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번째 특징은, 열반게송(涅槃偈頌, 열반 때에 남기는 시 혹은 임종게臨終偈 라고도 함)입니다.
[내 나이 일흔여섯.
세상인연 다했네.
살아서는 천당을 좋아하지 않았고,
죽어서는 지옥을 겁내지 않네.]
부용도해(芙蓉道楷,1042∼1118) 선사님의 열반송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계속되는 열병과, 유달리 약한 면역력덕에 감기를 비롯한 각종 면역질환 등 (당시 사라졌다는 천연두도 걸릴 정도)에 시달리며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고통이 늘 친구처럼 따라다녀서 또래 친구들보다는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훨씬 일찍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흔히, 평소에 종교가 없던 분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큰 병에 걸리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는 아픔과 혹은 사고 등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는 순간 종교나 나만의 의지처를 찾게 됩니다. 또 동시에살아온 지난 과거를 돌이키며 사후세계에 대한 염려 내지는 반성과 참회를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늦게라도 준비하니,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라는 스스로의 위로와 함께 다음은 더 좋은 곳으로 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변화 저 깊은 곳에는 기본적으로 불가항력적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해선사님은 도대체 어떤 경계에 도달했기에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사후세계의 여정에 대해 저렇게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경외심이 듭니다.도개선사는, "크게 죽은 사람이 문득 살아날 때 어떠합니까?"는 고준한 조주(趙州) 선사의 질문에 "밤에 행(行)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모름지기 밝거든 이를지니라."는 답변을 한 것으로 유명한 투자대동(投子大同:819~914)선사의 법제자입니다. 훗날, 얼굴에 낙인이 새겨지고 유배를 가는 고초를 무릅쓰고도 황제 (휘종徽宗, 북송 8대 황제)의 하사품을 거절하여 명리를 초월한 기개 높은 대선사의 면모를 보인 분이니만큼 위의 임종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몇 개의 열반송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앞의 장에서 특별한 열반상을 보인 것으로 소개해 드린 당나리 시대 방거사(龐居士) 님의 게송입니다.
[다만 온갖 있는 것을 비우고 없는 것을 채우려 하지 마라.
즐겁게 머문 세간 모두 그림자와 메아리 같나니]
다음은, 고려시대,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선사의 열반송입니다.
[지난날에 이 문을 나가지도 않았고, 오늘 이 문에 들어서지도 않았으며, 그사이에 머문 곳도 없다.
대중들이여, 어디서 이 태고 늙은이가 노니는 곳을 보겠는가.
북쪽 산마루의 아름다운 꽃은 붉은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고,
앞개울의 흐르는 물은 쪽빛같이 푸르다.]
그리고, 조선시대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님의 열반송입니다.
[천 가지 계책과 만 가지 사량은,
붉은 화로 속 한 점 눈이라.
진흙소가 물 위를 지나가니,
하늘과 땅이 갈라지네]
마지막으로, 한국 근대의 고승이신 일타(日陀,1927-1999)선사님의 열반송입니다.
[하늘 한가운데 밝은 해가 참마음을 드러내니
만리에 맑은 바람이 옛 거문고를 탄다.
생사와 열반은 일찍이 꿈이거늘,
산은 높고 바다는 넓어 서로 거리낌이 없구나.]
어떠신가요?
일반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게송들.
어설픈 해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못한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네요. 성의(聖意)에 어긋날 것이 분명해서. 하지만, 비록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선사님들의 열반게송이 제2장 일곱 부처님의 메시지를 근본으로 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물론 '음, 저 정도면 나도 게송 정도는 하나 남길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용기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정말 특별한 열반상을 보일 수 있는 저력이 내게도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화광삼매(火光三昧)와좌탈입망(坐脫立亡, 앉은 상태 혹은 서있는 상태에서 몸을 벗음)등 불가사의한 열반상입니다.
그 원류는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사라쌍수하(沙羅雙樹下, 사라수 8그루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 곽시쌍부(槨示雙, 관에서 두 발을 내보이신 것)는 부처님이 마하가섭 존자에게 법을 계승하는 세 가지 이벤트 즉, 삼처전심(三處傳心)의 마지막 상황으로 선종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일주일 후에, 교화(敎化)를 위해 멀리 다른 지방에 가 있던 가섭 존자가 돌아와 부처님 법신(法身)이 모셔진 칠 푼 두께의 금관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는 합장 예배를 올리고 말하기를, “삼계(三界)의 대도사(大道師), 사생(四生)의 자비스러운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항상 법문을 하시기를,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원래 없다’ 하시더니 금일에 모든 대중에게 이렇게 열반상을 보인 것은 온 인류를 기만한 것이 아닙니까?” 하니,부처님께서 칠 푼 두께의관 밖으로 두 발을 쑤욱 내미셨다.
가섭 존자가 합장 예배를 하니 부처님께서 발을 안으로 거두셨다.
그러더니 관이 그대로 중천(中天)에 떠올랐는데 이때, 지혜삼매(智慧三昧)의 불이 일어나 허공 중에서 화장(火葬)되어 팔곡사두의 사리가 나왔다.진제선사님 법문 중]
부처님께서 두 발을 내미신 뜻을 잘 알지 못하지만 생사에 자재한 모습을 드러낸 것임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화광삼매!!
믿기시나요?
[백이십 세가 된 아난존자는 스스로 열반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는 ‘일주일 후에 열반에 들겠다’라고 알렸다. 갠지스강을 사이에 둔 마가다 주민과 웨살리주민들은 서로 ‘장로께서는 우리 지역에서 열반에 드십시오’라고 청하였다. 존자는 만약 내가 한쪽에서 열반에 들면 강변 다른 쪽 사람들은 나의 사리를 차지하려는 문제로 싸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갠지스강 한가운데서 공중으로 솟아올라 가부좌를 하고 앉아 화광 삼매에 들어 스스를 불태웠다. 몸이 불타고 나자 갠지스강 양쪽으로 똑같이 아난다 존 자의 사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아난다 존 자의 사리를 모셔다가 사리탑을 세웠다.]
[제5조 제다가(提多迦 )존자는 통진량通眞量이라고도 한다. 어느 날 존자가 미차가(彌遮迦)에게 말하였다. “옛날 여래께서 큰 정법안장을 가섭 존자에게 부촉하신 이래 대대로 전하여 나에게 이르렀다. 나는 이제 그것을 그대에게 부촉하고자 하니 그대는 늘 염두에 두고 지켜야 한다.”그러고 나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근본인 법과 마음을 통달하면 법도 법 아닌 것도 없네.
깨닫고 나면 깨닫기 전과 같으니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네."
제다가 존자는 게송을 말한 뒤에 허공으로 날아올라 열여덟 가지의 변화(十八變)를 보인 뒤에 화화삼매化火三昧로 스스로 몸을 태웠다.]
부처님 이래 초기 인도 선지식들의 열반상은 대부분 저 화광삼매입니다. 물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인체발화'와 관련된 사건들도 아직 미스터리 한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아마도 초기 인도에서는 용무생사(用無生死,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라고 하는 최고의 경지를 가장 극적인 모습으로 직접 보여주신 듯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직지심경과 많은 선종 역사의 고승 열전을 보면 마지막 열반 시에 확실하게 "와, 정말 도인이구나!"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독특한 열반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역사상 가장 유명한 분이 바로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의 제자 등은봉 (鄧隱峯, 생몰연대 미상) 선사입니다.
[하루는 제자들에게 역대 큰스님들의 열반상(涅槃相)에 대해 물으니 옆에 있던 제자들이 아는 대로 “아난존자는 허공 중에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스스로 다비(茶毘)하셨고, 어느 스님은 앉으신 자세로 좌탈(座脫)하셨으며, 또 어떤 스님은 부처님처럼 오른쪽으로 누워서 열반하셨고, 방거사(龐居士)는 친구인 고을 태수의 무릎을 베고 돌아가셨으며, 방거사의 아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아버지가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밭에서 괭이에 의지해 선채로 열반하셨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말을 들은 등운봉스님은 “나는 그분들과는 다르게 물구나무 선 채로 가야겠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물구나무 선채로 열반에 드셨다.
제자들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스님의 법구를 눕히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스님의 법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등운봉스님의 속가 누이인 비구니 스님이 와서 스님을 보고 하는 말이 “오빠는 평소에도 기괴한 짓만 하시더니 돌아가실 때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느냐”라고 나무라고 손으로 쑥 미니 스님의 법구가 넘어져 염(殮)하고 다 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도 많은 고승들이 좌탈입망 하셨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특히, 혜월혜명((慧月慧明, 1862~1937) 선사님께서는,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법,
본래 진실한 바탕이 없다.
겉모양 보고 상 없는 뜻 사무쳐 알면,
바로 이것을 견성이라 하네.]
의 임종게를 남기시고, 뒷 산 나무 솔가지를 잡고반쯤 일어서는 엉거주춤 한 자세로 입멸에 드셨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어떤 저력이 있길래, 사대육신이 무너져 내릴 때의 고통과 무기력감을 넘어서서 이러한 기행을 실현할 수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사외도의 삿된 견해를 쳐부수고 그 어떤 형상에 매이지 않게끔 가르치셨던 부처님 일가의 이 특별한 작별인사법.
어쩌면, 경전의 모든 기록들 중 가장 특이하고, 신비스럽고도 믿기 힘든 장면일 것입니다. 하지만, 후대에 지어낸 설화적인 이야기 또는 비현실적 현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분명한데도 이 기록들이 면면히 전해져 내려온 것은 분명히 특별한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동안 계속 떠 올려봤습니다. 만약 내가 도인이고 갈 때에 스스로 화광삼매에 들어 열반에 든다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걸까?
혹은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고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
심지어,
사리도 쏟아져 나옵니다.
선사님들 열반상의 네 번째 특징이기도 한 이 [진신사리]는절대로 자네가 본 게 헛것이 아니라네 하는 증거물인 듯이 탑 속에 혹은 전시되어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부정되거나 희미할 수 있는 기억을 딱 잡아줍니다.(가끔 찾아가는 해운정사에 들르면 관음보궁 부처님 진신사리 33과를 꼭 친견하고 돌아옵니다. 부처님을 직접 뵙고 하소연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당시에 어디선가 부처님을 뵈었던 인연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면서...)
이 정도면, 선사님들의 열반 현장에 있던 분들은 요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제 선지식은 이미 가셨고 저 놀라운 신통력을 그리고 엄청난 열반상을 보여준 그분의 전법제자, 아직 우리처럼 사대육신 멀쩡하고 대화가 가능하며 뭔가 여쭤보면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다음 선지식에게 진심으로 귀의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나도 멋진 도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말 따를 수 있는 의지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제까진 의심했지만, 오늘부터 우린 절대신심 1일 차!'
가시는 분이야 무여열반에 드시니 모양과 형상이 있고 없음을 초월해서 [육신을 다시 사대로 온전히 돌려놓는 것]마저 무심하게 실행하시겠지만, 보는 이에겐 기절초풍할만한 광경의 종합선물세트가 아닐 수 없고 집으로 혹은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는 걸음걸음 깊이 마음에 새겨지면서 엄청난 의문과 신심이 동시에 생길 것 같습니다.