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든라이언 Jan 07. 2024

14.  태양을 향해 쏘는, 일념

나란히 걷는 선불교

     만약 우주탐사에 참여한다면 저는 새로운 행성에 연꽃이 있는지부터 확인할 것입니다. 그곳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고, 수준 높은 정신세계를 갖춘 외계인들이 있을 테니까요. 초고도로 발달한 과학을 소유한 외계인들이라 하더라도 나고 죽는 것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생명체의 흔적, 지구와 비슷한 행성, 달과 화성 탐사 등 호기심 가득한 우주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 자성을 찾아 자유로운 경계에 들지 못하면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지구의 삶보다 나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름다운 연꽃들이 만발하는 푸른 지구가 좋습니다. 여기서, 우리 모두 함께 찾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앞의 장에서는 빈틈없는 정밀한 한 생각 즉 화두에 대한 의심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 참선의 기본 원리임을 살펴봤습니다. 결국, 수만 갈래로 흩어졌던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일념一念]으로 만들고 이 일념이 지속해서 어떤 임계치에 도달하면 저절로 폭발하듯 화두가 타파되면서 참 성품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제2장. 일곱 부처님의 메시지 https://brunch.co.kr/@85c4e197ddf84b8/201의 게송들과 유식사상을 참고해서 원리를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제8 아뢰야식 위에 형성된 윤회 유전의 종자는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과거로부터 생성된 수많은 탐(貪), 진(瞋), 치(痴)와 같은 잘못된 생각들 그리고 인과와 연기법에 따라 유전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뒤따라 생성되고 얽힌 생각들이 점점 중첩됩니다. 여러 생을 거치면서 점점 씨줄 날줄에 의해 직조된 천들이 계속 쌓여가듯이 업장이 점점 두터워지며 장마철 먹구름처럼 무명업식종자는 계속 머무르며 유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탐내는 것은 그 물건이나 사람 등이 늘 있다는 착각에서 발생하고, 화내는 것 또한 늘 있어야 할 무언가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긴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모든 것이 '어리석음' 그러니까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못된 이해는 육근 (눈·귀·코·혀·피부·뜻)이 육진(색깔·소리·냄새·맛·감각·법法) 경계를 인식하면서 좋고, 나쁘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생각들이 형성되면서부터 (6 × 6 × 3 = 108) 시작된다고 합니다.


결국 이 잘못된 생각들이 번뇌들을 하나씩 만들고 누적되는데 이는 마치 한겨울 차가운 땅 위의 눈처럼 점점 쌓여가고 그중 일부는 뭉쳐져 빚어진 단단한 눈사람 혹은 얼음덩어리가 되어서 오랜 시간 머무름으로 인해 마치 본래 존재하고 있던 것처럼 착각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묘사되는 중생이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상(想) 즉, 어떤 고정된'나'라는 생각(아상, 我想), 다른 종과 차별이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인상, 人相- 이것이 동물실험을 해도 된다는 슬픈 결과를 가져온 것이겠죠), 사실은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무리가 있다는 생각(중생상, 衆生相)그리고 오래산다는 생각 혹은 영원한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수자상, 壽者相)등으로 점점 더 견고한 형태로 굳어져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명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인간 집단끼리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는 것도 공업(共業)의 결과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 상을 가진 중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는 유한한 삶 속에서 다시 108가지 번뇌들이 제각각 더하고 곱해져서 더 크고 깊은 오해들의 새로운 조합을 생성하고 업식종자는 점점 성장하며 확대되어 결국 크고 작은 8만4천 가지의 번뇌들을 형성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 날아오른 종이비행기가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멀리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것처럼, 환상 위에 만들어진 신기루들로 인해 다시 착각을 일으켜 새로운 잘못된 생각을 만들고 결국 또 다른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반복됩니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 글과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생각마저 그릇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무튼, 결국 점점 커지고 단단하게 되는 업연의 종자는 위로는 두터운 구름을 형성해서 태양을 가리고 아래로는 얼음덩어리로 뭉쳐진 얼음 왕국과 이를 지키는 마왕의 세계(본성으로 향하는 마음을 방해하는 것)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양,

우리 자신의 태양을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항상 빛나고 있는.


절대 반지를 하늘에 던져올릴 수는 없으니, 근본 자성인 태양을 바로 볼 수 있는 정견(正見, 바로 보는 것)을 갖추고 지혜의 바람을 일으켜 먹구름을 완전히 걷어내어 태양이 얼음 왕국을 비추어 녹아내리게 해야 합니다.


그럼, '생각을 어떻게 해야 바로 보는가?' 하는 미션이 남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저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힌다거나 생각 자체를 끊어버리면, 차분히 가라앉히려는 새로운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거나  육체와의 연결고리가 단절되어 다음 생으로 흘러가 버리므로 바로 볼 수 있는 깨달음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또 그저 내 나름대로 바로 본다는 노력을 더 하는 것 또한 안타깝게도 기존의 쌓아둔 오음에서 출발하게 되므로 이미 오염된 물로 설거지를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인 소용없는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상대방 쪽을 공격한다면서 자꾸 우리 편 골대 안쪽으로 공을 차넣거나 경기장 밖으로 걷어내는 플레이만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기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골대 방향을 정확히 알고 최종 선방에 있는 스트라이커에게 공을 패스해 결정골을 넣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마지막에 골을 넣는 선수 스트라이커이자 먹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 태양에 정수리로 바로 날아가 꽂히는 황금빛 창이,

바로 [일념]입니다.

 

그래서, 화두는 수만 갈래로 흩어져 생멸하고 있는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엄청난 힘을 가진 [일념]으로 만드는 대신 다른 생각들은 일어날 수 없도록 '의문 혹은 의심'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감 혹은 오음을 통해 어떤 경계에 부딪히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별것 아니라거나 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 판단에 따라 다음 행위와 생각을 결정하게 되는데 일단 의문 상태에 들어가면 이런 결정과 판단을 보류하게 됩니다. 그러니 당장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무심하게 넘어가되 '의문 한가지 생각'만을 유지하게 되니 생각이 끊어지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생각들이 붙을 자리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상대 골대 방향을 정확하게 보고  스트라이커에게 공을 패스하는 방법인 셈입니다. 다르게 비유한다면 어두운 지하 세계로부터 지상을 뚫고 하늘을 가르고 대기권을 통과해 우주로 솟구쳐 올라가면서 점점 거대한 황금빛 창으로 변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차츰 이 노력이 익숙해져 동정, 몽중 및 오매 일여의 단계처럼 한 가지 의문을 잘 유지해서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에 만들었던 무의식 속 미세한 생각(미세망념, 微細妄念)들도 다시 영향을 미치려고  할때마다 이 점점 강력해지는 의문의 용광로에 차츰 녹아 들어가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즉, 완전한 [일념삼매]의 단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화두 참선법에서,

화두 의심의 끝없는 참구 즉 활구(活句)참선과 일념삼매를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지 부족하지만, 저 나름대로의 견해를 덧붙여 임의 정리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3화 13. 7일의 기적, 금까마귀 솟구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