도, 너의 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