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든라이언 Dec 29. 2023

12. 어둠을 밝히는 비유

나란히 걷는 선불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중-


길을 찾는 이들에게는 매우 깊은 울림이 있는,

너무도 유명한 구절.


언어를 배우는 누구라도 [비유]를 쓸 수 있지만, 설명 혹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의 이해 정도의 넓이와 그 깊이에 따라 인용하는 소재와, 이야기 전개 그리고 찰떡같은 표현력은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경전을 읽다 보면 '삼계화택(三界火宅,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속의 삼독(三毒)에 머무르는 한 이 세계는 불타는 집과 같다)'의 표현처럼 오온의 경계에 갇힌 범부 중생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비유 들을 마주할 때마다 정말 놀랍고 자연스레 감탄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심오한 법문을 말씀하실 때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듣는 이들이 일상에서 체득하거나 혹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상황으로 비유를 들어 법문의 본뜻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늘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 45년이라는 긴 세월의 목표 지점은 오로지 우리 중생의 어두운 무명을 부수어 저절로 불성을 밝히는 것.


즉,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절대평등사상을 근간으로, 누구라도 수용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 그릇의 크기에 따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지혜의 빛으로 자기를 비추어 보는 것 (회광반조, 廻光返照)'을 증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이후 후세인들에 의해 문자의 가감이 있을지언정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처님 가르침의 향기가 흩어지지 않고 은은히 이어져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특히, 부처님께서 사용하시는 비유법에는 우리 중생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근기에 따른 차별적인 이해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제각기 그릇의 크기만큼 가득 담아 갈 수 있는 고객 맞춤형 장치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달이나 태양의 빛은, 사람들 위로 평등하게 비친다.

덕 있는 이에게도, 악한 이에게도, 빛은 많고 적음이 없이 비친다.

여래의 지혜의 빛도, 태양이나 달처럼 평등하게 비치며

모든 중생들을 인도한다.

그 지혜의 빛은 모자라거나 남는 일이 없다.


마치 도공이 같은 흙으로 토기를 만들지만, 그 토기는

설탕 · 우유 · 버터 · 기름 · 물 등 여러 가지 용기가 되는 것처럼.

어떤 것은 더러운 것을 담는 그릇이 되고, 어떤 것은 우유그릇이 되지만

도공은 그 그릇들을, 똑같은 흙으로 만든다.

어떤 것을 담아 두는가에 따라 용기가 달라진다.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_법화경  제5장 약초유품(藥草喩品) 중-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대를 이어 법을 전하는 선사님들 또한 적절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설명하거나 가르칩니다.  육조단경 (성철스님 법어집 2집 1권 돈황본) 중 식심견성(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 편에 육조스님의 설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 만법이 다 자기의 성품 가운데 있으니, 모든 법이 다 자기의 성품에 있어서 자기의 성품은 항상 청정하니라.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여서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 일월성신(日月星辰, 해, 달과 많은 별들)을 뚜렷하게 보지 못하다가, 문득 지혜의 바람이 불어와서 구름과 안개를 말끔히 거두어 버리면 온갖 것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리라.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청정함도 마치 깨끗한 하늘과 같으며 혜(慧)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아 지혜(智慧)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서 자기의 성품이 밝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참다운 법을 열어주시는 선지식을 만나 미망을 없애버리면 내외명철(內外明徹, 안과 밖이 사무쳐 밝음)하여 자기의 성품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 일체법에 자제하나니, 청정법신이라 이름하느니라"


저 해, 달, 구름과 바람의 표현은 우리의 본성과 무명 그리고 지혜를 매우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낸 비유입니다. 저는 늘 이 비유를 기억하며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나의 해와 달.


혜능선사님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하면 어떤 존경의 대상으로서의 미지의 부처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혜능선사님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뿐만 아니라 비로자나불의 지위는 잡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청정한 성품의 다른 이름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는 파격 선언을 하셨기 때문에 당시에 듣는 많은 이들이 이전에 들어본 적 없다고 하며 매우 놀라워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참다운 법을 열어주시는 선지식]의 비유적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는 선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식 중에 한 분으로 꼽히는 마조(馬祖)선사의 일화입니다.


[...중략...당(唐) 개원(開院: 713-742) 연중에 (형嶽)의 전법원(戰法院)에서 선

정을 닦던 중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스님을 만났는데, 회양스님은 마조스님

의 근기를 알아보고는 물으셨다.


  "스님은 좌선하여 무얼 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들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소수레에 멍에를 채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


비유가 참 멋지죠? 우리도 흔히 참선이라 하면 뭔가 조용한 곳을 찾아 머무르며 앉아서 명상하는 모습을 떠울리는데 회양선사님은 이를 경책함과 동시에 집중력이 높은 제자로 하여금 즉시 목표지점을 마음의 본질로 수정할 수 있도록 알려주신 것입니다. 남악회양선사는 육조 혜능선사의 법제자 입니다. 저 문답 후에 이어진 회양선사님의 결정적인 가르침과 게송을 듣고 마조선사는 마침내 크게 깨쳤다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이미 달마 대사의 스승이신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께서 달마대사에게, "네 밑으로 7대(代)의 아손(兒孫)에 이르러 한 망아지가 출현하여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일 것이다."라고 이미 예언하셨다고 합니다. 반야다라존자의 천하사람을 밟아죽인다는 표현은 '무명을 부수는 장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마조스님은 선종 역사상 가장 많은 법제자를 길러냈는데, 깨달은 제자가 84명. 혹은139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저는 가끔 선사님들 사이에는 은밀한 예언들이 이어져 내려오는 내용이 뭘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호기심이란...


'한 개의 달빛이 천개의 강을 비춘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철저한 유교 중심사상이었던 세종대왕이 마음을 돌이켜 부처님의 생에를 찬탄하는 580여 개의 영웅서사시를 바친 대전환 드라마의 제목도 바로 이런 어둠을 밝히는 비유의 맛을 잘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른,

지혜의 바람을 일으킬 용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저도 멋진 비유 하나

남겨보고 싶네요.

이전 11화 11. 선종의 나침반, 육조단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