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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Jan 19. 2024

17. 경이로움 그 이상, 무위 열반상 I

나란히 걷는 선불교

아마, 저처럼 초자연 현상에 호기심 많은 은 '자연 실상의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선사님은 뭔가 초능력적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티베트 고승들의 공중 부양부터, 마음을 읽는 능력, 다른 이들의 과거 전생을 보거나 미래 예언 등등 공상과학적 흥미는 빼놓을 수 없는 관심 대상이자 나도 저런 능력을 갖출 수 있나? 하고 늘 궁금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도 외도 등의 제도를 위해 다양한 신통력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들도 있고 선사님들의 행장과 관련된 기록들에서도 종종 신기방기한 다양한 초자연젹 능력들과 현상들에 대한 얘기들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사님의 일상적 모습에서는 일반인과 별반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당연하겠지만요. 비록 선지식이 득력을 해 초능력 즉, 육신통을 자유자재하게 쓸 수 있다 하더라도 대개는 잘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오직, 필요에 따라 제도방편으로만 그 능력을 쓰신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성을 바로 보지 못하거나 정신적인 성숙함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신이 가진 초능력에 자만심을 갖고 있는 이들을 꾸짖는 장면도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하루는 숙종(肅宗) 황제가 남양혜충(南陽慧忠, 675-775) 국사(國師) 처소를 방문해 한 가지 청을 드렸다.

“서천(西天)에서 온 대이삼장(大耳三藏)이 타심통(他心通)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하니 스님께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그래서 국사께서 대이삼장을 불러 물으시기를,
“그대가 타심통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했는가?”
하니, 대이삼장은 그러하다고 답했다.

국사께서는 잠시 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물으시기를,
“노승(老僧)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고?”
“스님께서는 일국(一國)의 스승이시거늘, 어찌하여 촉천(蜀川) 강 위에 배들이 경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옵니까?”
국사께서 또 잠시 가만히 계시다가,
“지금은 노승(老僧)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고?”
“스님께서는 일국(一國)의 스승이시거늘, 어찌하여 천진교(天津橋) 위에서 원숭이들이 서로 희롱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까?”
국사께서 또 잠시 계시다가 물으셨다.
“지금은 노승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고?”
대이삼장이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도 마음 있는 곳을 찾지 못하여,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습니다.”
하자, 국사께서 큰 소리로 “이 들여우의 혼령아! 타심통(他心通)이 어디에 있는고?” 하고 꾸짖으셨다.

대이 삼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 직지심체요절 등, 혜충慧忠 국사 편-]


이처럼, 무념, 무상, 무주를 근본으로 삼는 선가에서 그러한 능력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리가 없는 만큼, 아쉽지만 가르침 혹은 제도를 위해 불가피하게 사용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특별한 상황은 예외인데,

바로, 열반(涅槃)의 순간입니다.




일반인들은 죽음이 눈앞 가까이 닥치면 기력이 약해지거나 병고나 치매와 같은 여러 가지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고 합니다. 반면, 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설사 육체의 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성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그래서 선가(禪家)에서는 '옷을 벗듯이 다음 생으로 간다' 죽음마저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멋진 표현을 흔히 쓰기도 합니다.


실제로,  선사님들의 열반상은 일반인의 임종과는 다른 뚜렷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열반일 예언입니다. 문헌기록들을 보면  대부분의 선사님들은 언제 자신이 열반에 드는지 미리 제자들 혹은 주변인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당일에 제자 등을 모아두고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시거나 각자의 질문을 하나씩 받고 답변을 해주십니다. 물론주로 참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열반시 스승의 부재를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 (自燈明 法燈明, 자등명 법등명)" 말씀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조단경], (11. 선종의 나침반, 육조단경 참조)에 기록된 혜능 선사 열반 당시의 기록입니다.


[대사께서는 선천 이년 팔원 삼일에 돌아가셨다. 칠월 팔일에 문인들을 불러 고별하시고,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에 탑을 만들고 선천 이년 칠월에 이르러 작별을 고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의심이 있거든 빨리 물어라"...중략..법해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만이 꼼짝하지 아니하고 울지도 않으니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고 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렇다면 여러 해 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너희가 몰라서 근심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른들 마침내 너희들에게 고별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는 곳을 안다면 곧 슬퍼 울지 않으리라.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요히 열반에 드시는 분들도 종종 계시지만, 싸라상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부처님 이래 무수한 선사님들께서는 대게 이생을 벗어나는 날과 그 순간을 미리 알고 주변에 알려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고 최후 가르침을 전달 하십니다. 대게 이때에는 많은 분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약간의 각색이 있을 지언정,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기록들은 매우 신뢰 할 만한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나 그때 숨이 다할 것 같아"의 수동형이 아니라 "언제 갈 것이다"라는 능동적 표현과 그 놀라운 실행력입니다. 즉, 저승사자의 가이드에 따라 절대 불가항력적인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반인의 경우와 몸을 벗을 시절인연이 도래했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융통을 발휘해 스케줄 조절 후 떠나는 선사님의 그것과는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실제로, 임종 시 전후에 제자들의 요청 혹은 특별한 상황에 따라 예정된 시간을 미루어 열반에 든 놀라운 사례들도 종종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방거사(龐居士, ?~808)는 목불을 쪼개 군불을 지핀 일화로 유명한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선사와 함께 과거를 보러 장안으로 향하다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선사의 문하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는 재가신자입니다. 재가자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들, 딸과 부인을 지도해 한 가족이 모두 함께 깨달음을 얻은 매우 특별한 이력을 남겼습니다.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유마힐거사와 비교될 정도로 유명했는데 그의 독특한 열반에 대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열반의 시기가 다가오자, 그는 딸인 영조(靈照)에게 해를 보고 있다가 정오가 되면 와서 알려달라고 했다. 딸은 밖에서 해를 보고 있다가 정오가 지났는데도 일식 때문에 해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방거사가 밖에 나간 사이 영조는 아버지가 열반에 들려고 했던 자리에 앉아 가부좌한 채로 순식간에 입적에 들었다. 아버지보다 먼저 열반에 든 딸의 모습을 본 방거사는 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부득이 일주일간 머물렀다가 열반에 들었다.]


참, 불가사의합니다.   

잠깐 사이 순식간에 열반에 든 딸 영조와 임종을 미룬 방거사님의 저력. 

게다가, 방거사의 아내와 아들 역시 이 소식을 듣고 각자 독특한 열반상을 보이면서 순식간에 몸을 벗었다고 전해집니다. 


다음은, 임제 선사의 5대손인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선사님께서 어느날 대중에게 들려준 시입니다. 


금년에 나의 나이 예순 일곱

늙고 병든 몸이 연따라 살아가되

금년에 내년의 일 기억해두라

내년되면 오늘의 일 기억나리라.

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

今年記取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


내년이 되면 오늘의 일이 기억날 것이다라는 저 구절..

정말, 정확하게 일년 뒤인  12월 4일 오시(午時, 일 년 전 대중을 모아놓고 시를 들려준 시간)에 열반에 드십니다. 우연일까요?


우리나라의 대선사님들도 열반일을 미리 예언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근대에, 탄허(呑虛, 1913-1983)선사님께서는 무려 6년 전에 미리 임종일 과 그 시간까지 정확하게 예언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죠?  


임종을 앞둔 이런 예견능력과 과 능동적 열반상은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래서 부정할 수 없는 초능력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인 분들 가운데에서도 가끔 미리 자신의 임종을 예견하시는 특별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II 편에는 선사님들만의 더 독특하고 차별적인 열반상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선사님들의 열반 전후에 벌어지는 이 특별한 이벤트에는 그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함의도 함께 추측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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