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反省, reflection]
사전적 의미: 자기 언행의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깨닫기 위해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일. 철학적으로는, 의식 작용을 자기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참, 요즘 따라 반성과 새로운 다짐을 할 일이 넘쳐납니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철드는 게 이렇게 힘든가 봅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초심을 돌이켜 보게 되고 더욱 신중하게 글을 적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어린 시절 부모님께 잘못하고 뉘우치고 반성하며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과 약속을 합니다. 교육의 한 과정이죠. 이후,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꼭 누군가에게가 아니더라도 어떤 마음 불편한 경험을 한 후에는 자기 스스로 반성과 다짐하곤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힌 뉘우침과 반성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회의 법과 질서의 테두리 속에서 규칙을 배우고 지키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거나 조직이나 국가에 공헌할 힘을 기르도록 해주고 혹은 보다 건설적으로 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런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반성은 경우에 따라 개과천선과 인류애의 길을 열어, 조금 더 지혜롭게 삶을 영위하는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러한 사회 교육학적 반성은 현생의 삶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성'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일상에서도 자주 듣기 때문에 익숙한 불교의
[참회懺悔]
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다면,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각 글자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懺)-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
회(悔)-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
그럼, 선가(禪家)에서는 어떤 것을 참회라고 하는지 육조 혜능 선사님의 가르침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육조단경 참회(懺悔) 편 -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에게 '무상참회(無相懺悔)'를 주어서 삼세(三世)의 죄장(罪障)을 없애게 하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우치와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날의 나쁜 행동을 일시에 영원히 끊어서 자기의 성품에서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懺悔) 니라.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고 지난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라.... 중략..."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음이라 하면, 육조 스님께서 강조하신 무념, 무상, 무주를 근본으로 하여 걸림 없는 마음으로 올바른 지혜를 갖추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조금 다른 표현으로 옮겨보면,
"무명으로 인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어 지은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앞으로 잘못을 짓지 않겠습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생각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고 지난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겠습니다."
정도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직, 무엇이 경이로운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보통 우리나라 사찰의 '대적광전(大寂光殿)'에는 세 분의 부처님 상 즉 삼신불(三身佛)이 봉안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방정토 아미타불과 동방정토 약사여래불이 함께 모셔진 곳도 있습니다).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 그리고,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화엄종 맥을 잇는 사찰은 아미타불)인데, 이러한 배치를 의미상으로 해석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정법신불- 본래의 밝은 자성
천백억화신불- 현재, 머무름 없이 드러남
원만보신불- 미래의 밝은 생각
이 삼신(三身)에 대해 육조 선사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중략....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바로 화신이요, 생각마다 착한 것이 바로 보신이며,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닦음이 바로 귀의(歸依)라 이름하나니,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이므로 귀의할 곳이 아니며 다만 삼신(三身)을 깨달으면 바로 큰 뜻을 아느니라....]
즉, 우리가 위대한 성인으로 존경하는 삼신불의 본질은 바로 우리의 본래 자성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외형 (색신과 차별성)에 경외심을 두고 누군가 구제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이미 모든 완전함을 갖추었음을 깨달아 마음을 즉시 돌이켜 자신의 성품에 귀의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스스로 기록한 모든 집착의 덩어리들을 자신의 청정법신불이 비추는 큰 빛의 세계에 던져 넣어 단번에 소멸시키고, 머무르지 않는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화신불의 행을 하면서 과거를 돌이키지 않고 항상 밝은 미래의 선한 지혜만을 갖춘 원만보신불행을 추구하는 것을 [참회]라고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성이 현실 세계에서의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사건에 대한 회복성을 가져다주는 처방 약이라면, 참회는 기억할 수도 없는 수많은 생애를 마음의 근원으로 회귀시켜 삼세의 병을 즉시 치료하여 앞으로 그 약조차 필요 없는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경이로운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니까요.
이제, 제2장 일곱 부처님의 메시지 중 시기불尸棄佛 부처님의 게송,
모든 착한 법 일으키는 것도 본래 환술이요,
온갖 악업 짓는 것 또한 환술이네.
몸은 물거품과 같고 마음은 바람과도 같으니
환술로 생겨난 것에는 근본도 실상도 없네.
이 의미하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지, 단박에 무념을 성취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하심(下心)과 연결되어 있는 절 (108배 내지는 삼천배)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며 법신진언(비로자나불)과 능엄주 기반 아비라 참회 기도를 하거나 혹은 법신 비로자나불의 정수라고 알려진 '광명진언'을 외면서, 점진적인 참회를 합니다. 어둠에 가려졌던 등불을 조금씩 밝혀나갑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법조차 급할 때 쓰는 처방약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여기에만 집착하면 결국엔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더욱 본질을 향해야 합니다. 아니, 본성을 향해서 갈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한 최상의 방편으로서 수용하되 반드시 자성을 찾아 들어가는 경절문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사님들은
마음의 본성으로 직행하는
'화두참선'을 통해
가장 빠르고 다시없는 [참회]를 성취할 수 있도록
가이드하시는 것입니다.
잠을 깬 자 만이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