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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Dec 24. 2023

11. 선종의 나침반, 육조단경

나란히 걷는 선불교

'와, 대단하시구나!'


저는 요즘 여전히 화두 참선 수행보다는 일상에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걱정에 대부분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러다 밤 중에 가끔 책, 혹은 폰으로 선사님들의 행장들을 찾아보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대한 간접 희열과 경외심을 품고는 바로 잠이 듭니다. 선사님들의 귀하고 고준한 선문답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이리저리 살펴봐도, 지금까지 설명해 드린 것처럼 역시나 저의 알음알이나 지식으로 닿을 곳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은쟁반..' 참, 마음먹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아직 미래의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차고 넘쳐서 [전 생애를 걸고 화두에 덤비는 결기]를 끌어올린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가끔 해운정사에서 보내주는 진제스님의 경책 메시지를 볼 때 덜컥 이런 맘을 들킨 것 같아 슬며시 외면해 보기도 합니다.     


벌써, 11번째 장이네요.


그간 무분별하게 어렴풋이나마 이해했던 내용들도 정리해 보고, 불교 입문에 고민하고 계시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열 번째 글을 쓰고 있자니 오히려 읽는 분의 마음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하고 있진 않은지 점점 걱정도 밀려듭니다. 게다가,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잘 모르는 한자들을 복붙 하다 보니 마치 한문에 조예가 있는 듯이 보일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저의 이해 부족으로 인해, 자칫 어렵고 틀리게 적힌 내용들이 있다면 다른 추가적인 정보들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하시길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불도를 완성할 마지막 순간까지 지녀야 할 겸손, 하심(下心), 반성과 참회의 마음가짐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번 더 되새기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경전을 읽다 보면 SF 소설 못지않게 상상을 자극하는 다양한 종류의 중생, 보살 그리고 부처님들 그리고 엄청난 세계관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선사님의 일대기를 접할 때면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는 실천의 다짐을 할 때도 있지만, 마치 동화책 주인공의 역경 스토리를 보는 것처럼 그 자체로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놀랍고 경외심이 드는 얘기들이 많으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저를 사로잡는 책, 마치 옛날 즐겨 읽었던 김용 작가님의 무협지 영웅문의 느낌!

바로, 육조 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님의 역전 드라마를 담은 육조단경 (六祖壇經)입니다.


육조단경은 석가모니 이래 33대 조사이자 중국 선불교 6대 조사이신 혜능선사의 전법 과정과 설법을 제자 중 상좌인 법해(法海) 스님이 모으고 도제(道漈)와 오진(悟眞) 스님에게 잇달아 전수된 것을 훗날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 스님이 책으로 편찬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경(壇經)의 '단壇'은 '계단戒壇'을 의미하므로 부처님의 지위에 오르는 방법에 대한 육조선사의 어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혜능선사는 글을 읽지 못하는 가난한 나무꾼 신분을 뛰어넘어, 스승 오조홍인 선사(五祖弘忍: 601~674) 언하에 깨달음을 얻고 전법을 부촉받는 (법을 전하는 계승자임을 인가받음) 드라마를 전개하고 기존 불교의 점차적 수행법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돈오(頓悟, 즉시 깨달음 혹은 깨닫는 즉시 불성을 이룸)사상을 제창한 남종선(南宗禪)의 개조이자,  훗날 운문(雲門)종, 법안(法眼)종, 조동(曹洞)종, 임제(臨濟)종, 위앙(潙仰)종 등의 선종 5가(家)로 이어져 선종의 종취를 드날릴 수 있게 한 주인공입니다.


앞서 [5장 은쟁반에 흰 눈이 소복이] 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2대 조사인 마하가섭 존자 사이에 벌어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이심전심(以心傳心) 법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다가 중국에 이르러서는 바로 혜능 선사로 말미암아 활짝 꽃 피게 된 것입니다.


이를 예견한 중국 선불교 초조인 달마(達磨)선사는 법제자 혜가선사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계를 남깁니다.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하여 미혹함을 깨치게 하려 함이다.

한 송이 꽃에서 다섯 잎이 피고

그 열매가 맺어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일반적인 견해로는, 초조 달마선사를 포함한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및 5조 홍인 등  다섯 선사님을 거쳐 혜능 선사에게 이러러 중국 땅에 선종이 크게 일어날 것을 표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혜능 선사님 이후로는 부처님 때부터 전법제자를 증명하는 '부처님께서 입고 계시다가 마하가섭 존자에게 넘겨준 가사'도 더 이상 전하지 않는데 육조단경 말미에 혜능선사가 이에 대해 이 달마선사의 게송에 의거한다고 직접 설명하신 부분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혜능 선사를 비롯한 그 이전의 역대 조사님들은 이 전법 계승자의 징표를 차지하기 위한 삿된 무리들로부터 늘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혜능 선사 이후로 수많은 선사들이 배출되어 서로 증명과 교차검증 등이 가능하므로 더 이상 '의발전수'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튼, 대한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조계曹溪]라는 명칭이 혜능선사가 당나라의 조계(曹溪)산에 머물며 법을 펼쳤기 때문에 붙여진 별호를 그대로 차용한 것임을 감안하면, 육조단경은 인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선종(禪宗)의 정수를 알고 싶은 분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참선을 하는 스님들을 지도하는 선원의 교과과정에는 소의(所依, 의지하다)경전(조계종의 종지를 잘 드러낸 대표 경전)인 금강경(金剛經)과 함께 대표적인 전등법어(傳燈法語, 조사어록  및 설법)에 이 육조단경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79대 조사이신 진제선사님도 일반인 초기 불자 입문자는,

- 지장경(地藏經):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어떻게 하여 지옥(地獄)에서 고통받는 중생(衆生)을 구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스토리

- 선가귀감 (禪家龜鑑): 조선시대 승려 휴정이 당시 불교계의 선교(禪敎)의 각 정수를 정리

- 그리고 육조단경


의 순서로 공부하는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 백문백답 참조)


개인적으로는 여러 유통본 중, 성철(性徹)스님 (1912~1993)법어집 2집 1권에 해당하는 [돈황본 (敦煌本)육조단경]을 추천드립니다.


천 년 동안 돈황석굴에 비장 되어있다 근래에 발굴되었기 때문에 육조선사의 사상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인정되며, 그래서 한국 근대 선종사의 가장 위대한 스승 중 한 분이신 성철선사님께서 직접 번역하시며 기존의 역서들과의 내용도 비교 분석 해두신 한글 번역본이기 때문에 매우 귀한 번역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금강경의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낸다'의 구절에 이르러 두 번에 걸쳐서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혜능선사가 오조선사로부터 법을 이어받는 경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나무꾼이었던 혜능이 손님의 숙소에 땔감을 가져다주다가 한 손님의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낸다'를 읊는 것을 듣고 문득 마음이 밝아졌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육조단경에는 그 이전의 혜능선사의 행적이나 마음의 변화 등이 서술되어 있지 않았지만, 지극한 개인적 상상으로는 노모를 모시기 위해 나무를 해서 땔감을 내다 팔 정도로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평소 어떤 화두와도 같은 스스로의 질문으로 일념이 지속되는 과정에 도달하신 게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지를 비롯한 많은 선사님의 전법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화두와 같은 큰 의문에 몰두해 그 일념이 지속되는 가운데 어떤 기연을 접하고 홀연히 깨치면서 그 의문이 해결되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상황이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두세 번에 걸쳐 마침내 최고 경지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앞서 들은 금강경으로 인해 이미 한 번 마음이 밝아진 혜능선사님도 훗날 남몰래 밤에 부른 홍인선사님이 '금강경'을 설하신 것을 듣고 크게 깨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혜능선사는 열반에 이르기까지 문자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단경에도 그 장면이 나옵니다.


[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法達)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워 칠 년이 되었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正法之處)를 알지 못하더니,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큰스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심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은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 자체는 의심이 없거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네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른 정(正定)이 곧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다.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다. 너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으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니라.”

법달이 경을 가지고 와서 대사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었다.

육조스님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아셨고 이내 법달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명하시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널리 삼승(三乘)을 말씀하심은 다만 세상의 근기가 둔한 사람을 위함이다. 경 가운데서 분명히 ‘다른 승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 불승(佛乘)뿐이라’고 하셨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 중략 -]


'인간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언어나 문자로는 진리를 담을 수 없고 스스로 돌이켜 참성품을 보는 것만이 바르게 이르는 길이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는 듯 한 혜능선사의  그 높은 원력과 놀라운 실행력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장에서 후대 원오극근 선사가 '혜능선사는 본래 80 생을 선지식으로 지내셨다'고 밝혔듯이 선사의 가르침은 정말 [직지直指] 다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많은 분들이 불도의 길에 입문하거나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육조단경'


시간 내어,

한번 읽어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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