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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Jan 17. 2024

16. 치열한 두뇌싸움, 화두 서바이벌

나란히 걷는 선불교

여기 한 질문이 있습니다.


[도를 깨치고 나면,

인과에 떨어지지 않은가? ]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깨달음 후 자유자재함이라는 것이 인과법칙을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인지, 혹은 여전히 인과법칙에 따르게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선사가 설법할 때면 항상 어떤 백의의 노인이 뒤에서 듣다가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법문이 끝나도 가지 않고 기다렸다가 화상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이 아니라 여우입니다. 옛날 저는 이 산중에서 대중을 거느리고 수행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학인이 찾아와 ‘수행을 잘한 사람도 인과에 얽매이게 되느냐?’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 불낙인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이 잘못돼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여쭙습니다. 수행을 잘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지는지요?”
 
질문을 받은 회해화상은,


‘다만,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不昧因果, 불매인과)’

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말끝에 그는 여우의 몸을 벗고 해탈했다. 회해화상은 다음날 대중과 함께 뒷산 여우굴로 가서 그의 시체를 수습해서 스님의 예로 다비해 주었다고 한다. 


무문관(無門關) 제2칙 ‘백장야호(百丈野狐)’ 중]


그럼, 해회선사의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말씀은 어떤이가 수행을 잘해서 깨달음에 이르더라도 인과의 법칙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과법의 원리원칙을 잘 이해해서 자유자재하게 응용 한다는 뜻 일까요? 


글쎄요.


또,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말씀에 그 노인이 오백생을 이어왔던 여우의 몸을 벗었다니 여기에는 어떤 원리가 작동한 것일까요? 만약, 여우의 몸을 받은 것이 다른 이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주었던 인과의 법칙에 따른 결과라면, 어둡지 않다는 말씀이 그에게 어떤 인을 형성하였기에 여우몸을 벗는 자유의 과를 얻게 된 것일까요?

 

글쎄요.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저는 저 노인과 같이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일단, 여우의 몸은 피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어떤 분이 일화로부터 저 노인이 마침내 여우몸을 벗었으니 '불매인과'가 훌륭한 것이 아닌가 해서 이를 인용해서 이런 저런 상황에 적용하려 한다면, 너무 이르게 결론을 내리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다시 잘 살펴보셔야 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화두 모음집인 무문관에 실린 저 이야기에는 당연히 이해분별로는 닿을 수 없는 함정들과 반전이 숨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식후, 백장 선사가 저녁에 법당에 나와 앞의 인연을 이야기 하였다. 이때 제자인 황벽 선사가 일어나 말했다.


"죽은 이가 잘못 대답하여 오 백년 동안 여우의 몸이 되었는데,

만약 잘못 대답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백장 선사가 말했다.
"앞으로 가까이 오라. 그대를 위해 가르쳐 주리라."

황벽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백장 선사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백장 선사는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그렇구나. 오랑캐(=달마)의 수염은 붉다더니, 여기 붉은 수염 오랑캐가 있구나."]


무문관(無門關) 제2칙 ‘백장야호(百丈野狐)’의 뒷부분입니다. 


세상에, 제자가 스승의 뺨을...

하지만, 선종에서 진리를 논할 때는 스승과 제자 지간이라 하더라도 날카로운 기봉의 칼날을 휘두르며 번뜩거림에 주저함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독특한 백장선사와 제자 황벽선사님의 문답까지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이 문제를 제대로 풀었다고 할 수 있겠죠? 만약 노인이 당시 잘못 대답하지 않고 바르게 답을 했다면, 인과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되었을지 묻는 제자의 가정법적 질문에 대화 문답 대신 액션씬이 먼저 벌어졌습니다.


저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장선사가 남긴 제자를 인정하는 듯 한 저 마지막 말씀으로 인해 더욱더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자,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치열하게 머리를 쓸수록 빗나가는 대답들. 반전에 반전.


그래서 화두 참선은,

모든 지식 및 이해를 떠나 그저 취모검을 비껴들고 금강저를 휘둘러, 

정확하게 삿된 껍데기를 쳐부수어 저절로 답이 드러나게 하는 한편의 파사현정(破邪顯正) 누아르와 같습니다.


이 멋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서바이벌에 강하고, 호기심이 많거나 IQ가 높은 분들은 도전해 보시길 권유해 드립니다. 퀴즈나 추리, 그리고 스릴러물에 자신 있는 분들도 추천드립니다. 극T나 극F 인분에게도 권유합니다. 심심하시거나 안심심하거나 하는 모든 분들께도 전해드려봅니다. 나이 성별 연령 제한도 없고 참가비는 무료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일등에게는 그 어떠한 서바이벌 게임보다도 큰 어마어마한 혜택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부디,

스스로 만든 거짓 답 끝까지 속지 마시길 빌며.


저도 열심히 풀어보겠습니다.

일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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